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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가니 추위가 오네

[24절기] 한로(寒露): 이슬도 차가와지는 깊어가는 가을

by 유경재 2022. 10. 7.

내일, 10월 8일(토)은 절기상 한로이다.

한로(寒露)는 추분(秋分)과 상강(霜降) 사이에 있는 24절기 중의 하나로 17번째이자 가을 절기중 다섯 번째이다. 음력으로 9월 중이며, 양력 10월 7일에서 9일 사이에 든다. 태양의 황경이 195°이며, 추분 뒤 15일째 날로, 밤의 길이가 낮보다 점차 길어지며 절기명 그대로 찰 '한(寒)', 이슬 '로(露)'로, 바람이 차츰 선선해지면서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때를 이르는 말로 기후 변화를 반영한 절기이다. 한로가 지나면 밤의 길이가 낮보다 확연히 길어지면서 가을이 깊어져 농촌에서는 추수를 서둘러 마치는 시기이기도 하다.

중국의 전통의학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BC475~221), 당나라의 역사서인 <구당서(舊唐書)>(945), 원나라의 <수시력(授時曆)>(1281) 등 중국의 여러 문헌에서 한로 기간을 5일 단위로 나누어 3후(三候)로 구분하고, 첫 5일간인 초후(初候)에는 “一候鴻雁來賓”(일후홍안래빈)이라 하여, 기러기가 와서 머물고, 다음 5일간인 중후(中候)에는 “二候雀入大水爲蛤”(이후작입대수위합)이라 하여, 참새의 수가 줄어들며 물에는 (동죽) 조개들이 많이 나타난다고 했는데, 조개껍질의 무늬가 참새와 비슷해서 사람들은 참새가 변해서 조개가 되었다고 여겼었다. 마지막 5일간인 말후(末候)에는 “三候菊有黃華”(삼후국유황화)라고 하여, 국화가 노랗게 핀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로 기간에 대한 이런 묘사가 조선 초 이순지(李純之) 등이 펴낸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1444) 등 한국의 여러 문헌에도 인용되고 있는데, 중국 문헌의 절기는 주(周)나라 때 화북(華北, 지금의 화베이 지방으로 베이징과 텐진이 있는 지방의 기후를 기준으로 기술된 것이어서 한국의 기후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찬 이슬이 맺힐 시기여서 기온이 더 내려가기 전에 추수를 끝내야 하므로 농촌은 오곡백과를 수확하기 위해 타작이 한창인 때다. 한편 여름철의 꽃보다 아름다운 가을 단풍이 짙어지고, 제비 같은 여름새와 기러기 같은 겨울새가 교체되는 시기이다. 중국에서는 북방 지역에서 이 시기에 밀 파종을 끝내야 한다.

[풍속]
풍속으로는 이 시기가 중양절(重陽節)과 비슷한 때이기 때문에 중양절의 풍속인 국화술을 마시거나 높은 곳에 올라 수유(茱萸) 열매나 가지를 몸에 차면서 액귀를 물리치는 풍속 등이 있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신속(申洬)이 펴낸 <농가집성(農家集成)>과 이 책에 포함된 <사시찬요초(四時纂要抄)> 등에 의하면, 한로와 상강에는 시절 음식으로 추어탕(鰍魚湯)을 즐겼다고 한다. 명나라의 이시진(李時珍)이 지은 의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미꾸라지가 양기(陽氣)를 돕는다고 하여, 음기가 강해지는 가을을 맞아 양기를 보충하는 음식으로 권장했다.
“上香山, 賞紅葉”(상향산, 상홍엽): 중국, 특히 북경에서는 서북쪽의 향산에 올라 단풍을 감상하는 시기이다.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丁學游)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중 '9월령(음력이므로 대체로 양력 10월 무렵에 해당)'에 한로와 상강 절기에 대한 당시 농촌 풍습이 전해온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중 구월령
구월이라 계추되니 한로 상강 절기로다
제비는 돌아가고 떼 기러기 언제 왔노
벽공에 우는 소리 찬이슬 재촉는다
만산 풍엽은 연지를 물들이고
울밑에 황국화는 추광을 자랑한다
구월구일 가절이라 화전 천신하세
절서를 따라가며 추원보본 잊지 마소
물색은 좋거니와 추수가 시급하다
들마당 집마당에 개상에 탯돌이라
무논은 베어 깔고 건답은 베 두드려
오늘은 점근벼요 내일은 사발벼라
밀따리 대추벼와 동트기 경상벼라
들에는 조 피 더미 집 근처는 콩팥 가리
벼타작 마친 후에 틈나거든 두드리세
비단차조 이부꾸리 매눈이콩 황부대를
이삭으로 먼저 갈라 후씨를 따로 두소
젊은이는 태질이요 계집사람 낫질이라
아이는 소 몰리고 늙은이는 섬 욱이기
이웃집 운력하여 제일하듯 하는 것이
뒷목 추기 짚 널기와 마당 끝에 키질하기
일변으로 면화틀기 씨아 소리 요란하니
틀 차려 기름 짜기 이웃끼리 합력하세
등유도 하려니와 음식도 맛이 나네
밤에는 방아 찧어 밥쌀을 장만할 제
찬 서리 긴긴 밤에 우는 아기 돌아볼까
타작 점심 하오리라 황계 백주 부족할까
새우젓 계란찌개 상찬으로 차려 놓고
배추국 무나물에 고추잎 장아찌라
큰 가마에 앉힌 밥 태반이나 부족하다
한가을 흔할 적에 과객도 청하나니
한 동네 이웃하여 한 들에 농사하니
수고도 나눠하고 없는 것도 서로 도와
이 때를 만났으니 즐기기도 같이 하세
아무리 다사하나 농우를 보살펴라
조 피대 살을 찌워 제 공을 갚을지라

[한로 관련 음식]
한로의 음식으로 국화전, 국화술, 추어탕(鰍魚湯) 등이 있다. 《본초강목》에는 미꾸라지가 양기(陽氣)를 돋운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가을(秋)에 누렇게 살찌는 가을 고기'라는 뜻으로 미꾸라지를 추어(鰍魚)라고 했다.
중국의 경우 참깨나 참기름을 먹음으로써 양기를 보충하기도 한다.
국화주와 국화차를 마시기도 한다.

[한로 관련 중국 속담]
寒露時節人人忙, 種麥摘花打豆場.(한로시절인인망, 종맥적화타두장): 한로 시절 사람마다 바쁘다네, 밀보리 파종 목화 따기 콩 타작.
寒露到霜降,種麥就慌張。
秋分早, 霜降遲, 寒露種麥正當時.(추분조, 상강지, 한로종맥정당시): 추분 때는 빠르고 상강 때는 늦으며, 한로 때 밀보리 파종이 가장 적당한 때.
寒露到霜降, 種麥日夜忙.(한로도상강, 종맥일야망): 한로부터 상강 때까지 밀보리 파종으로 밤낮없이 바쁘다.
寒露收豆, 花生收在秋分後.(한로수두, 화생수재추분후): 한로에는 콩 수확, 땅콩 수확은 추분 뒤에.
寒露有雨, 以後多雨.(한로유우, 이후다우): 한로에 비가 오면, 이후로 비가 많다.
寒露若逢天下雨, 正月二月雨水多.(한로약봉천하우, 정월이월우수다): 한로에 온 천지에 비가 내린다면, 음력 1,2월에는 비가 많다.
寒露少雨水, 春季多大水.(한로수우수, 춘계다대수): 한로에 강우량이 적으면, 봄에 큰비가 잦다.
寒露陰雨秋霜晚.(한로음우추상만): 한로에 흐리고 비가 내리면, 가을 서리는 늦게 내린다.
寒露雨風, 清明晴風.(한로우풍, 청명청풍): 한로에 비바람 불면, 청명에는 맑은 바람 분다.

[한로 관련 중국 시]
詠廿四氣詩 · 寒露九月節(영이십사기시 · 한로구월절)
唐(당), 元稹(원진)

寒露惊秋晚,(한로량추만) 찬 이슬 보니 저무는 가을에 놀라워 하고
朝看菊渐黄.(조간국점황) 아침에 국화를 보니 점점 노란색으로 변해가네
千家風掃葉,(천가풍소엽) 집집마다 바람이 낙엽을 쓸고 있고
萬里雁隨陽.(만리안수양) 만 리 멀리에서 기러기는 햇볕을 쫓아 남쪽으로 오네
化蛤悲群鳥,(화합비군조) 조개로 변하는 뭇 새들을 슬퍼하고
收田畏早霜.(수전외조상) 농작물 추수하니 이른 서리 두렵네
因知松柏志,(인지송백지) 이로써 알겠구나 소나무 잣나무의 지조를
冬夏色蒼蒼.(동하색창창) 겨울이나 여름이나 언제나 푸르디푸른 색

[주석]
- 寒露(한로): 24절기 중 17번째 절기. 가을의 5번째 절기. 양력 10월 7일에서 9일 사이에 든다.
- 化蛤(화합): 참새가 물로 들어가 조개로 변하는 것. 옛날 사람들은 참새가 수백 년 후에 바다에 들어가 조개가 된다고 생각했다. 일설에는 1000년 된 제비가 바다 조개가 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이 구는 앞의 절기 설명에서 언급한 ‘한로삼후’(寒露三候) 중의 “二候雀入大水爲蛤”(이후작입대수위합)을 말하고 있다.
- 收田(수전): 농작물을 수확하는 것.

[작가]
원진(779-831): 자는 미지(微之)이며,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 사람. 당나라 때 대신이자 문학가. 북위(北魏)의 종실인 선비척발부(鲜卑拓跋部)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있었으며, 정원(貞元) 9년(793)에 명경과(明經科)에 급제하여 좌습유(左拾遺) 벼슬을 받았다. 하중(河中)의 막부에 들어가 교서랑(校書郎)으로 발탁되었으며, 감찰어사(監察御史)로 옮겼다. 재상에 임명되었으나 이봉길(李逢吉)의 획책으로 동주자사(同州刺史)로 나가게 되었으며, 후에 조정으로 들어와 상서우승(尙書右丞)이 되었다. 태화(太和) 4년(830)에 무창군절도사(武昌軍節度使)로 나갔다. 태화 5년(831)에 죽었으며,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가 추증되었다. 원진은 백거이(白居易)와 동과에 급제하여 평생 시우로 지냈으며, 함께 신악부운동을 제창하기도 하여, 세상에서는 그 두 사람을 ‘원백’(元白)이라고 병칭했다. 현존 시는 830여 수가 되며, 《元氏長慶集》(원씨장경집)이 현존한다.

[한로 관련 한국 현대시]
한로(寒露)/박성우

머구실 할머니는 참깨를 널고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끝물 고추 따는 날이어서
새참거리를 고추밭으로 실어다주었다
돼지고기에 호박 넣고 지진 찌개와
수수 넣어 지은 뜨끈한 밥을
감나무 밑으로 내고 홍시를 따먹었다

면소재지 농협으로 돈 찾으러 갔다 오니
그새, 고추포대는 밭두렁에 쌓여있고
아주머니들은 다른 밭으로 가고 없다

나는 산골마을을 지키는 형과 함께
겨우내 땔 땔감을 경운기로 날라 쌓았다

해는 서둘러 먼 산을 넘어가고
경운기 소리 딸딸딸 딸딸딸딸
어둑해지는 길을 요란하게 넘었다
짐칸 가득 고추포대 싣고 오는 길에
하마 갈릴 뻔한 늙은 호박을 따서
고추포대자루 위에 앉혀 마을로 들어왔다

감장아찌 담으려고
따다놓은 먹감은 달게 떫었다

끝물인 줄만 알았던 산골마을에 단맛이 들고 있었다

차가와진 이슬은 10월 하순이 되면 마침내 서리가 될 것이고,(상강) 그래서 이 좋은 가을도 끝이 날 것이니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