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여행 마지막 날이 밝았다.
간밤에 그렇게도 내리던 비가 마치 꿈에서인 것처럼 청명한 날씨였다.
혹시 어제 북경을 떠났던 사람이 있다면
북경 하늘은 늘 회색빛에 스모그가 가득할 뿐이라고 말하기 십상이다.
비가 스모그를 깨끗이 씻어 간 모양이다.
비록 짧은 북경 여행이지만 흐리고 비오고 맑은 날씨를 다 경험하고 가는 것 같아 어쨌든 기분은 괜찮아졌다.
식사 후 숙소 앞에 대기(늘 하고 있다)하고 있던 헤이처 하나를 물색하여
20원에 북경대서문으로 갔다.
특별히 숙소에서 가장 먼 서문으로 간 까닭은 서문의 초라한 대문의 '北京大學'이란 현판이
모택동의 글씨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깜빡 사진 찍는 것을 잊어 보여드릴 수가 없게 되었다.ㅠ
서문을 들어가려는데 수위가 신분증을 보자고 한다.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데, 대학 교정에 들어가는 것조차 제한을 하다니 뭐가 그리도 켕기는 게 많은지...
들어서자 마자 잔디광장에 용이 승천하는 형상의 탑 하나를 만난다.
이 대학에서 공부하면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를 수 있다는 말씀인가.
건물 왼쪽을 돌아 조금 더 가면 북경대의 명소 중의 하나인 호수 '未名湖'(미명호)가 나타난다.
겨울에 왔을 때는 스케이트장으로 변해 있었는데...
호숫가로 난 길을 따라 시간에 쫓기면서도 최대한 여유롭게 북경대의 가을 풍광을 감상한다.
여느 공원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는 교정이다.
가끔씩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학생들이 없었다면 일반 공원이라고 여길 정도다.
작은 컴팩트 디카로는 아름다움을 다 담기에는 역부족이다.
어서 땡빚을 내서라도 괜찮은 카메라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멀리 탑이 보인다.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나뭇잎들은 한여름이다.
미명호와 연결된 지류격인 작은 호수다.
제법 고색이 창연한 구조물도 보이는데 자세히 보기에는 오늘 일정이 너무 촉박하다.
여기에서 보니 호수가 꽤 넓다.
호수가 끝날 때 쯤 동쪽 방향 끝에서 줄곧 우리 눈에 들어왔던 그 탑이다.
몇 층인가, 꽤나 크고 높다.
불교나 라마교 등 종교와 관련된 탑인 줄 알았는데
아래 설명을 보듯 북경대학 초기 시절에 북경대학의 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관정탑이라고 한다.
설명을 그대로 번역하면, 1924년 7월, 연경대학(북경대학의 전신)이 전교의 생활용수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우물 하나를 팠는데, 우물 깊이가 164자(대략 50미터)였으며, 물이 맑고 풍부했으며,
지면 위 10자나 물이 뿜어져 나왔는데, 그 양이 시간당 16,000갈론(gallon)(60,560리터)이나 되었다.
이 수탑은 당시 우물을 위해 지은 탑 형식의 누각 건축으로,
탑의 모양은 북조시대 통주(通州)의 한 연등탑을 모방하였다.
미국인 박씨가 자금을 내어 지었기 때문에 "박아탑"이라고도 부른다.
그야말로 주마간산격으로 북경대학을 관통하여
동문을 빠져 한길을 건너 청화대가 나올 때까지 가서
청화대를 참관할까 하다가 시간을 보니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길을 건너 버스를 타고 어언대학으로 향했다.
어언대학의 농구장 부근.
북경의 나무들 중에 유독 이곳이 가을을 감수하고 있는 듯.
어언대학이 유행에 민감한가...
농구장 곁에 세워진 공자상.
어언대학이 특별히 공자를 숭상할 만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궁금증을 해결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점점 북경을 떠날 시간이 우리들을 압박해온다.
어언대학 도서관 전경.
도서관을 구경하기 위해 들어가려고 하니
아니나 다를까 현관 입구에서 노인 수위가 제지를 한다.
한국인인데 참관을 위해 왔다고 하니 다행히 들어가게 한다.
안에서 서점 두 곳에서 책을 사기도 하고,
학생들 공부하는 모습도 본 후 점심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도서관을 나선다.
도서관 맞은편에 새로 지어진 높고 큰 건물이 식당전용 건물이라고 한다.
층마다, 코너마다 특색있는 음식들이 깨끗한 환경에서 제공되고 있다.
나는 옛날 먹었던 무슬림 식당의 음식이 생각나 물어보니
식당 1층에 위치하고 있는데 출입구는 측면(HSK관리센터건물쪽)에 있다고 한다.
2007년 허름하던 건물에 조금은 지저분하기까지 하던 식당이
이렇게 새 건물에 단정한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니.
신쟝의 소요 사태에도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는, 그 생명력이 놀랍다.
식당 내부 모습.
칭전 음식이라고도 한다.
종업원들의 차림새도 많이 단정해졌다.
우리는 양로촨과 '나'라는 둥글고 넓적한 구운빵을 시켰다.
양로촨은 역시 어언대의 양로촨이 최고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양로촨을 굽는 틀.
점심을 먹고 나니 벌써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2시에 숙소의 체크아웃이니
그 사이에 징위(京裕)빈관 구역 내에 있는 중국어교재 서점에 들러
마지막날의 서점 기행을 해야 하는데다가,
그 후에 마트에 들러 기념품이나 선물을 사야 한다.
그래서 마음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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