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설레는 나는 몽고반점이 있는 확실한 몽고유목민의 후예라 생각된다.
1월 23일, 대학 후배들과의 정기적인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대전으로 향했다.
본래는 차를 운전해갈까도 생각했는데, 어차피 가면 술을 마시게 되니 차가 짐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모처럼 제대로 여행의 기분을 느껴보기 위해 버스나 기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충주에 오기 전 대구에 살 때는 코레일 회원으로 기차를 1주일이 멀다 하게 이용했었다. 특히 90년대 후반 한 2년 간은
학기 중에 1주일에 두번씩 기차로 서울까지 내왕했었다.
생각하면 지금도 정신이 아득해져 오는데,
아침 9시 수업을 하기 위해 동대구발 서울행 첫 기차인 4시 기차를 타기 위해 집에서 3시 좀 넘으면 길을 나선다.
그러면 12시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가 2시 좀 넘으면 달콤한 잠자리를 과감히 떨치고 일어나 새수하고 준비해야 한다.
기차 안에서 몸이 알아서 깨는 영등포역까지 다시 잠에 빠지고, 부시시한 얼굴로 기차에서 내려
다시 신도림행 전철을 타고, 거기에서부터는 서울의 출근 지옥을 경험하면서
2호선에 몸을 싣고 서울대입구역까지 시루속의 콩나물이 된다.
2호선에서 내리면 다시금 마을 버스로 갈아타고 학교로 들어가는데, 대개는 8시3-40분 정도가 된다.
그렇게 낮 동안 수업을 마치면 서둘러 그 역순으로 집에 돌아오면,
이미 사방이 캄캄해진 밤중이게 마련이다.
그런 경우는 그래도 좀 나은데, 대개의 경우 서울에서의 동료와 회포를 풀다보면
자정 무렵의 막차로 대구로 오는 경우가 빈번하다.
술에 취하면 몸도 시간에 대해 반응이 둔해지는지, 그러다가 곧잘 동대구를 지나 부산까지 갔다가 부산역에서
다음날 첫차로 다시 대구로 오는 경우도 가끔씩 있었다.
아~지금 생각해도 아찔해져온다. 어찌 그런 일을 일주일에 두번씩이나 했을까...
그건 그렇고 충주로 와서는 기차 이용할 일이 거의 없다.
기차역이 있지만 조치원에서 제천까지 이어지는 충북선이기 때문에
충북이 아닌 도시로 가려면 버스나 자동차보다 훨씬 번거롭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그래서 그런지 통 기차를 이용하지 않다가 최근에는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능하면 기차를 이용하자는 생각에
기차 노선과 시간을 검색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불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도 기차를 이용하기로 하고 집에서 코레일 사이트에 접속해서 옛날 쓰던 회원번호를 대니
아직 유효하여 인터넷으로 왕복 차표를 예약할 수 있었다.
전과 달라진 것은 집에서 아예 기차표를 출력까지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8시 18분 대전행 기차를 타기 위해 충주역으로 나갔다.
길지 않은 무궁화호에 몸을 싣자 기차는 인근 주덕과 음성에 잠시 정차한다.
음성을 지나니 충주보다 대지가 더 허옇다.
증평, 청주국제공항, 오근장, 청주, 오송 등의 역을 지나 기차는 충북선의 끝이자 경부선과 만나는 조치원역에 도착한다.
여기에서부터는 경부선을 타고 남쪽으로 달린다.
신탄진을 지나 드디어 대전역에 도착.
9시 50여 분이다. 1시간 4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자동차보다 빠르고 더 편안하다.
앞으로는 자주 이용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기차를 탈 때와 내릴 때 검표나 표 회수를 하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선진국 사람들이 놀란다고 한다.
한국의 민도가 그렇게 높으냐고...자랑스럽다.
자~동학사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할까.
역사 내에 있는 여행안내 센터 중 대전여행 안내 코너에 문의하니 서광장 출구로 나가 지하도를 가다가
공예품 판매하는 곳 옆 오른쪽 출구로 나가면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107번 버스를 타면 한 번에 갈 수 있다 한다.
대전역 앞 광장. 여러 구조물로 복잡하여 시선이 어지럽다.
여기에서 107번 시내버스를 기다린다.
종점이 동학사이니 자리만 있다면 1시간 가량의 시내버스 여행도 기대가 된다.
조금 있으니 버스가 도착, 다행이 빈자리가 많다.
그래서 정류장쪽의 창가에 앉아 대전을 느긋하게 감상한다.
한밭대 앞도 지나고 현충원도 지나고.
종점에 도착했다.
계룡산 동학사 코스 입구이다.
여기는 정확히 말하자면 대전이 아니라 공주에 속한다.
잠시 기다렸다가 후배들(6명)과 만나 우선 부근 식당에서 점심으로는 지나칠 정도의
공주밤막걸리를 제법 거나하게 마신 후 드디어 계룡산 산행을 시작했다.
술 마시느라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4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하는 정상 산행은 포기하고
남매탑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로 하였다.
동학사로 들어가게 되면 입장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돌아서 남매탑에 갔다가 동학사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잡았다.
남매탑을 중심으로 동학사 정 반대편이 유명한 갑사 쪽이다.
걸어가야 할 길이 아직은 많이 남았다.
고도가 높아지자 산은 완연한 겨울설산 모습이다.
이러한 계단도 많이 만난다.
큰배재
드디어 목적지인 남매탑에 도착.
5층탑과 7층탑이 남매처럼 나란히 겨울 계룡산 한 켠을 지키며 서 있다.
남매탑은 전설에 따른 속칭이다.
입에 든 가시를 빼 준 스님에게 한 처녀를 업어다 바쳤는데,
스님은 출가한 몸이어 부부가 되지 못한 채 평생을 비구와 비구니로서 남매처럼 살다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함께 열반했으니, 그를 기려 이 탑을 세웠다고 하는 전설이다.
요즘 유행하는 화두인 '스토리텔링'이 우리 산천 곳곳에 수없이 많이 산재해 있음을 또 한 번 절감하게 된다.
남매탑의 학술적인 공식 명칭.
몇 바퀴 돌며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쳐다본다.
두 스님의 기가 서려 있다면 여기에서 비는 소원도 영험을 얻을 수 있으리라.
흐릿하던 하늘에 한 줄기 햇빛이 쏟아지듯 비치고,
장중한 분위기의 두 탑이 신비스러운 색채를 띤다.
이제 1.7km를 내려가면 동학사가 나온다.
충주에서 동학사 가는 길은 사연도 많고 멀기도 하다.
세진정에 도착했다.
동학사. 4대 사찰 중 동쪽에 있다 하여 동녘 동자가 들어간 모양이다.
세진정. 속세의 먼지를 씻는 정자라는 뜻일 것이다.
범종루.
인재문.
삼은각과 그 오른쪽의 동계사.
숙모전.
언덕 위의 대웅전 모습.
동학사란 파란 글씨의 현판.
오행의 이론에서 파랑색이 동쪽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는데...
무슨 탑일까.
석양에 되비치는 햇살이 동학사 앞의 봉우리에 걸처져 있다.
동학사 앞 도로.
재밌는 표정의 불상들...
만 자 다리.
동학사 일주문.
매표소 옆에 걸린 속세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현수막.
청정 불도량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참여정부 시절, 야심차게 국립공원의 입장료를 없앴었는데,
사찰들이 끝내 이렇게 문화재관람료란 핑계로 버티어 승리? 했다.
산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은 절에도 가지 않는데도 입장료를 내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고 항의를 하지만
결국에는 사찰 땅을 밟는다는 이유로 산 입구에 입장료 징수처를 마련하고 돈을 받고 들여다 보낸다.
사실 문화재나 땅과 같은 사찰의 재산이 어째 스님들 것이며, 절의 것인가.
우리 먼 조상 때부터 공양주가 시주한 것으로, 엄격하게 말하면 우리 모두의 것이지 아니한가.
스님이 속인처럼 권력과 정치에 관여하고 유착하고, 재물에 눈이 어둡게 되면 그게 무슨 종교이랴.
얼마 전 열반하신 법정 스님은 물론이요, 그보다 더 일찍 해탈하신 성철 스님 같은 도인들은
평생을 절약하고 검소하게 지냈다.
옷도 한 벌도 깁고 또 기워서 입는가 하면 심지어 나무이치개(이쑤시개)도 쓰던 걸 씻어서 계속 썼었다.
그분들은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청빈하게 살아야 한다고.
공양주의 시은에 맛을 들이면 끝내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고.
절살림은 되도록이면 단촐하고 가난하게 해야 한다고.
그런데 요즘은 절이나 교회 많은 곳에서 건물을 보다 크게 호화롭게 꾸미고 신도들을 불러모으기 위해 경쟁하듯 하니,
이는 종교 본연의 모습과는 멀어도 한참 먼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차라리 속세에서 양심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주말이라 동학사 앞의 민박집들은 비싸다.
몇 군데 돌아다녀도 모두 흐름한 시설에 10만 원을 넘게 요구하여,
집에서 미리 검색해본 공주 한옥마을로 전화를 해 보니 마침 빈 방이 있다고 한다.
도착해서 사무소에서 간단하게 회원가입하니 8만 5천 원으로 할인이 되었다.
이곳은 전주의 한옥마을을 벤치마킹하여 작년에 지어진 것으로,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곳이다.
겉보기에는 기와를 얹은 한옥들인데, 내부에는 서양식의 욕실도 갖춰져 있으며, 천정에는 냉난방기가 내장되어 있었다.
여기저기에 이러한 집들이 많은데, 집채마다 독립된 방들이 여러 개 있다.
한옥마을 사무소에 본 부근 풍경.
회원가입을 하면 공주의 여러 유적지의 입장료도 무료라고 한다.
우리는 가까운 공주산성으로 향했다.
회색 하늘, 스산한 날씨에 여기저기 허옇게 눈으로 덮여 있는 산성의 풍경은 곧 전쟁이라도 터질 듯 을씨년스럽다.
옛날에는 웅진성, 공산성 등으로 불렸는데, 성을 끼고 흐르는 강이 바로 금강이다.
완만히 구불한 성곽의 윤곽이 운치를 더해 준다.
금강을 가로지르는 두 개의 다리.
다리 오른쪽의 강 중심에 세로로 보이는 낮은 모래무더기 같은 것이 옛날의 다리 흔적이라고 한다.
그렇게 공주산성을 주마간산 식으로 구경한 후 나는 일행과 헤어져 혼자 대전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일주일 째 부산을 거쳐 전라남도, 보길도까지 혼자 배낭여행을 다니는 큰애와 대전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1박2일의 여행, 다시금 내 여행의 역사에 분량을 더했다.
충주에서 동학사 가는 길은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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