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출장에서 밤늦게 돌아온 다음날,
억지로 신청했던 학회논문발표 때문에
아침 일찍 대구 영남대학교로 출발.
발표 준비도 채 하지 않은 채 피곤한 몸과 졸린 눈을 한 채 운전대를 잡으니,
출발 때부터 자욱한 안개와 함께 장대비가 쏟아진다.
험난한 여정을 예고나 하듯...
출발할 때의 날씨는 도착 때까지 거의 변화가 없다.
한반도가 모두 같은 빛깔 하늘 아래 있는 모양이다.
서둘렀다고는 했지만 날씨 때문에 약간 지각.
개회식이 끝나고 기조 강연 중.
오랫만에 뵈는 은사님이 오히려 젊은 나보다 더 기력이 정정해 보이신다.
구수한 저음톤의 성음을 오랫만에 듣는 것 또한 너무 기쁘다.
오전 발표가 끝나고,
점심 식사 후, 점심의 다른 이름의 이름을 가진 한참 후배가 오랫만에 어디 가서 회포를 풀자고 유혹한다.
흔들리는 마음 가누지 못하고 결국은 학회의 오후 일정은 버려둔 채 몰래 대구 시내로 빠져나간다.
진밭골 쪽이라고 하는데,
처음 가는 곳이라 위치 감각이 전혀 없다.
도착하니 속이 좋지 않아 마침 내시경을 금방 마쳤다는 다른 좀 더 윗 후배와 합류,
그가 안내하는 한 단골집으로 향했다.
석쇠불고기라고 한다.
토속적인 상차림이 보기만 해도 맛있다.
그렇게 비가 흩뿌리는 제2의 고향인 대구에서 선후배 간의 정을 안주로 삼아 막걸리잔을 기울이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은 점점 더 늘어나 결국에는 몇 명이 모였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술에 취하고 정에 취해 버렸었다.
일어나니 아침,
전날 만나지 못했던 고등학교 동기 한 사람과 연락이 닿아
그가 안내하는 한 식당으로 해장을 하러 들어간다.
전날 궂은 날씨 때문인지 유난히 깨끗한 하늘이다.
그래서 간판마저도 빛을 반사하여 식당 이름조차 보이지 않는다.
전복나라.
대구가 아니라 경산시였었구나.
대구경북의 대표 지역 신문인 주간매일에도 소개된 집.
노익장을 과시하며 전국을 유람하고 있는 송해씨도 찾았던 집.
전복 관련 각종 요리들이 메뉴판에 가득하다.
그러나 지독한 숙취에 먹을 우리의 아침 식사는 오직 하나, 전복곰탕.
전복과 곰탕이 많이 낯설다.
우선 반찬들이 상에 오른다.
뭔가 부족해 보이는 듯한 전복곰탕.
평소 해장국이라면 얼큰하고 푸짐한 것을 좋아하던 나이기에
오른쪽에 보이는 저 전복곰탕은 먹기도 전에 시각적인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듯.
맛은? 담백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아침은 워낙 많이 취해 있었기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랫만에 만난 친구가 대접해준 따뜻하고 영양가 있는 해장국을 배불리 먹고
1박2일의 대구 일정을 접으면서 충주로 돌아온다.
지난 일주일 동안, 정말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보냈었다.
그리고 아직 숙취가 채 가시지 않은 눈과 정신으로도
어느새 우리땅 중부에는 단풍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는 걸 볼 수 있었다.
위험천만한, 그러나 종종 그러하듯, 운전하면서 사진 찍기.
집에 돌아온 후에도 그날은 밤에 잠들 때까지 심한 숙취로 끙끙대었다는.
모든 일에는 대가가 주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깨달은 1박2일의 대구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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