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허궁을 빠져 나와 길을 건너면 바로 국자감 거리다.
정확한 주소는 북경시 東城區 安定門內國子監街15號.
국자감(감자는 중국어로 관서명으로, jian4성으로 읽음)은 과거제도가 창시된 수(隋)나라 이후의 중앙 최고학부이다.
명나라 때는 남경과 북경에 모두 국자감이 설치되어 있었다.
북경의 국자감은 원나라 大德10년(1306)에 설치된 것이다.
다음은 국자감 거리 초입에 있는 안내판이다.
정말 옛 향기가 물씬 풍기는 고즈늑한 거리다.
길 양편으로 이른바 오래된 회화나무(槐)가 도열하고 있다.
이 회화나무는 최고의 길상목(吉祥木)으로 꼽히는데, 이는 중국 주나라 때부터 비롯되었다.
주나라에 삼괴구극(三槐九棘)이라 하여 조정에 회화나무 3그루를 심고,
우리나라 삼정승에 해당하는 삼공이 마주보고 또 좌우에 아홉 그루의 극(棘: 가시나무)을 심는 제도가 있었다.
회화나무를 심으면 출세를 한다는 속설이 있어 많이 심었는데,
중국에서 과거에 급제할 때나 관리가 공명을 얻은 후 퇴직 때 기념으로 회화나무를 심던 풍습이 있었으며,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서원, 분묘, 대가의 뜰 등에 심었던 나무이다.
그래서 그런지 국자감 일대가 안팍으로 모두 회화나무 천지였다.
국자감 내의 공자사당으로 들어가 본다.
비록 입장료가 거금이긴 하지만 예까지 와서 안들어가볼 수가 없는 것이다.
크게 학문을 이룬 분인 공자의 입상이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서 있다.
십삼경을 새긴 비석들이 마치 서안의 비림처럼 대성전 앞 양쪽에 줄지어 서 있다.
이 회화나무는 나이가 얼마나 될까.
우리는 흔히 식물보다 동물이, 동물보다 인간이 더 고등생물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이 회화나무는 잠시 왔다가 사라져가는 숱한 인간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수많은 세대의 인간들이 나고 죽어갔지만 그는 의연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분명 나무의 정령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투박하고 껄끄러운 표면을 만져본다.
아니나 다를까 또 다른 나무에서 손을 떼고 돌아나오는데 그 옆에 이런 안내판이 서 있다.
이 나무는 최초의 국자감 총장이었던 원나라 허형이 심은 나무로서, 나이가 700살이 넘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명대의 간신 재상인 엄숭이 황제를 대신해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이 나무 아래를 지나갔는데,
갑자기 폭풍이 일며 나뭇가지가 부러져서 그의 모자를 벗겨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후인들이 이 나무가 충신과 간신을 구별할 줄 안다고 여겨서
'간신을 때리는 잣나무' 또는 '간신을 구분하는 잣나무'라고 한다. 그런데 잣나무는 아닌데...
이 나무가 바로 '촉간백' 또는 '변간백'이라고 하는 오래된 회화나무이다.
만세의 사표인 공자를 기리는 대성전 앞이다.
마침 웨딩 촬영이 있었다.
붉은 드레스, 신부는 연신 방글거리건만 한쪽 옆에 대기하는 신랑은 지루해서 울상이다.
공자의 가르침을 따라 행복하기 살기를 바라면서...
대성전 다음, 벽옹(벽옹)으로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유리 패방.
환교교택(환橋敎澤)이란 말은 황제의 은택이 학자들에게 고루 미친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지 현판 좌우에 용조각이 대칭으로 걸려있다.
벽옹은 황제가 학자들에게 강의를 하던 곳이다.
벽옹 둘레엔 성 밖의 해자처럼 연못이 둘러져 있고, 연못과 벽옹은 여러 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안내문에 의하면 황제가 벽옹 안에서 강의하고 학자들은 연못 바깥에서 벽옹을 에워싼 채 들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용으로 도배를 한 듯 하다.
건륭제 때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나올 때는 오른쪽의 여러 누각을 구경하였는데,
대개는 이민족을 물리친 전승비가 세워져 있었다.
거의 입구 다 와서는 다시 왼쪽으로 가서 전시실로 들어가 보았다.
과거제도와 관련된 여러 전시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통일신라 말기 당나라에 유학하여 당나라 과거에 합격하고 또 황소의 난에 격문을 쓴 최치원에 관한 기록도 보인다.
과거시험 장의 모습이다.
옆 사람 답안지를 보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과거시험 결과를 공지한 "방"이다.
청나라 때 충신 강유위의 답안지라고 한다.
과거시험에 응시한 학생들이 쓰던 필통이라고 한다.
붓, 벼루, 먹, 종이 등 문방구를 담았을 것이다.
허리에 차고 있던 컨닝 페이퍼들.
아랫쪽의 것은 요즘에 학생들이 즐겨 쓰는 축소복사 페이퍼와 같다.
글씨가 너무 작아 분간하기도 힘들다.
첫날부터의 강행군이 이어지니 특히 여학생들은 불평의 기색이 역력하다.
다음은 오늘의 주 목적지인 시단의 도서따사로 가서 책을 사는 것이다.
어쩌면 주목적에 할애할 시간이 너무 적을 듯하다.
서둘러 지하철 오호선 용허궁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동단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시단역에 내리니 바로 도서대하(圖書大厦).
그러나 시간이 너무 늦어 1시간 가량 쇼핑 후 첫날 마지막 코스인 왕푸징으로 갔다.
왕푸징 보행가를 지나 티비에서 자주 접했던 포장마차 미식거리로 가서 구경 후
끝자락에서 양로촨 하나씩 시식.
아이쿠! 완전히 소태네.
다 먹지 못하고 모두들 버린다.
이미 어두어진 시간, 지하철을 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숙소 내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그렇게 첫날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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