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 할머니 권귀자 사장님의 당포식당에서 푸짐한 음식 맛나게 먹으며,
사장님의 인생살이를 흥미롭게 듣고 나니 해가 벌써 하늘 반쪽의 중간 너머 기울고 있었다.
오늘은 이상하게 고 박정희 대통령과 무슨 인연이 있는 날인 모양이다.
식당에서 나와 충주로 돌아오기 위해 차를 몰고 출발하는데 얼마 가지 않아 길 오른편에
청운각이라는 푸른 바탕의 표지판이 보이길래 잠시 구경하고 가기로 했다.
한창 공사 중인 도로 한 켠에 주차시키니 담 너머 말끔하게 단장된 초가집이 보인다.
문경읍내 쪽 도로 풍경.
초가집 옆이 바로 문경초등학교다.
청운각 입구. 청운로 35.
이 집 때문에 이 도로 이름이 청운로라고 불리는 모양이다.
대문 앞.
이 집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문경초등학교 교사 시절 하숙하던 집이라고 한다.
일제시대인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청년 박정희는 바로 이 집 옆 문경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40년까지 약 3년 동안 이곳에서 거처했다고 한다.
지나간 역사는 분명 영광의 역사도 있을 것이요, 오욕의 역사도 있을 것이다.
영광이든 오욕이든 옛 것은 역사로서 보존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마당으로 들어서니 안채 옆에 기념비가 눈에 들어온다.
안채와 사랑채가 ㄱ자 형태를 띠고 있다.
마당 옆 작은 동산에 전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 1978년 11월 24일, 이곳에 들러 기념으로 심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는 채 1년이 되지 못한 다음 해 10월 26일 저격당하여 죽음을 맞게 되고,
대한민국의 역사는 새롭게 시작된다.
그때 나는 무엇을 했던가.
막 대학교에 입학하여 유신독재정권 타도를 위해 짱돌을 들고 교문을 나서기도 하고,
밤이면 자취방, 하숙방에 삼삼오오 모여들어 부산 마산의 시위 소식을 주고 받으며 조만간
역사가 바뀌리라는 희망에 두 주먹을 불끈불끈 쥐고 얼굴을 벌겋게 상기시키며 밤을 지새었었다.
그리고 끝없는 휴교와 복교의 반복, 그러다가
10월 27일, 아침 신문 호외에 대통령의 피살 소식을 접하곤 갑자기 적군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진한 허무감이 엄습했었다.
아~ 옛날이여.
이곳은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곧잘 드나들었다고 한다.
최초의 직장이었으니까 감회가 어떠했을 것이라는 게 짐작이 간다.
대문 쪽 풍경.
안채의 한 방에는 이렇게 대통령 내외분의 관련 사진들,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안방과 건너방 사이의 대청은 이렇게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으로 꾸며져 있다.
민족중흥이란 말, 쇠약해져 가는 민족의 정기가 중간에 다시 흥성해질 것이라는 바람을 담고 있다.
초가집이지만 옛날 집 치고는 제법 규모가 큰 사칸방이다.
대문 옆 담장으로는 방앗간과 우물이 있다.
안채 뒤안.
사랑채 담장 바깥 풍경.
사랑채 뒷쪽의 화장실. 멀리도 있다.
사랑채.
안채의 부엌. 정갈하다. 아궁이 맞은편에 찬장이 보인다.
과거 역사를 보면 식물인 나무도 인간과 교감하는 신기한 기적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 나무 역시 그런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는 식물인간이란 말을 함부로 사용하면 안될 지도 모르겠다.
디딜방아.
우물. 제법 깊은 아래쪽에 물이 보인다.
아직 마르지 않은 우물이다.
우물 안쪽에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여름이면 푸른 가지와 잎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가끔씩 지나가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모양이다.
따사로운 초봄, 문경 나들이는 죽은 대통령과의 묘한 인연을 남긴 채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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