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악산 영봉 산행 *
@ 일시: 2003년 3월 15일(토)
@ 주요 지점 통과 시간
집 출발: 오전 9시 정각
덕주사 입구 식당 주차장: 9시 50분
마애불: 10시 40분
전망대(?): 11시 35분
영봉: 12시 50분
점심식사: 12시 50분-오후1시27분(하산 시작)
삼각지(영봉등정안내소): 2시 15분
동창교 매표소: 3시 30분
덕주사 식당 주차장: 4시 10분
간밤 일기예보에 주말 휴일 날씨가 좋지 않다고 하여 걱정을 많이 했다. 아침에 일어나 바깥을 보니 다행히 아직 눈이나 비는 오지 않고 흐리기만 한 날씨였다. 며칠 전부터 우리는 오늘 월악 영봉 등정을 계획하고 있었다. 아직 산 중턱부터는 쌓인 눈이 녹지 않았지만 우린 아이젠도 준비하지 않은 채 일단 도전해 보기로 했다.
처녀 등정의 추억을 담을 카메라, 그리고 냉동 찰떡 한 도막, 300ml짜리 작은 물병에 보리차 한 병, 수건, 목장갑, 무릎보호대, 빵 두 개, 5백 밀리리터 우유 한 병, 과자 한 봉 등을 빨간 배낭에 담아 출발하였다.
비록 지난 주말부터 시작한 것이지만 벌써 제법 주말 나들이가 일상화되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약간의 설렘과 함께. 호젓한 충주호반 도로를 상쾌하게 드라이브하여 덕주골 입구 식당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산행의 첫 걸음을 내딛었다.
덕주사까지는 일 년에 서너 번, 마애불까지도 벌써 두어 번 아이들과 함께 다녀온 적이 있다. 그리고 충주에 이사온 첫해 늦가을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도 안한 혜림이까지 포함해 온 가족이 영봉을 목표로 전망대까지 사투를 벌여 올라갔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 중도 하산한 경험도 있다. 그랬기에 오늘의 등반은 더욱 각오가 대단하였다.
출발할 때 한 무리의 등산객들을 만났는데, 중년의 남녀가 등산하는 물론이요 지팡이, 등산복, 배낭 등을 거의 완벽하게 갖춘 전문가들로 보였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부부 등반객도 보였다. 그들의 외양을 보고 우리 자신을 보니 우리들이 너무 아마츄어 같음에 조금 부끄러움이 들기도 했다. 우리 둘은 싸구려 등산화가 등산 장비의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자부한다. 우리가 그 어려운 지리산 종주 산행을 할 때도 낡은 운동화가 전부였지 않았던가? 꼭 그렇지만은 않겠지만 지금껏 경험한 예로 보아 정말 전문가는 형식에 크게 구애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은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다. 그 업무에 합당한 내용을 완벽하게 갖추는 게 우선인데, 그 내용이란 각고의 노력을 바탕으로 한 어려운 것이어서 갖추기가 용이하지 않으니, 우선은 외견상으로 남들에게 전문가로 보이기 쉬우며 갖추기 쉬운 형식적인 부분에 신경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도 [서툰 목수가 연장 나무란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쨌든 출발할 때부터 약간은 주눅이 들었는데, 그들이 잠시 주위 경치를 구경하던 우리를 스쳐 앞서 나가면서부터 더욱 우리의 아마츄어적임이 드러나는 것 같음을 느껴 걸음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언제 찾아와도 송계계곡과 만수계곡, 그리고 이 덕주골 초입의 계곡은 항상 깨끗함과 수려함에 탄성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콸콸거리는 물소리, 수경대 등 옥색이 진하게 감도는 곳곳의 소들, 주위의 바위와 나무들, 어느 것 한가진들 내 이목을 빼앗지 않는 게 없었다.
초입을 지나 마애불을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아까 우리 곁을 지나 앞서가던 등산객들이 길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곁을 지나 마애불에 도착하였다. 마애불에 도착하니 또 한 떼의 등산객들이 샘물 주위에서 왁자지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우리는 샘물을 한모금 마시고 샘터 위의 마애불 앞으로 올라갔다. 전에는 없었던 것 같은 단이 하나 설치되어 그곳에서 스님 한 사람, 속인 세 사람이 열심히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 2천 원을 꺼내 조심스럽게 불전함에 넣고 세 번 합장하며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다시 산행을 시작하면서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무엇을 소원했느냐고. 아내는 우리 가족의 무사함을 빌었다고 했다. 나는 나와 우리 가족의 교만하지 않음을 빌었다고 했다. 적당한 불행은 인생살이에 피할 수 없는 것, 언제나 성실하게 남을 배려하며 겸손하게 살 수 있으면 되지 않겠는가?
마애불과 덕주사는 전설에 의하면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딸 덕주공주가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고 산속으로 피신하여 여기까지 와서 바위에 부처를 새기고 신라의 부흥을 빌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간단치 않는 한이 맺힌 골짜기라고 볼 수 있겠다. 여기서부터 전망대까지는 가파른 등산로의 연속이다. 곳곳에 철책 난간과 밧줄, 인공계단 등이 설치되어 있다. 1998년 여름에 가 본 중국의 화산은 바위산인데, 인공계단 대신에 바위 자체를 깎아 계단을 만든 것을 보고 신기해 한 적이 있다. 그만큼 인공이 가미되지 않아 더욱 자연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자연을 그만큼 더 손상시킨 것이지 판단이 서질 않았지만.
오르면서 이따금 만나는 앞선 등산객들은 거의 모두 우리 뒤쪽으로 처져 가고, 처진 등산객들은 얼마 안 있어 시야에서 멀어져 버리고, 그러는 사이 우리는 우리의 소신이 맞아들어감에 더욱 발걸음이 가벼워져 속도도 빨라졌다. 우리는 또 전망대까지 오르는 내내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했던 그해 첫 등반을 화제로 삼았다. 아직 유치원에 다니는 혜림이조차 이 절벽같이 깎아지른 길을 어떻게 올랐을까을 생각하며, 아이들을 못내 대견하게 생각하였다. 지금 심정으로는 우리 아이 모두 꾸중하고 큰 소리 낼 이유가 어찌 있을까란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하산하여 집에 돌아가면 들어서자마자 또 큰 소리로 야단칠 것은 분명한 것, 참 이상하다.
전망대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사진 좀 찍고, 다시 처음 밟아보는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산들은 눈으로 덮여 있고, 우리가 가는 그 길에도 눈이 쌓여 있었다. 봄 속의 겨울산 오르기,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전망대에서 조금 내리막길을 내려가다가 다시 오르막길, 그리고는 평탄한 능선, 주위에는 허벅지까지 푹 빠질 정도의 눈이 쌓여 있었다. 미끄러지고 빠지고 하면서 가다보니 헬기장 같은 넓은 공터가 나오고 또 조금 더 가니 동창교에서 올라오는 길과 마주치는 삼거리가 나왔다. 그곳에는 영봉등정안내소란 이름의 작은 박스형 집이 있었는데, 안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앞에는 장엄한 바위가 산을 이룬 채 버티고 서 있었다. 저것이 바로 영봉이로구나. 멀리 그 꼭대기로 철책난간이 어렴풋이 보였다. 어떻게 저기에 올라간단 말인가? 주워들은 소문으로 한 바퀴 빙 돌아 뒤쪽으로 오른다고 하는데, 가만 보니 오른쪽 아래로 난 길에 신륵사, 영봉이란 표지가 있었다. 우리는 그 길을 따라 올라가도 시원찮을 시점에서 다시 한참을 내려갔다. 방향을 꺾어 북으로 잡을 즈음에 다시 아래쪽은 신륵사, 왼쪽길은 영봉이란 표지판이 나왔다. 그곳부터는 눈이 더욱 많이 쌓여 있었다. 북향의 음지였기 때문에 그만큼 덜 녹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오르고 내리는 등산객들을 보니 거의 모두 아이젠을 신발에 착용하고 있었다. 우리는 약간 두려움도 있었지만 반드시 목표를 달성하리란 의욕으로 계속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철책 계단과 로프에 몸을 간신히 지탱한 채 한발 한발 그렇게 앞으로 나아갔다. 미끄러움을 억제하며 억지로 서서 잠시 난간에 의지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작은 새 몇 마리가 내 눈 앞 30센티미터 앞에서 짹짹거리고 있었다. 아내가 손을 내밀어 펴니 그 손바닥에 앉기도 했다. 신기하다.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겁네지 않는지? 1000미터 고지의 산을 힘들게 오를 정도의 사람이라면 악한 사람은 없으리라고 판단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재빨리 배낭을 열고 사온 과자를 잘게 부수어 던져 주니 잘도 받아 먹었다.
이후 바로 아래 계단에 이르러니 계단에 쇠는 보이지 않고 온통 눈으로 덮여 미끌거렸다. 내려오는 사람, 올라가는 사람 가릴 것 없이 모두 힘들게 난간에 의지해 걸음을 떼고 있었다.
드디어 정상, 정확히 3시간만에 영봉 등정에 성공하였다. 정상은 오히려 작은 바위로 이루어져 공간이 적었다. 지리산 천왕봉 정도를 연상하면 될 것 같았다. 좌우로 봉우리가 하나씩 나뉘어져 있었다. 우리는 비교적 사람이 적은 왼쪽 봉우리 끝쪽에 자리를 잡고 사진을 몇 캍 찍고 점심 식사를 했다. 그 때 또 아까 본 새들이 우리 주위를 맴돌기에 다시 과자를 던져 주었다. 올라올 때는 힘이 들어 그랬는지 땀을 뻘뻘 흘리며 더워했었는데, 10분도 채 못되어 벗었던 외투를 다시 입어도 추울 정도가 되었다. 오른쪽 영봉표지판 쪽으로 가서 다시 사진 찍고 아래를 굽어보고 심호흡 몇 번 하고 다시 하산을 시작하였다.
하산은 더욱 어려웠다. 아까 오를 때는 거의 느끼지 못했던 위험을 느끼기까지 하였다. 아차 하면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져 세상을 하직할 지도 모른다는 그 절박한 위험을...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어렵게 여겼던 월악산 등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것도 아이젠도 없이 겨울산을 말이다. 뿌듯하였다. 그러나 혹 다음의 겨울산행엔 반드시 아이젠을 준비하고 가야겠다고 서로 다짐했다. 우리는 삼거리 등산안내소에서 잠시 갈등을 하였다. 조금 멀지만 비교적 덜 가파른 올라올 때의 코스인 덕주골이냐, 아니면 끝까지 내려가기만 하는 가파르고 미끄러운 동창교 코스이냐를 두고 잠시 생각하다, 모험심이 발동하여 동창교 코스를 선택하였다. 거리는 조금 짧았지만 속도는 오히려 더 떨어지는 것 같았다. 끝없이 이어져는 눈쌓인 비탈길, 계단도 잘 없고 로프에 의지해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나는 재미도 일편 느껴졌지만 아내는 몹시 힘들어 하였다. 손을 잡기도 하고 기다리기도 하면서 속도를 같이해 거의 다 하산했다 싶을 무렵에 어디선가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바람소리와 함께 희미하게 들렸다. 우리는 준비해간 물도 다 떨어졌고 힘들게 내려오느라 수분을 많이 소모해서 그런지 목이 많이 탔었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반갑게 들리던지. 우리는 곧 계곡 쪽으로 들어가 얼굴도 씻고 목도 축이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하산을 계속하였다.
얼마 뒤 식당이 보이고 도로가 나타났다. 여기서부터 도로를 따라 송계 계곡을 거슬러 대략 2킬로미터 거슬러올라가야 우리가 처음 주차해 둔 곳이 나온다. 우리는 한비야가 걸으면서 그렇게도 멋있다고 감탄했던 597번 국도를 거슬러 걸어갔다. 아내는 틈만 나면 나에게 도보여행을 하자고 했는데, 오늘 약간 맛보기를 미리 하는 셈이 된다. 다. 오른쪽으로는 수려한 겨울 월악산을 끼고, 왼쪽으로는 맑고 깨끗한 송계계곡의 물소리를 들어면서 대략 40여 분 걸어 주창에 도착했다.
차에 오르니 그제사 그 긴 등정의 끝을 느끼게 되었다. 오늘은 정말 멋진 날이었다. 오늘 몸에 담은 월악 영봉의 정기로 또 한 주를 멋지게 버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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