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같은 주말이다.
긴 엄동한설 끝이라 더욱 포근하게 느껴진다.
어쩌다 보니 가족 다섯명이 사방으로 찢어져 살게 되었다.
아내는 시모 병간호를 위해 포항에,
큰애는 고교4년을 위해 서울에,
둘째는 양평의 고교 기숙사에,
그리고 막내는 충주 집에서 며칠째 나와 단 둘이서 살고 있다.
주말을 맞아 도서관에 가겠다는 아이를 꼬드겨 함께 차 정비 및 밀린 일 처리하고 야외로 나갔다.
벌써 점심 때도 지난 시간, 멀리 갈 수는 없고 월악산 만수계곡 정도에 가서
신선한 공기나 마시고 오기로 했다.
점심을 거르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늦은 아침 때문에 정찬을 먹기에도 좀 그래서
망설이면서 수안보 읍내를 서행으로 통과하는데,
마침 눈에 띄는 집이 있었다.
물탕공원에서 수안보시장으로 가는 길이다.
그렇다. 2,500원 잔치국수집이다.
간판이 따로 없다. "잔치국수2,500원"
자그마한 규모다. 자세히 봐도 전화번호 하나 보이지 않는다.
추측컨대 시원스런 성격?의 주인 아줌마가 삶아서 건진 국수를 그릇에 담고 있다.
식당 내부도 역시 좁다.
4인용 테이블 두 개, 6인용 테이블 두 개, 총 2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다.
잠시 벽에 걸린 휘호를 감상해 보자.
이 작품은 중국의 동란기인 남조 동진(東晉)에서 송(宋)에 걸쳐 살았던 전원시인인 도연명(陶淵明365-427)의 <잡시(雜詩)>12 수 중의 첫번째 작품이다.
人生無根蒂(인생무근체):인생은 뿌리도 꼭지도 없으니
飄如陌上塵(표여맥상진):길 위의 티끌 같이 덧없는 것
分散逐風轉(분산축풍전):흩어져 바람에 날려 굴러 다니니
此已非常身(차이비상신):이내몸 이미 영원한 게 아니라네
落地爲兄弟(낙지위형제):이 땅에 떨어져 형제가 되었으니
何必骨肉親(하필골육친):하필이면 골육친척만 찾겠는가
得歡當作樂(득환당작락):기쁠 땐 마땅히 즐거움 누려야 하니
斗酒聚比隣(두주취비린):한 말 술로 이웃을 초청한다네
盛年不重來(성년부중래):한창 때는 다시 오지 않고
一日難再晨(일일난재신):하루에 두 번의 새벽도 없다네
及時當勉勵(급시당면려):그때그때 부지런히 노력해야지
歲月不待人(세월부대인):세월은 사람을 위해 기다려주지 않는다네
국수와 함께 나온 맛간장과 김치.
특히 김치가 약간 쏘는 듯한 시원하고 독특한 맛이 난다.
잔치국수.
특별한 고명은 없고, 김에 맛간장이 전부다.
육수가 입에 맞다.
간장을 넣고 말아보니 양이 제법 많다.
간식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한 끼 식사로도 괜찮을 듯.
이후에도 수안보에 갔을 때 다시 찾고 싶은 우연히 발견한 맛집이다.
왜 이렇게 싸게 파느냐고 물으니, 주인 아주머니 왈, 돈을 벌기보다는 남을 도우며 사는 게 좋아서란다.
뭔가 사연이 있음직하지만...그 정도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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