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까지 반짝 추위가 있었다. 아마도 유경재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을 것이고, 절기에 맞춰 서리도 왔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저께 유경재에 들렀더니 지난 주말까지 푸름을 잃지 않았던 호박잎들이 얼어버린 듯 시들어 있었다.
그리고 가을은 그 끝을 향해 점점 더 깊어가고 있었다.
오이줄기는 일찌감치 시들었고.
유경재 주변도 점차 단풍으로 단장하고 있다.
내일 모레 이번 주 일요일(23일)은 절기상으로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다. 상강은 한로와 입동 사이에 있는 24절기의 하나로, 음력 9월 중, 양력 10월 23일에서 24일 무렵이며, 기후변화를 반영한 절기로서 가을의 마지막 절기이다. 태양의 황경이 210°이며, 한로 뒤 15일째 날로,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나, 밤 기온은 서리가 내릴 정도로 매우 낮아져서 추우며, 낮과 밤의 기온차가 매우 크다. '상강'이라는 말의 뜻이 '서리가 내리다'이다. 이맘때 쯤이면 추수가 거의 끝나고, 동물들은 일찌감치 겨울잠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 산에는 단풍이 절정에 이른다.
'상강'이라는 말은 '서리(霜)가 내리다(降)'이라는 뜻이다.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백로에서부터 이슬이 차가와진다는 한로를 거쳐 이슬은 마침내 서리가 되는 때다. 중국의 전통의학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기원전 475~221), 당나라의 역사서인 <구당서(舊唐書)>(945), 원나라의 <수시력(授時曆)>(1281) 등 여러 문헌에서 상강 기간을 5일 단위로 3후로 구분, 첫 5일간인 초후(初候)에는 “一候豺乃祭獸”(일후시내제수)라 하여, 승냥이 등의 짐승이 사냥을 하며 겨울을 날 준비를 하고, 다음 5일간인 중후(中候)에는 “二候草木黃落”(이후초목황락)이라 하여, 나무와 풀이 누렇게 물들고 낙엽이 지며, 마지막 5일간인 말후(末候)에는 “三候蜇蟲鹹俯”(삼후철충함부)라 하여, 겨울잠을 자는 벌레들이 땅속으로 들어간다고 설명하고 있다. 상강 기간에 대한 이런 묘사가 조선 초 이순지(李純之) 등이 펴낸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1444년) 등 한국의 여러 문헌에도 인용되고 있는데, 중국 문헌의 절기는 주(周)나라 때 화북(華北: 지금의 베이징과 텐진이 있는 지역) 지방의 기후를 기준으로 기술된 것이어서 한국의 기후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상강 관련 풍속]
국화와 관련된 행사: 첫서리를 “早霜”(조상) 또는 “菊花霜”(국화상)이라고 하는데, 이 시기에는 국화가 절정으로 국화를 감상하는 시기이다. 아울러 중양절 풍속처럼 높은 곳에 올라 깨끗한 공기를 만끽하며 먼 경치를 조망하고 양기를 흡입한다.
이 시절에는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시절이어서 대개 가을 나들이를 한다. 한로와 상강 무렵에는 국화주를 마시며 보신 음식으로 추어탕을 즐겼고, 농가에서는 겨울맞이를 했다.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丁學游)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중 '9월령(음력이므로 대체로 양력 10월 무렵에 해당)'에 한로와 상강 절기에 대한 당시 농촌 풍습이 전한다. 조선 시대에는 상강에 국가의례인 둑제(纛祭)를 지냈다.
둑제는 대가(大駕) 앞이나 군대의 행렬 앞에 세우는 대장기(大將旗)에 지내는 군기제(軍旗祭)인데, 한양 문밖 지금의 뚝섬 자리에 사당이 있어서, 무신 당상관(武臣堂上官)이 헌관이 되어 제사를 지냈다. 둑제에는 악생 23명이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며, 간척무(干戚舞: 방패와 도끼를 들고 추는 춤), 궁시무(弓矢舞: 활과 화살을 들고 추는 춤), 창검무(槍劍舞: 창과 검을 들고 추는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렀다. 이날 부르는 노래인 <납씨가(納氏歌)>는 고려의 향악인 청산별곡(靑山別曲)에 맞추어 부르는 곡이며, <정동방곡(靖東方曲)>은 고려의 향악인 서경별곡에 맞추어 부르는 곡으로, 태조의 무공(武功)을 찬양하여 정도전이 가사를 지은 노래이다.
이 밖에도 성묘의 풍속도 있었다.
[상강 관련 속담]
(우리나라)
- 벼는 상강 전에 베어야 한다: 벼가 서리를 맞으면 벼 이삭이 부러져 수확에 지장이 있기 때문에 상강 전에는 추수를 끝내야 한다는 뜻.
- 한로와 상강에 겉보리 간다: 북부 산간 지방 속담으로 보리가 어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한로 때에는 보리 파종 시작해야 하며, 늦어도 상강 전에는 파종을 마쳐야 보리가 얼지 않고 자란다는 뜻.
- 한 해 김치 맛은 상강에 달려 있다: 상강에 서리를 맞은 배추와 무는 수분이 많아지게 되어 아삭한 식감이 살아나며 맛이 좋아지게 되므로, 상강의 날씨가 배추와 무의 품질에 큰 영향을 주어 김치를 맛을 좌우하게 되어 생겨난 속담.
-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 가을철에는 바빠서 아무 쓸모없던 사람도 일하러 나간다는 뜻.
(중국)
霜降摘柿子, 立冬打軟棗.(상강적시자, 입동타연조) 상강 때는 감을 따며 입동 때는 대추를 턴다.
霜降不摘柿, 硬柿變軟柿.(상강부적시, 경시변연시) 상강 때 감을 따지 않으면 땡감이 연시가 된다.
種完麥, 忙完秋, 快采藕.(종완맥, 망완추, 쾌채우) 밀 보리 파종 끝내고, 가을 추수 바삐 마치고, 빨리 연뿌리 캔다네.
- 국화차: 가을꽃의 대명사인 국화는 식재료로 흔히 사용되지는 않지만, 꽃에 들어있는 영양성분과 좋은 향 때문에 차로 많이 만들어 마시기도 한다. 비타민 C가 다량 함유되어 면역력을 증진시켜 주고 피로 해소 및 노화 방지에 좋으며, 피부에도 좋아 먹거나 국화수로 씻어주면 아토피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비타민 A도 많이 들어 있어 눈 건강에도 좋고, 한방에서는 두통을 완화시켜주는 약재로도 사용했을 정도로 두통 완화에 효과가 좋아 이석증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차 외에도 국화주(국화꽃을 따서 베주머니에 넣은 뒤 술독에 담아 담금주를 만듬)나 국화전(국화 꽃잎을 따서 찹쌀가루와 함께 반죽하여 기름에 부침)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 감: 감은 가을의 대표적인 과일로 생과일로 깎아 먹기도 하지만 감 자체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공해 먹는데, 잘 건조해 쫀득한 식감으로 먹는 곶감이나, 과숙시켜 아이스크림처럼 또는 부드러운 식감 그대로 먹는 홍시가 대표적이며, 감잎을 차로 우려내 마시기도 한다. 감에는 특히 스코폴레틴 성분이 많아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고 혈압을 조절해주어 혈관 건강에 좋은 대표적인 과일 중 하나이다. 또한 나트륨을 배출해 주어 고혈압에도 좋다고 하며, 다른 과일보다 비타민 A와 C가 훨씬 풍부하여 숙취 및 피로 해소, 면역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감잎으로 차를 만들어 마시면 비타민과 칼슘이 풍부해 감기 예방 및 골다공증과 관절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 추어탕: 미꾸라지는 양기를 돋우는 데 좋은 가을의 제철 민물고기다.
- 오리고기: 중국의 복건성 남부와 대만 등지에서는 보양식품으로 오리를 먹는다.
<山行>(산행) 산행
唐(당), 杜牧(두목)
遠上寒山石徑斜,(원산한산석경사)저 멀리 차가운 산 비탈진 돌길 오르니
白雲深處有人家.(백운심처유인가)흰 구름 피어오르는 먼 곳에 인가가 보이네
停車坐愛楓林晚,(정거좌애풍림만)가마 멈추게 한 건 황혼 무렵 단풍이 사랑스럽기 때문
霜葉紅於二月花.(상엽홍어이월화)서리 맞은 단풍잎 이월의 꽃보다 붉다네
(주석)
寒山(한산): 깊은 가을, 만추의 산.
石徑(석경): 돌이 깔린 작은 길.
深(심): 「生」자로 된 판본도 있다.
車(거): 교자. 가마. 수레라고 봐도 무방하다.
坐(좌): ~ 때문에.
霜葉(상엽): 나뭇잎이 서리가 내린 뒤 붉게 변하는 것을 가리킨다. 단풍잎.
林晚(림만): 저녁 때의 단풍나무 숲.
紅於(홍어): ~보다 더욱 붉다.
[작가]
杜牧(803-약852): 자(字)는 牧之(목지), 호(號)는 樊川居士(번천거사). 京兆(경조) 萬年(만년: 지금의 섬서성 서안) 사람으로 당대의 유명한 시인이자 산문가이다. 재상(宰相) 杜佑(두우)의 손이자, 杜從郁(두종욱)의 아들이다. 文宗(문종) 大和(대화) 2년, 26세에 진사에 급제하여 홍문관교서랑(弘文館校書郎) 벼슬을 받았다. 후에 강서관찰사(江西觀察使)의 막부에 부임했다가 다시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막부로 옮겼으며, 선부(膳部), 비부(比部), 사훈원외랑(司勛員外郎), 황주(黃州)、지주(池州)、목주(睦州) 자사(刺史) 등의 벼슬을 역임했다.
만년에 장안(長安) 남쪽의 번천(樊川) 별장에 살았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杜樊川」(두번천)이라고 불렀다. 저서로는 《樊川文集》(번천문집)이 있다. 두목의 시가는 칠언절구(七言絕句)가 뛰어나며, 내용은 역사를 노래하며 감회를 서술하는 것을 위주로 하였다. 만당 시인 중에는 성취가 뛰어난 시인이다. 杜牧(두목)을 사람들이 「小杜」(소두)라고 하는 것은 두보(杜甫)를 「大杜」(대두)라고 구별한 것이다. 동시대인 만당 시인 李商隱(이상은)과 함께 「小李杜」(소이두)로 불렸다.
[감상]
이 작품은 제목이나 내용 중에 ‘霜降’이란 말이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霜葉’이란 시어를 통해 상강 절기에 해당하는 시로 볼 수 있다. 봄꽃이 아무리 화려하고 붉다고 해도 가을의 단풍보다는 색채나 규모면에 있어서 훨씬 뒤진다는 것은 실제로 가을 산천의 단풍을 보면 실감이 날 것이다. 그래서 특히 마지막 구절은 지금까지 회자되는 명구가 되었나 보다.
상강/최영숙
장독대 옆에 살던 뱀은 산으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나무는 허술해져 경계처럼 빗금을 긋는다
저렇게 주먹 불끈 쥐고 가는 길
너를 향해 가는 고추 벌레 구멍 같은 길
툭 부러지고 싶다 이제 그만 자리 잡고
눕고 싶은 생각
생각은 자면서도 깨어 있을까
꿈틀 나의 손을 치우는 돌서덜
그 돌서덜 위에서
숲은 작은 몸을 하고 툰드라의 바람으로 운다.
상강이 지났어도/최동락
상강은 서리 내리는 날
울긋불긋 초목들
겨울채비
서둘러야 하는데
요즘 날씨에
초목들도 헷갈린다
초록으로 버티는가 하면
다른 군상들은
주황색으로 갈아입고
겨울 채비에 바쁘다
나도 헷갈린다
두툼한 옷을
입었다 벗었다
텃밭에 겨울나기
시금치 상추 춘채가
너무 무성하다
상강이 가을의 마지막 절기이니 이제 보름 정도 지나면 겨울로 접어든다는 입동(立冬)을 맞을 것이고, 그렇게 또 한 해는 저물어가겠지. 세월이, 시간이 흐르는 게 눈에 보이는 듯 실감이 나는 조락의 계절에서 감상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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