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본능

폭설과의 지독한 인연

by 유경재 2011. 2. 12.

 정말이지 이번 겨울의 눈은 우리 가족과 너무도 지독한 인연을 맺으려는 듯 하다.

우리가 가는 곳이면 여지없이 폭설이 내리니,

눈이 우리를 따라다닌다고 밖에 볼 수 없으리라.

10일 두 아이의 각기 다른 도시에서의 졸업식 때문에 결혼기념일을 떨어져 보내야 했었다.

그리고 11일, 학교에 가서 간단히 볼 일 끝내놓고, 아이들 졸업기념 및 결혼기념 깜짝 여행을 그야말로 돌발적으로 가게 되었다.

일기예보엔 주말까지 조금 춥다고 하지만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따뜻하기만 한 상쾌한 2월 중순의 하루였다.

점심 때가 되어 집에 돌아와 가족들에게 동해안 1박2일을 선포하고 서둘러 준비를 시켰다.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동해안으로 가서 바다도 보고, 생선이나 대게도 맛보고, 숙소를 물색해 하룻밤 재미있게

보내다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래서 이름하여 무작정동해안 여행이라고 하였다.

평소 같으면 인터넷을 통해 맛집이나 숙소, 볼거리 등을 검색해 미리 단단히 계획을 짜게 마련인데,

이번에는 그야말로 깜짝 여행이기에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고 떠나고자 했었다.

오후 3시 쯤 볼 일이 거의 마무리 되고 무작정 동해안으로 출발하였다.

그래도 최초 목적지는 있어야 되었기에 출발하고 있는 차 안에서 네 사람이 다수결로 결정하기를,

주문진은 자주 가 보던 곳이고, 울진이나 영덕은 너무 멀고, 그래서 최종적으로 선택된 곳은....

바로 삼척이었다.

노정은 충주-제천-영월-사북(정선)-태백-삼척 으로 잡았다.

이 길은 38번국도(?)로 거의 자동차 전용도로가 되다 시피 편도 2차선의 신호등 거의 없는 잘 닦여진 도로로,

고속도로와 거의 마찬가지다.

차가 제천을 지나고 영월의 서강, 동강을 지나갈 때 쯤에는 하늘이 잔뜩 흐려지는가 싶더니

조금 더 가자 약간 눈발이 날리는 듯 했다.

"혹시 오늘 동해안 쪽 일기예보 본 사람?"

"......" 모두들 오늘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설마 이렇게 좋은 날씨에 눈이 올라구...

그런데 출발 이틀 전에 다른 일 때문에 차에서 내려 놓았던 스노우체인이 조금은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조금 더 동쪽으로 가니 제법 눈발이 많아지고,

주변의 산야를 보니 금방 오기 시작한 눈이 아닌 듯 보였다.

그래도 설마...

 

차가 정선군으로 들어서니 이제 아예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이거 큰일인데...

정선카지노, 하이원리조트가 있는 사북에 오니 경찰이 도로를 가로 막고 사북 시내로 우회하라고 한다.

무슨 일일까.

나중에 확인한 바로는 눈길에 대형 트럭이 미끄러져 전복되어 양 차선을 다 막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북시내로 들어서니 보시다시피 이렇게 눈이 쌓여있다.

곳곳에서 차가 비틀거리고, 멈춰선 차들의 브레이크등이 유난히 빨갛게들 보인다.

이대로는 못 간다. 어디 가서 체인이라도 사서 장착해야 되겠다.

 

물어물어 한 카센터에 가 보니 우리 차에 맞는 게 없다고 했다.

다시 또 묻고 물어 드디어 사북에 유일한 현대자동차 서비스센터.

그런데 그곳까지 갈 일이 걱정이다.

도로마다 차들이 헛바퀴를 돌리며 그렇잖아도 좁은 도로를 가로막고 있으니... 

 

그 사이에도 야속한 눈은 하염없이 내린다.

 

이번 눈은 습기를 많이 머금은 습설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차에 빗방울 떨어지듯 눈 녹은 물이 눈물처럼 흐른다.

 

좁은 시내길을 벗어나 서비스센터를 찾아가는 큰 길에는 제법 제설이 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카지노가 있기 때문에 다른 도시와 달리

여러 대의 제설차가 쉴 새 없이 오가며 부지런히 제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집에 우레탄 체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거금 11만 원을 들여 어쩔 수 없이 새 체인을 이렇게 장착하였다.

 

 

체인을 장착하고 서비스센터 사람들에게 이 체인으로 삼척까지 갈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어떤 사람은 조심해서 운전하면 갈 수 있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여기보다 태백이 더 눈이 많이 내렸고,

통리 쪽 고개는 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체인을 믿고 갈 수 있겠다는 말을 믿고 다시 삼척을 향해 사북시내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잘못된 생각이었다.

벗어나기도 전인, 사북 119 소방대 앞의 조그마한 고갯길 아래로 두 차선을 가득 채운 차들이 전진할 줄을 모르고

멈춰선 채로 빨간 미등을 신경질적으로 밝히고 있었다.

예상대로라면 6시도 전에 이미 삼척에 도착했어야 했건만 6시가 넘어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는데도 제자리걸음이다.

5-10미터 전진하는가 싶어 앞을 보면 뉴턴하여 돌아가는 차들 때문이었다.

구비진 길이라 앞의 상황도 모르겠고, 이놈의 눈은 또 언제까지 올 지도 모르겠고,

게다가 목적지인 삼척에도 눈이 내리는지를 모르겠으니 기다리면서도 답답하기만 하다.

차의 라디오채널을 수도 없이 돌려봐도 날씨 이야기나 교통 이야기는 없는데,

마침 지금 강원도 동해안 삼척, 강릉 일대에 폭설이 내리고 있으며,

이 폭설은 내일까지 계속 이어져 60cm가 더 올거라는 짤막한 기상 뉴스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다시 결정, 뉴턴하여 충주로 돌아가자고 결정.

돌아오는 길에도 눈은 지독하게도 우리를 쫓아왔다.

날은 이미 캄캄해졌고, 눈발은 계속 우리를 쫓고 있고,

올해는 어떻게 눈과의 인연이 이렇게도 지독한가ㅠ...

충주에 가만 있었으면 만나지 않았을 눈을, 일부러 찾아가서 만나다니,

그리고 그 눈을 마치 마중이라도 가서 충주로 데리고 온 셈이 되어버렸다.

아~지긋지긋한 눈이여! 

'여행 본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연염색 공방 누비진 방문  (0) 2011.03.06
박정희 대통령 하숙집: 청운각  (0) 2011.03.06
경주 남산(금오산)2  (0) 2011.02.09
경주 남산(금오산)1  (0) 2011.02.09
동학사 가는 길  (0) 2011.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