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由敬管見

반려견을 통해 배우는 미운 사람 대하는 법

by 유경재 2024. 7. 1.

유경재 지키미 태리와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5년 전이다. 어느 차가운 비가 내리던 이른 봄날에 유경재를 찾았더니 현관 앞에 작고 하얀 아기 강아지 한 마리가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곧바로 수건으로 몸을 닦이고 먹을 거 주고 비가 그친 뒤 현관 오른쪽 화단에 비를 막을 수 있는 책상 같은 가림막을 임시로 설치해 주었다. 보아하니 이제 겨우 젖을 뗐을까 말까 하는 아주 어린 강아지였다. 자주 들르지도 않는 유경재에 이렇게 놓아두면 어떡하란 말인지, 주변에 수소문해 봐도 강아지의 주인이 누군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아파트에 데리고 가서 키울 수도 없는 일이라 일단은 유경재에 두고 좀 더 자주 찾아와 먹이를 주기로 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강아지는 쉬이 낯선 환경에 대한 경계를 풀고, 재롱까지 부릴 정도가 되자 가족들의 본의와는 다르게 반려견을 키우기로 결정이 났다. 강아지의 품종을 보니 진돗개 믹스견으로 보여 인터넷을 통해 미리 고무로 된 가장 큰 개집을 사서 뒤꼍에 두고 사료와 장난감도 수시로 사서 본격적인 반려견과 함께 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암컷이라 원하지 않는 2세를 막기 위해 5개월만인가에 시내 동물병원에서 중성화 수술도 시키고 하면서 지금까지 함께 희노애락을 함께 하며 지내오고 있다. 강아지 이름은 큰아이가 제안한 태리. 태리의 기본적인 돌보미는 나이지만 태리를 가장 사랑하고 또 태리가 가장 따르고 좋아하는 가족은 바로 이름을 지어준 큰아이다.

요즘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유경재에 들러 함께 1-2시간 산책하고 먹거리 챙겨주는 일을 하고 있는데, 어릴 때와는 달리 사람에게 별 애교를 부리지 않는 게 뭔가 섭섭한 마음이 든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5년이란 긴 세월을 곁에서 지켜주고 함께 해 준 사람의 말이라면 좀 알아들을 법도 한데 영 그렇지 않아 정말이지 섭섭한 가운데 미운 마음마저 들 때가 있다. 게다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와서 놀아주는 큰아이를 더 반기고 좋아하니 섭섭함이 더할 수밖에. 간단한 말조차도 알아듣고도 못 알아듣는 척하는 지, 서라고 하면 가고, 가자 하면 버티고, 목이 마른 것 같아 그릇에 물을 담아 입 앞에 갖다 대어줘도 절대로 먹지 않고 맛있다고 생각되는 간식을 사서 줘도 먹지 않고, 심지어 입에 넣어줘도 뱉어버리니, 동물도 함께 살면서 오래 교감하다 보면 사람보다 서로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말도 다 틀린 말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 끝에는 또한 미운 감정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날 큰아이가 태리를 데리고 산책을 갈 때 나도 함께 따라나선 적이 있었다. 그날 발견했던 신기한 것은 태리가 가다가 냄새 맡는다고 멈추면 큰아이가 멈춰라고 하고, 다시 출발하면 가자라고 하고, 간식을 줘도 안 먹으면 먹지 마라고 하고, 나처럼 물을 줬을 때 안 먹으면 먹지 마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쪽으로 가자고 당겨서 안오면 저쪽으로 가자라고 하는 등 모두 태리가 하는 행동이 우선이고 명령은 그 다음이었다. 그러면서 말 잘 듣는다고 좋아한다. 아하, 그래서 태리가 큰아이만을 유독 좋아하는구나. 사람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미물인 강아지이지만 분명 자기 생각이 있고, 제 생각대로 행동하고 싶어하는 것이리라. 그걸 억지로 사람에게 맞추고자 하면 개는 분명 싫어하게 마련일 것이다.

한낱 미물도 저러할진대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상대가 미운 것은 결국 상대가 내가 대하는 태리처럼 내 말대로, 내 뜻대로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낱 개조차 자신의 주관이 있게 마련이고 그 주관을 존중해주면 미움이 사라지는 법인데 사람이라면 모두 자기의 생각과 의지가 있게 마련인데 그것을 억지로 자신의 생각에 맞추도록 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큰아이가 태리의 뜻을 알고 그것을 존중해주는 것처럼 타인의 생각과 의지, 행동을 이해하고 존중해 준다면 미운 마음이 어찌 일어날까. 그날 이후 나 역시 태리를 대할 때는 내 뜻대로 태리를 움직이려고 하지 않고 태리의 행동을 보고 태리를 이해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고, 하루하루 실제 생활 속에서 그렇게 연습을 하고 있다. 어쩌면 사람에 대한 미운 감정도 이런 원리를 적용해서 이해하는 쪽으로 연습해나가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