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입성 첫째날을 그렇게 강행군한 후 정말 간만의 꿀처럼 달콤한 잠을 자고 이틀째를 맞았다.
조금은 느긋하게 일어나
빈관 내의 식당에서 제공되는 무료 조식을 먹은 후
짐을 꾸려서 체크 아웃, 두번째 숙소가 있는 우다코로 이동했다.
안딩먼잔에서 2호선을 타고 시즈먼에서 내려 바로 택시로 숙소인 허쟈빈관으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우리 대학과 자매결연 체결 중인 북경교통대학도 보였다.
우다코(五道口실재로는 '우다오커우'라고 표기해야 하지만 북경의 한인들은 대부분 간략하게 이렇게 발음한다.)의
화칭쟈웬(華靑嘉園) 한 켠에 위치한 허쟈빈관(和家賓館)에 다시 체크 인.
1년 새에 20원이 인상되었다.
2인 1실 트윈베드룸이 198원에서 218원이었다.
여장을 풀고 다시 둘째날의 일정을 시작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우다코가 2007년에 비해 달라진 점은 한글 간판이 많이 줄었으며, 길거리에서 한국말을 잘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환율 때문이리라.
발맛사지와 미용실, 그 아래로 부동산 간판은 예전 그대로다.
버스를 타고 중관촌에 내려 해룡전자상가에서 쇼핑을 한 후
(요즘은 신제품이 뭐냐고 물으니 mp5라고 한다.)
길을 따라 서쪽으로 내려가 하이덴투서청(海淀圖書城)으로 이동한다.
또 걷는다.
그렇게 걷다보니 단 이틀밖에 되지 않았건만
몸이 훨씬 가벼워짐을 느낀다.
그래, 귀국하더라도 되도록이면 많이 걷도록 하자.
차를 타는 것보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 주변의 경치가 훨씬 눈에 잘 들어오고,
자전거보다 걸어가면 더욱 주변을 잘 구경할 수 있는 법.
무질서 속에서도 질서가 있다고 하는 북경의 교통상황,
심심찮게 사고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방금 충돌한 듯한 차량 두 대,
중국인들은 어떤 사고가 일어나면 끼어들어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대신에
벌때처럼 모여서 구경하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사고는 사고 축에도 끼지 못하는지, 아니면
옛날처럼 느긋하게 남의 일 구경하고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 못해서인지
구경꾼들이 거의 없다. 우리 빼고는...
서점가에 이르러 몇 곳의 서점을 들러 책을 샀다.
책 쇼핑은 쇼핑 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 같다.
서가의 아랫단에서 윗단까지 앉았다 섰다를 반복해야 하는가 하면
때로는 먼지 낀 책을 빼내어 작은 글씨의 내용을 살펴봐야 할 때도 있고,
혹 놓치는 책이라도 있으면 안된다 싶어 항상 눈을 부릅뜬 채 쇼핑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금새 피곤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미 산 책을 넣은 배낭이 어깨를 내려누르기라도 하면 더욱 지치게 마련이다.
점심 시간인 모양이다.
주변 전자상가와 서점가의 직원들이 일제히 나와서 삼삼오오 떼를 지어 식당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우리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이 식당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것 같다.
우리도 가자.
'하이순쥐'라는 북경의 오래된 상점이란다.
자장면이 전문인지 현관 머리에 붙여져 있다.
들어가보니 각종 가정식 반찬(家常菜)들을 뷔페식(自助)으로 먹는 집이었다.
본래 계획은 오늘 점심으로 디산지(第三極) 빌딩 1층의 캉스푸(康師傅) 니우로우멘(牛肉面)이었는데,
그 빌딩 자체가 공동화되다시피 하여 1층의 식당도 없어져 버렸기에 할 수 없이 다른 곳을 찾았다.
하이순쥐 맞은편으로 니우로우멘집 하나가 보인다.
이선생 니우로우멘집이라는...
현관 입구에 직원 초빙 공고가 붙어 있다.
체인점이다 보니 지점장이 필요한 듯 지점장은 고졸 이상의 학력에 소통능력이 뛰어나며
2년 이상의 해당업무 경력이 있는 사람을 모집한다고 하며,
요리사는 중졸 이상의 학력에 월수 1,650-3,000원으로 모집한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인가. 170원으로 잡으면
대략 280,000원-510,000원 선이다.
중국인의 경우에서 볼 때 상당히 센 봉급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설겆이 담당조차 중졸 이상의 학력에 1400원(238,000원)의 봉급이라고 하니.
실내가 깨끗하다.
모두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열심히들 먹고 있다.
고단한 하루 일과 중에 점심시간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위안이 될 지도 모르겠다.
메뉴판을 보면 7원이 넘는 메뉴가 없다.
저렴하다.
우리가 주문한 니우로우멘은 타오찬이다.
반찬까지 곁들인 것으로 기억하건대 20원 정도했었던 것 같다.
낯선 음식에 대한 호기심과 시장끼로 맛있게? 한 그릇을 비웠다.
식사 후 다시 서점 몇 곳을 더 쇼핑하니
등에 진 배낭은 자꾸만 무거워져 더 이상 돌아다기에는 무리라고 여겨진다.
가야할 곳은 4환로 건너 북경대학과 다시 길 건너 원명원인데
만장일치로 우선 숙소에 가서 책을 내려놓고 그 다음에 생각하기로 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벌써 다섯 시,
방대한 원명원을 감안하고, 게다가 흐린 날씨를 생각한다면 간다는 게 무리인 것 같지만
연장자의 제의로 일단 원명원 정문까지라도 가 볼 요량으로 버스를 탔다.
331번 버스를 타고 4-5 정거장만에 내린 원명원.
아직은 표를 팔고 있었기에 무작정 들어가보기로 했다.
원명원은 이화원과 마찬가지로 청대의 황실 정원이다.
강희제 때(1709) 건립되기 시작했는데, 내부에는 원명원, 장춘원(長春園), 만춘원(萬春園) 등 세 개 지역으로 나뉘며,
풍경구만 해도 100여 곳이나 되며, 건축면적이 전체 16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대규모 정원이다.
본래는 강희제가 네째 아들인 윤진(옹정제)에게 하사한 개인 정원이었으며,
이후 꾸준히 건물과 화원이 들어서게 되었다.
그런데 1840년 아편전쟁을 기점으로 청나라가 몰락하기 시작하였고,
다시 태평천국의 난, 이어서 1856년의 2차 아편전쟁이 발발하여,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광주를 필두로 천진에까지 쳐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860년 영불 연합군은 북경에까지 침입하여 원명원에 수많은 포격을 가해 완전히 파괴해버리게 된다.
이후 중국 정부는 파괴된 건축물을 일체 복원하지 않았으며,
호수와 화훼 등만을 꾸며서 시민들에게 개방하여
그날의 국치를 잊지 않도록 경각심을 심어주고 있다.
내가 본 연꽃 중에 원명원의 연꽃만큼 수량이나 질에 있어 뛰어난 것은 보지 못한 것 같다.
때는 마침 연꽃이 피는 시절인 여름이 지난 까닭에 누런 연잎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거의 다 시들어가는 연잎을 보는 것도 색다른 느낌이다.
연꽃의 키가 저렇게 큰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왕유의 시 <山居秋暝>(산속의 가을 저녁)이란 오언율시 중에,
"대숲 시끄러운 걸 보니 빨래하던 여인네들 돌아가는 모양이고,
연잎이 흔들리는 걸 보니 고기잡이배가 내려가는 모양이네."(竹喧歸浣女, 蓮動下漁舟)라는 구가 있다.
전에는 연잎이 얼마나 키가 커길래 배를 숨길 정도인가라고 의심했는데,
막상 저 연잎들을 보니 그게 거짓이 아님을 알 수가 있겠다.
배가 지나간 자리인가.
아직도 퍼렇기만 한 수양버들이 휘영청 호숫가에 가지를 드리우며
물거울에 제 모습 비춰보고 있다.
전체 입장료는 10원인데,
가장 안쪽에 자리한 이 폐허는 따로 15원을 받는다.
이곳은 영불 연합군에 의해 파괴된 서양식 건물 잔해로서,
잔해 그대로를 보존하여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는 당연히 그 울타리 바깥에서 구경을 한다.
늦은 시간임에도 그 안에 들어가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국인도 있고, 서양인도 있다.
중국인은 국치를 잊지 않기 위해, 서양인은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본래 무슨 용도의 건물이었을까, 궁금하다.
모두들 서둘러 공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벌써 6시가 넘었다.
우리도 바쁜 걸음으로 다시 남문으로 와서 숙소로 오는 버스에 올랐다.
오늘 저녁은 북경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학과의 두 졸업생을 만나기로 되어있다.
한 사람은 일찍이 북경 경무대를 졸업하고 포스코건설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있는 윤.00
또 한 사람은 바로 올해 졸업하고 8월에 북경의 국제학교에 한국업무 담당자로 취업한 구.00
숙소에 들어가지 않고 바로 약속 장소로 갔다.
북경에서는 꽤나 이름이 있는 대중음식점이다.
주말 저녁이라 손님들로 자리가 빼곡히 찼다.
만남과 반가움에 사진 찍는 것은 깜빡했다.
안타까왔던 것은 일찌감치 주문했던 카오야를 종업원이 주방에 전하는 것을 잊은 바람에
그만 끝내 먹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음식 먹지 못한 게 뭐 대수랴,
반가운 사람과의 만남에 가슴 가득 회포를 담았으니 그것으로 족할 게 아닌가.
겨우 건진 사진 한 장, 왼편이 윤, 오른편이 구.
선후배의 다정한 모습이 부럽다. 보기 좋다.
서로 의지하며 끌어주고 밀어주며 만리타국 생활 잘 할 수 있기를 빌어본다.
그렇게 둘째날도 저물고 숙소에 돌아와 다시 고단하고 달콤한 잠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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