자주 찾는 식당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블로그에 담지 못한 맛집들이 꽤 있다.
이는 아마 다른 블로거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그런 맛집 중에 하나가 가금의 풍미가든이다.
이 집은 시내에서 중앙탑삼거리를 지나 노은방향(북충주ic)으로 500m 정도 더 가면 길 왼편에 보인다.
주변에 과학단지를 비롯해 공장들이 새로 입주하기 시작하면서
이 집을 찾는 손님들이 부쩍 늘어 점심시간에는 자리가 모자랄 정도다.
메뉴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스스로 전문이라고 내세우는 것은
바로 손칼국수와 청국장 또는 된장찌개이다.
된장이나 청국장은 이렇게 따로 판매도 한다고 한다.
세 사람이 찾은 오늘의 메뉴는 된장찌개 둘, 칼국수 하나.
맛깔스런 반찬들이 한 상 가득 차려진다.
특히 콩나물무침은 다른 반찬에 비해 더욱 맛이 있다.
된장찌개 2인분이 뒤늦게 상 중앙에 자리를 잡는다.
손칼국수. 면발이 가느면서도 쫄깃쫄깃한 식감을 준다.
숙취로 지친 속풀이에도 그만이다.
이건 지난 번에 들렀을 때의 반찬이다.
주메뉴가 무엇이었던지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 집에는 두 점의 한문 서예 족자가 벽을 장식하고 있다.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석농 김병인이라는 사람이 쓴 글씨라고 한다.
먼저 아래의 족자를 보면 당나라 시인 위응물의 시 중의 3-4구를 옮긴 것이다.
다음은 원시 전문과 작자에 대해서 소개하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东郊》동쪽 교외
吏舍跼终年,평생토록 관청에 구속되어 지내는 이내 신세
出郊旷清曙。교외로 나가니 넓은 들판에 새벽공기가 산뜻하다.
杨柳散和风,버들가지는 봄바람에 흩어져 날리고
青山澹吾虑。푸른 산은 먼지 낀 번뇌를 씻어준다.
依丛适自憩,키작은 잡목 숲을 이르러선 마음대로 쉬기도 하고
缘涧还复去。개울을 따라가며 이리저리 서성이기도 한다.
微雨霭芳原,가랑비가 풀향기 가득한 들판에 자욱하니
春鸠鸣何处? 보이지 않는 봄 비둘기는 어디메서 우는지?
乐幽心屡止,그윽한 자연을 좋아하건만 마음은 늘 그렇지 못하고
遵事迹犹遽。일에 쫓기다 보니 행적도 늘 총망하다.
终罢斯结庐,끝내는 벼슬 때려치우고 여기에 초가집이라도 엮어서
慕陶真可庶. 도연명 같이 살고 싶은 희망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지.
[작가 소개]
韦应物(737-792): 당대 시인. 장안(지금의 西安)사람. 세족 출신으로 천보(天宝) 10년(751)부터 천보 말년(756)까지 三卫郎을 역임했고, 安史의 난 후에 玄宗이 蜀으로 피난가자 그도 관직을 잃었으며, 비로소 독서에 뜻을 두었다. 代宗 大历13년(778)에 악현(鄂縣)의 현령이 되었으며, 德宗 建中 연간에는 외직인 저주자사(滁州刺史)가 되었다. 덕종 贞元 원년(785)에는 강주자사(江州刺史)로 옮겼으며, 贞元 4년에는 다시 조정으로 들어와 左司郎中이 되었으며, 다음해 다시 외직으로 나가 소주자사(苏州刺史)가 되었다. 贞元 7년(791)에 비로소 퇴직하여 苏州의 永定寺에 기거하였다. 일반적으로 “韦左司”、“韦苏州”라고 불린다.
위응물은 청년시절에는 현종을 모시면서 생활함에 자질구레한 것에 구애를 받지 않고 호탕하게 살았지만, 여러 차례 지방관을 역임하면서 백성들의 고통과 사회의 병폐를 직접 목격한 후로부터는 사상이 점차 성숙해져 청렴한 지방관이 될 수 있었다.
그의 시는 당시에 벌써 유명하였는데, 白居易의 《与元九书》에 일컫기를, “근세에 위소주(韦苏州)의 歌行은 재치있고 아름다운 것 외에도 자못 풍자의 기운이 있다.”(近岁韦苏州歌行才丽之外,颇近兴讽。)라고 칭찬했는데, 예를 들면 《采玉行》、《夏冰歌》、《杂体五首》 등의 시는王侯와 贵族의 향락적인 생활을 파헤치고 옥을 캐는 사람이나 얼음채취인, 가난한 여인의 고통을 반영하고 있으니, 원백(원진과 백거이)의 신악부 체제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시 중에 가장 칭찬을 받는 종류는 바로 산수전원시로서, 후세 사람들은 그를 산수전원시파로 분류하였다. 대표작으로는 《淮上即事寄广陵亲故》、《赋得暮雨送李胄》、《游开元精舍》 등이 있는데,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였고, 평담한 가운데 일반인들이 쉽게 전달하지 못하는 감정을 포착해내었다. 그의 산수시 가운데는 또한 호방한 기세도 적잖아서 일반 전원시인들과는 조금 다르다. 그는 특히 五言古体诗에 뛰어났으며, 풍격이 충담한원(冲淡闲远)하고,언어가 유창하고도 간결하여 당시나 후세에 모두 비교적 영향력이 컸다. 《四库全书总目》에서는 그의 시를 일컬어 “도연명의 시에서 기원하였고, 사령운, 사조 등의 시로 단련되었기 때문에 진실하지만 투박하지 않으며,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源出于陶,而熔化于三谢,故真而不朴,华而不绮.) 《韦江州集》이《四库丛刊》本으로 후대에 전해온다.
아래 두 편은 오른쪽부터 각각 소개하기로 한다.
오른편의 것은 [鳶飛魚躍]이란 글자로, 시경에 나오는 말이다.
《诗经·大雅·旱麓》에 “솔개는 날아서 하늘로 오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어오르네.”(鸢飞戾天, 鱼跃于渊.)라고 했는데, 후에 “鳶飛魚躍”(yuānfēi yúyuè) 이라고 하는 성어가 되어, 천지 만물이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제 삶을 즐기는 조화로운 상태를 뜻한다.
왼편의 것은 특별히 출전을 밝히기엔 너무나 대중적인, 부부 또는 연인 사이의 각별한 금슬(애정)을 비유하는 말이다.
굳이 출전을 밝히자면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장한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連理枝比目魚]
연리지(連理枝). 뿌리가 서로 다른 두 나무의 줄기가 서로 완전히 한나무처럼 붙어 자라는 나무를 말하는데, "理"자는 나뭇결이란 뜻이다.
이 연리지는 비목어(比目魚: 외눈박이물고기. 암수 두 마리 물고기가 모두 눈이 하나뿐이어서 거리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항상 서로 붙어 다녀야 하는데, 한 마리가 죽으면 다른 한 마리도 시름시름 하다가 따라 죽는다고 한다.), 비익조(比翼鳥: 항상 날개를 나란히 하고 함께 붙어날아다니는 새), 병제련(竝제蓮: 한 줄기에 두 개가 핀 연꽃) 등과 함께 부부의 금슬을 상징한다.
중당(中唐)의 저명한 사회시인 백거이(白居易772-846호 樂天)의 <장한가(長恨歌)>란 장편 시가(당 현종과 양귀비의 애틋한 사랑을 노래함)의 마지막 구절을 보면 다음과 같이 연리지를 언급하고 있다.
七月七日長生殿,칠월 칠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私語時。한밤중에 사람들 없어지자 말씀하실 때
在天願作比翼鳥, 하늘에 간다면 비익조 되기를 원하셨죠
在地願為連理枝. 땅에 있다면 연리지 되기를 원하셨죠
天長地久有時盡, 하늘과 땅이 아무리 길고 영원해도 끝날 때가 있지만
此恨綿綿無絕期. 이들의 한스런 사랑은 길고 길어 끝날 날이 없으리라
맛집을 찾아 입으로 몸으로는 음식의 맛을 즐기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정신을 즐겁게 할 수 있다면
그 또한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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