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새로 생긴 신호과속단속카메라가 부쩍 눈에 많이 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지역만의 현상은 아닐 것이다. 늘어나는 단속카메라를 대하자니 10년 전쯤에 중국 상해에 살던 때가 생각난다. 2007년 북경에 살 때만 해도 중국은 교통질서가 무질서하기로 유명했었는데, 그 후 막상 상해에서 1년 동안 살아보니 의외로 교통질서, 특히 차량들이 교차로나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매우 잘 준수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놀랐었다. 그런데 그게 알고 보니 신호등마다 설치된 단속카메라 때문이라는 걸 알고 ‘그럼 그렇지’라고 하면서 중국인의 교통질서 준수 정신에 대한 잠깐 동안의 놀람을 거둬들인 적이 있다.
작금의 우리 사회 전반을 돌아보면 거의 모든 방면에서 중국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신호과속단속카메라의 급증은 물론이요, 거리청소 일자리, 정책홍보 일자리 등 질이 높지 않은 일자리의 양산이라든지, 전염병 예방 차원이라지만 식당 등의 출입시 큐알코드 인증의 일상화라든지, 손에 꼽자면 거의 모든 게 그런 듯 하다. 참 이상하다 생각하다가도 우리의 정부여당인 민주당과 중국공산당의 일부 단체가 서로 밀접하게 교류하고 있는 현실, 나아가 이 정부 초기 국가정책[특히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했던 정책실장이었던 장하성이 자신의 전공이나 이력과는 무관한 주중대사로 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게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생각마저 든다.
다시 서두로 돌아가서 사회공공분야의 각종 단속법에 대해 중국의 그것과 유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인 부분에서 그게 과연 옳은지를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고자 한다. 교통질서의 경우, 현대사회 특히 차량이 많은 도시에는 횡단보도, 인도, 차선 구분, 신호등 등의 장치가 없을 수는 없지만, 이에 대한 준수 약속은 가장 이상적이기로는 단속과 그에 따른 범칙금이 부과되지 않더라도 서로가 자신보다 공동의 이익을, 상대나 남을 위하는 마음에서 자발적으로 양보하는 마음에서 저절로 약속을 준수하게 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기 위해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양심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불의와 불법, 더 나아가 공공의 이익보다 자기의 욕심을 앞세우고자 하는 이기심을 부끄러워하며 행하지 않는 양심이 있다면, 작금의 이러한 단속카메라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정부 역시 고민해 보았으리라. 국민에 대한 양심 교육과 단속카메라 설치 중에 어느 것이 효율적인 정책인지를……
양심을 살리기 위한 교육이나 효과는 즉시적이거나 가시적인 게 아니며, 단속카메라의 효과는 즉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정부는 어려운 양심 교육보다는 쉽게 단속카메라 설치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양심과 법은 양립하기 어려운 것, 법은 통치집단이 정한 최소한 양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법이 강화될수록 구성원들은 법을 곧 양심이라고 여겨 법 이외의 원래 양심이었던 부분은 망각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법이 강화되면 될수록 구성원들의 양심은 점점 무뎌져 가고, 단지 법에 저촉되지만 않으면 된다는 쪽으로 마음을 먹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로지 법의 그물, 즉 법망에 걸려들지 않는 게 자신의 최선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요즘 들어 단속카메라 없는 신호등은 꼬리물기 하며 신호를 어기는 사람이 더 자주 목격되는 것 같다. 결국 여기에서 핵심은 법은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들며, 양심은 자발적, 능동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구성원 모두가 법에 의한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사회와 자신의 양심에 따른 능동적,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사회, 과연 어느 사회가 옳은 것인가.
지금은 거의 정착된 정책이지만, 과거 한때 유치원 내의 CCTV 설치 문제가 사회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유치원 교사의 아이 학대를 방지하기 위한다고는 하지만 교사의 입장에서는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는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어 논란이 되었다. 문제는 유치원의 CCTV 설치는 인권침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교사들의 아이에 대한 자발적, 능동적 사랑에 따른 돌봄이 약화되고 감시카메라라는 그물에 걸려들지만 않으면 된다는 수동적 돌봄으로 바뀌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여기에 한술 더 떠서 각종 법규 위반자를 민간인들이 서로 감시, 신고, 포상하는 제도, 이른바 각종 파파라치, 예를 들면 교통법규 위반 신고자인 카파라치, 쓰레기 무단 투기 신고자인 쓰파라치, 코로나 방역지침 위반 신고자인 코파라치로부터, 비파라치, 자파라치, 봉파라치, 꽁파라치, 식파라치, 학파라치 등, 거의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정부에서 권장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구성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때로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신고를 하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어, 구성원들 사이에도 친밀보다는 간극을 조장하고 있어 우리의 미래가 더욱 우려스럽다.
인간의 본성이 과연 벌칙이 없으면 법을 어기는 것일까? 어쩌면 그렇게 교육된 것이 아닐까? 오히려 법망이 자꾸 촘촘해져 가니 구성원들은 그것을 피하고 싶은 게 아닐까? 쉽게 접근하는 타율적, 수동적 상벌을 통한 준법사회 구현보다는 양심에 따른 자발적 이타와 양보에서 오는 희열을 구성원들 모두가 깨닫게 되는 그런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가 아닐까. 코로나로 성큼 발을 내딛고 있는 AI로 상징되는 4차산업혁명을 통한 인류의 미래는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인간성의 상실 등 상당히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예측된다. 이러한 부정적인 미래를 보다 희망적인 미래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길은, 내 생각에는 인류가 유사 이래로 강조해왔던 양심에 따른 이기주의의 극복, 이타주의와 공동의 안녕, 인류에 대한 사랑을 세계인 모두의 최고의 덕목으로 갖춰야만 가능할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실현불가능한 이상적인 것, 순진한 생각이라 비웃지 말고, 인류의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유일한 길이라 생각하며, 세계 강대국, 선진국의 지도자, 세계의 석학들이 세계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시급히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세계가 그렇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대한민국만큼은 미래에 대한 발전 패러다임을 새롭게 튼튼하게 다시 구축해야 한다. 그래서 향후 세계를 정신적으로 선도해나갈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간절히 꿈꿔 본다. 마침 대통령 선거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는 이 시점에서 새로 구성되는 정부 수반과 지방자치단체 수장들의 의식이 구성원들의 양심을 되살리는 방향으로 변화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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