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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맛집

[문경맛집] 박정희 대통령과의 묘한 인연을 가진 보리밥집: 문경 당포식당

by 유경재 2011. 3. 6.

하초리의 누비진 여사장님의 구수하고 다정한 입담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그 집을 나서니 벌써 오후 2시가 넘어 있었다.

그제사 우리가 아직 점심 전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내친 김에 문경읍내로 들어가

한 끼를 떼우려고 맛집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새재에서 문경읍내로 넘어서면서 바로 왼편으로 읍내로 난 길로 접어들어가 본다.

길 왼편 저 너머로 우뚝한 자태를 뽐내는 산이 자리하고 있다.

아마도 주흘산일 것이다.

 

시골 읍내라 그런지 옛 향수가 물씬 풍기는 여인숙도 보인다.

 

문경읍사무소가 보인다.

낯선 도시에서 맛집을 찾으려면 관공서 주변에서 찾는 게 좋다는 게 나름대로의 노하우다.

아니나 다를까 앞에 돌솥밥집이 하나 보인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도 보리밥전문집이 하나 보인다.

일단 이 두 곳 중에서 결정하기로 한다.

돌솥밥? 아니면 보리밥? 그래 보리밥으로 결정하자.

그런데 시간이 너무 늦어 식사가 될런지...

 

당포는 문경읍 중에서는 제법 큰 마을의 이름이다.

문경온천에서 한참 시골로 들어간 곳에 있는데, 이 식당의 주인이 그곳 출신일 것이다.

 

식당 입구는 조금 비좁다. 안으로 들어서면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식사가 되느냐고 물으니

밥이 식었는데 괜찮겠느냐고 되묻는다.

어차피 비비면 식을 테니 괜찮다고 하면서 안으로 들어선다.

주말이라 그런지 아니면 시간이 너무 늦어 그런지 손님이 하나도 없다.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주인 아주머니.

 

좁은 입구에 비해 안에는 방이 여러 개다.

방마다 사진과 그림 등이 걸려 있다.

주인 아주머니와 탤런트 김학철.

아마 태조 왕건 촬영 때 들렀던 모양이다.

 

지역 신문이긴 하지만 신문에도 기사가 난 제법 유명한 맛집인 모양이다.

 

창문 너무로 보이는 정갈한 장독대.

크고작은 장독들이 옹기종기 다정하게 모여서 초봄 햇살을 따뜻하게 쬐고 있다.

 

이 방에는 새우그림도 보이고,

 

또 이방에는 족자와 호랑이 그림도 걸려 있다.

 

여기에도 방이 있다.

 

무얼 먹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동동주 주발에 김이 오르는 숭늉을 먼저 내 온다.

밥이 식었으니 먼저 숭늉으로 추위를 달래라고 한다.

 

이어서 넓은 쟁반에 찬이 가득 담겨 나온다.

고추장 빼고 총 열 가지의 찬이다.

 

 

 

큰 스텐 그릇에 밥이 가득하다.

아직 김이 나는, 따뜻한 밥이다.

새로 데웠다고 한다.

 

 

 

 

 

 

 

 

반찬 하나하나가 모두 구미에 맞는 것들이다.

 

요것조것 넣어서 비비기로 하는데, 양이 너무 많다.

인심이 넉넉하다.

그런데 할머니라 그런지 반찬마다 좀 짜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막 비벼 먹으려고 하는데 주인 아주머니도 옆 테이블에 밥을 가져와 늦은 점심을 먹는다.

그렇게 옆 자리에서 각기 밥을 먹으며 대화를 시작한다.

먼저 주인아주머니가 나와 일가라고 하니 나보다 항렬이 2대가 높은 할아버지 뻘이라고 하면서

무척 반가와 하신다.

그렇다면 우리 경주식으로 치면 왕고모(존고모)인 셈인데, 나 역시 반갑다.

고향은 경북 안동, 충주에서도 살았고, 수안보에서도 살았었고...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식사가 끝났지만 계속되었다.

남편은 충주 농협에서 근무하다가 친구가 꾀는 바람에 문경 탄광의 광부로 전직하여,

허구헌날 고된 광산일과 술로 지새다 많은 빚을 남긴 채 오래 전에 작고했고....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군호도.

주인아주머니왈, "이 그림은 단골 손님 중에 자칭 서울대 교수라고 하는 분이 선물로 그려 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역시 이 식당 단골 손님 중에 은퇴 교사분들이 이 그림을 150만 원에 팔라고 하더니, 다음날에는

아예 200만 원 현금을 가져와 팔라고 하더란다.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군가 보니 황?상훈.

 

그 사람은 또 얼마 후에 군마도를 보내왔다고 한다.

역시 황상훈이 작가로 표기되어 있다.

 

운보 김기창의 그림 등 군마도를 여러 차례 보았지만 이 군마도 역시 꽤나 힘이 넘쳐나 보인다. 

 

 

이 새우그림은 불국사의 스님 한 분이 들렀다가 식당에 손님들이 새우떼 몰리듯 하라고 주었다고 한다.

제법성? 일체 만물이 모두 법성을 띠고 있다는 말인가.

액자 한 귀퉁이에는 2002 월드컵 스타 중의 한 사람인 송종국의 싸인이 꽂혀 있다.

 

글씨 족자. 중앙의 언자가 좌우 구절에 다 걸려 있다.

노자의 <도덕경> 중에 나오는 구절이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진리를 말하는 사람은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진리는 말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 된다.

달마도와 노자, 묘한 결합이다.

모두 진리를 깨달은 성인이라는 점에서 통하는 모양이다.

 

현관 입구에 걸린 낙서 같고 장난 같은 글씨.

누가 쓴 글씨인지는 모르되 액자값이 아깝게 여겨진다.

 

보리밥을 팔아 무슨 큰 돈을 벌었겠는가 마는 이렇게 좋은 일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사람이 모여드는 모양이다.

 

닫혀 있는 안방문을 열어본다.

안쪽 구석에 놓인 작은 장식대 위에 낯익은 사진 하나가 액자에 다소곳 담겨 있다.

 

아니? 이 사진이 어떻게 여기에...

그래서 자초지정을 물어보니, 아주머니가 젊은 시절 한때, 수안보 상록호텔 한식당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때 박정희대통령이 곧잘 관리들을 대동하고 그 호텔에 들러 여러 모임을 가지곤 했었는데,

그게 인연이 되어 한 번은 두 내외분의 사진을 한 장 주시더란다.

그것을 집안이 여러 차례 이사하는 동안에도 잊지 않고 간직해 오고 있다고 했다.

 

아~바로 이 사진 때문이로구나.

이 식당이 유명할 수 있었던 것이.

 

그 후로 박정희 대통령의 둘째딸인 박근영(박근혜의 동생)가 그 소문을 듣고 10여 명을 대동하고

두 차례 들렀다고 한다.

들렀을 때마다 밥값 외에 얼마간의 돈을 주고 갔다고 고마와했다.

 

영부인이 살아있을 때니가 사진의 역사가 최소한 1974년 이전이 될 것이다.

37년 이전의 사진.

 

요즘의 중동발 민주화운동을 보니,

우리의 유신이 불현듯 떠오른다.

 

세상의 변화 속도는 정말 무서울 정도다. 

그렇게 한 개인의 굴곡진 삶과 죽은 대통령에 대한 추억 등으로 문경 여행은 계속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