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라니냐현상으로 강력 한파가 예견된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날씨는 지난 주부터 전국을 영하권으로 가두고 있다.
소설 절기가 지났지만 이곳 충주는 눈 소식이 없더니만
대설을 하루 앞둔 오늘 아침, 온 하늘이 희뿌옇더니만 마침내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절기는 속이지 못하는 법인 모양이다.
금새 지면이 하얗게 변했다.
펄펄 잘도 내린다.
분위기만 낼 정도로 적당히 내리면 좋겠다.
내일은 절기상으로 대설이다.
대설(大雪)은 24절기 중 21번째 절기로, 소설과 동지 사이에 든다. 음력 11월 중, 양력 12월 7일이나 8일 무렵이다. 태양의 황경이 255°이며, 눈이 많이 내리는 계절이다. 예전부터 이날 눈이 많이 내리면 다음해에는 풍년이 든다고 했다. 월동준비를 마무리하며 겨울을 맞는 농한기에 해당된다. 대설 무렵에는 눈이 많이 온다고 하나, 실제로 눈이 오는 날은 많지 않으며, 본격적인 추위는 동지 무렵부터 시작한다. 농촌에서는 대설 때 눈이 많이 내려 보리밭을 덮으면 보리 농사가 풍년이라고 예측했다.
[대설의 유래]
'대설'이라는 말은 '큰(大) 눈(雪)'이라는 뜻이다. 중국의 전통의학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기원전 475~221), 당나라의 역사서인 <구당서(舊唐書)>(945), 원나라의 <수시력(授時曆)>(1281) 등 여러 문헌에서 대설 기간을 5일 단위로 3후로 구분하여 “大雪三候”(대설삼후), 라고 하는데, 첫 5일간인 초후(初候)에는 “一候鹖鴠不鳴”(일후갈단불명)이라고 하여, 산박쥐가 울지 않고 동면에 들어가며, 다음 5일간인 중후(中候)에는 “二候虎始交”(이후호시교)라고 하여, 호랑이가 새끼를 낳기 위해 교미하기 시작하고, 마지막 5일간인 말후(末候)에는 “三候荔挺出”(삼후여정출)이라고 하여, 여지가 돋아난다고 기록했다.
대설 기간에 대한 이런 묘사가 조선 초 이순지(李純之) 등이 펴낸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1444) 등 한국의 여러 문헌에도 인용되고 있는데, 중국 문헌의 절기는 주(周)나라 때 화북(華北, 지금의 화베이 지방으로 베이징과 텐진이 있는 지역) 지방의 기후를 기준으로 기술된 것이어서 한국의 기후와는 다소 차이가 있어, 화베이 지역에 큰 눈이 오더라도 한반도에서는 이날 큰 눈이 오는 경우가 드물다.
[대설 관련 풍속]
대설은 이미 겨울에 들어선 시기여서, 농촌은 추수와 김장 등 월동준비가 거의 끝난 후의 농한기에 해당된다. 보통 이 무렵에 콩으로 메주를 쑤어 다음 해 담글 장을 준비한다. 대설 무렵에는 제주도에서 올라온 귤이나 가을에 따서 말린 곶감을 먹었고, 이른 동지 팥죽을 대설 때에도 끓여 먹었다. 농촌에서는 대설이 큰 눈을 뜻하므로 이 날 큰 눈이 오면 보리밭의 동해를 막아 다음 해의 작황이 좋다고 생각했다.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丁學游)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중 '11월령(음력이므로 대체로 양력 12월 무렵에 해당)'에 대설과 동지 절기에 대한 당시 농촌 풍습이 전한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중 십일월령
십일월은 중동이라 대설 동지 절기로다
바람 불고 서리 치고 눈 오고 얼음 언다
가을에 거둔 곡식 얼마나 하였던고
몇 섬은 환하고 몇 섬은 왕세하고
얼마는 제반미요 얼마는 씨앗이며
도지도 되어 내고 품값도 갚으리라
시곗돈 장릿벼를 낱나이 수쇄하니
엄부렁 하던 것이 남저지 바이없다
그러한들 어찌 할꼬 농량이나 여루리라
콩기름 우거지로 조반 석죽 다행하다
부녀야 네 할 일이 메주 쑬 일 남았구나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 두소
동지는 명일이라 일양이 생하도다
시식으로 팥죽 쑤어 인리와 즐기리라
새 책력 반포하니 내년 졀후 어떠한고
해 짤라 덧이 없고 밤 길기 지리하다
공채 사채 요당하니 관리 면임 아니 온다
시비를 닫았으니 초옥이 한가하다
단귀에 조석하니 자연히 틈 없나니
등잔불 긴긴 밤에 길쌈을 힘써 하소
베틀 곁에 물레 놓고 틀고 타고 잣고 짜네
자란 아이 글 배우고 어린아이 노는 소리
여러 소리 지껄이니 실가의 재미로다
늙은이 일 없으니 기작이나 매어 보세
외양간 살펴보아 여물을 가끔 주소
깃 주어 받은 거름 자로 쳐야 모이나니
《성종실록》 180권(1485)에는 경기 관찰사 어세겸이 구황품목을 여덟 가지로 조목조목 아뢰는데 그중 넷째를 보면 "말장(末醬)은 미리 인구를 헤아려 메주를 쑤게 하여서 가난을 구제하는 데 나누어 주게 하소서"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쌀, 보리 같은 주식도 필요하지만 소금, 된장도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먹을거리인지라 일찍이 조정에서는 메주를 구황품목에 넣은 것입니다.
이 밖에도 열두 달에 대한 절기와 농사일 및 풍속을 각각 7언 고시의 형식으로 기록한 19세기 중엽 소당(嘯堂) 김형수(金逈洙)의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때는 바야흐로 한겨울 11월이라(時維仲冬爲暢月)
대설과 동지 두 절기 있네(大雪冬至是二節)
이달에는 호랑이 교미하고 사슴뿔 빠지며(六候虎交麋角解)
갈단새(산새의 하나) 울지 않고 지렁이는 칩거하며(鶡鴠不鳴蚯蚓結)
염교(옛날 부추)는 싹이 나고 마른 샘이 움직이니(荔乃挺出水泉動)
몸은 비록 한가하나 입은 궁금하네(身是雖閒口是累)
……(하략)……
이 시기는 한겨울에 해당하며 농사일이 한가한 시기이고 가을 동안 수확한 피땀 어린 곡식들이 곳간에 가득 쌓여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풍성한 시기이다. 한편 이날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에 풍년이 들고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다는 믿음이 전해지지만 실제로 이날 눈이 많이 오는 경우는 드물다. 또 눈과 관련하여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눈이 많이 내리면 눈이 보리를 덮어 보온 역할을 하므로 동해(凍害)를 적게 입어 보리 풍년이 든다는 의미이다.
[대설 관련 우리나라 속담]
-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 눈이 많이 내리면 눈이 보리를 덮어 보온 역할을 하므로 추위로부터 피해를 적게 입어 보리 풍년이 든다는 의미를 가진 속담. 또한 눈은 작물들에게 보온을 담당하는 동시에, 녹으면 소중한 물이 되기 때문에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고 한다.
- 겨울 보리밭은 밟을수록 좋다: 겨울에 보리밭을 밝으면, 흙 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보온에 효과적이라는 말이다.
[대설 관련 중국 속담]
小雪腌菜, 大雪腌肉.(소설엄채, 대설엄육): 소설에는 야채를 소금에 절이고, 대설에는 고기를 소금에 절여둔다.
小雪節到下大雪, 大雪節到沒了雪.(소설절도하대설, 대설절도몰료설): 소설 절기가 되면 큰 눈이 내리고, 대설 절기가 되면 눈이 내리지 않는다.
大雪晴天, 立春雪多.(소설청천, 입춘설다): 대설 때 맑은 날씨이면 입춘 때 눈이 많이 온다.
大雪不寒明年旱(대설불한명년한): 대설 때 춥지 않으면 이듬해 가뭄이 든다.
小雪封地, 大雪封河.(소설봉지, 대설봉하): 소설 때는 땅이 얼고, 대설 때는 강[황하]이 언다.
小雪地不封, 大雪還能耕.(소설지불봉, 대설환능경): 소설 때에는 땅이 얼지 않고, 대설 때도 아직 밭을 갈 수 있다.
小雪不耕地, 大雪不行船.(소설불경지, 대설불행선): 소설 때는 밭을 갈지 않고, 대설 때는 배를 운행하지 않는다.
小雪大雪不見雪, 小麥大麥粒要癟.(소설대설불견설,소맥대맥립요별): 소설 대설에 눈이 보이지 않으면, 이듬해 밀과 보리가 쭉정이가 된다.
[대설 관련 음식]
대설에 먹기 좋은 음식은 귤, 곶감, 팥죽 등이 있다. 설날 떡국, 추석 송편, 동지 팥죽, 정월 대보름 부럼 등 특정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지만 제철 과일과 따뜻한 음식을 먹음으로써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것이 좋다.
껍질을 벗기고 햇볕에 말려서 만든 곶감은 쫄깃한 식감과 달콤한 맛이 일품인 겨울 간식이다. 12월에 곶감을 먹으면 풍부한 영양과 맛을 즐길 수 있다. 곶감이 목소리를 좋게 하고 기침과 가래에 효과가 있다는 한의학 기록도 있다. 실제로 곶감에는 비타민 A와 C가 풍부해 면역력 강화와 눈 피로 예방, 시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팥죽도 대설 때 먹기 좋은 음식 중 하나다. 사람들은 흔히 팥죽이 동지의 음식이라고 생각하지만, 겨울이 시작하는 대설에도 따뜻한 팥죽을 즐겨 먹었다.
팥죽의 주성분인 팥은 비타민 B1이 풍부하고 혈액순환에 좋아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할 뿐만 아니라 피로 회복에도 도움을 준다. 또 팥 껍질에는 사포닌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이뇨작용을 촉진해 붓기 제거, 숙취 해소, 변비 해소에도 탁월하다.
[대설 관련 중국시]
《夜雪》(야설) 한밤중에 내리는 눈
唐(당), 白居易(백거이)
已訝衾枕冷,(이아금침랭) 진작에 이부자리 서늘함이 이상하다 했거늘
復見窗戶明.(부견창호명) 다시 보니 창문이 훤하구나
夜深知雪重,(야심지설중) 밤 깊은데 눈 많이 내린 줄 알겠네
時聞折竹聲.(시문절죽성) 때때로 대나무 꺾이는 소리 들리는 걸 보니
[주석]
- 訝(아): 의아해하다.
- 衾枕(금침): 이불과 베개, 이부자리.
- 重(중): 무겁다. 눈이 많이 내렸음을 의미.
- 折竹聲(절죽성): 쌓인 눈을 견디지 못하고 대나무가 꺾이는 소리.
[작가]
白居易(백거이772-846): 당나라의 시인이자 정치가. 자(字)는 낙천(樂天), 호(號)는 취음선생(醉吟先生), 향산거사(香山居士) 등. 이백(李白), 두보(杜甫), 한유(韓愈)와 더불어 ‘이두한백(李杜韓白)’으로 병칭된다. 당나라 때 뤄양(洛陽) 부근의 신정(新鄭)에 가난한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시를 지을 정도로 총명하였고 성인이 된 후 과거에 합격, 주질현위(盩厔縣尉)〮, 한림학사(翰林學士), 〮좌습유(左拾遺)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백거이는 다작시인으로, 그의 현존하는 문집은 71권, 작품은 총 3,800여 수에 달하며, 당대(唐代) 시인 가운데 최고 분량을 자랑할 뿐 아니라 사회시, 풍유시, 한적시, 애정시 등 시의 내용도 다양하다. 대표작으로는 <賣炭翁>(매탄옹), <琵琶行>(비파행), <長恨歌>(장한가), <對酒>(대주) 등이 있다.
[감상]
이 시는 겨울철, 한밤중에 눈이 많이 내린 풍경을 바깥에 나가 눈을 직접 보고 묘사한 게 아니라 방안에서 내린 눈으로 인한 한기와 환해짐, 대나무 꺾이는 소리 등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는 게 특이하다. 간접 묘사, 측면묘사를 통한 주제의 부각 효과를 노리고 있는 작품이다. 비록 시의 제목과 내용에 절기를 나타내는 ‘대설’이란 말이 없지만 대설 시절의 풍경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으로 보고 예시하였다.
[대설 관련 우리나라 시]
대설(大雪)/정양
마을 공터에 버스 한 대 며칠째 눈에 파묻혀 있다
길들이 모두 눈에 묻혀서 아무 데나 걸어가면 그게 길이다
아무 때나 들어서면 거기 국수내기 화투판 끝에
세월을 몽땅 저당잡힌 얼굴들이 멸칫국물에
묵은 세월을 말아 먹고 있을 외딴집 앞
눈에 겨운 솔가지 부러지는 소리
덜프덕 눈더미 내려앉는 소리에
외딴집 되창문이 잠시 열렸다 닫힌다
잊고 살던 얼굴들이 모여 있는지
들어서서 어디 한번 덜컥 문을 열어보라고
제 발자국도 금세 지워버리는 눈보라가
자꾸만 바람의 등을 떠민다
이제 겨울 한복판으로 성큼 들어서고 있다.
올겨울, 비록 혹독한 추위가 예고되고 있지만 우리 모두 마음만은 어느 때보다 더 따뜻한 겨울이 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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