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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가니 추위가 오네

[24절기] 하지(夏至): 낮 시간이 가장 긴 날 본격적인 더위의 시작

by 유경재 2022. 6. 20.

내일이면(21일) 일 년 중 낮 시간이 가장 긴 날이자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하지이다.

하지(夏至)는 24절기 중 열 번째 절기이자, 여름 여섯 절기 중 네 번째로서, 망종(芒種)과 소서(小暑) 사이에 든다. 태양의 황경이 90°인 날로 대개 621~22일 무렵이다. 다른 말로 夏節”(하절), “夏至節”(하지절) 등으로도 불리며, BC7세기에 24절기 중 가장 먼저 확정된 절기이다. 태양이 가장 북쪽인 하지점(夏至點)에 위치하게 되며, 북반구에서는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남반구에서는 가장 짧은 날이다. 동지(冬至)에 가장 길었던 밤 시간이 조금씩 짧아지기 시작하여 이날 가장 짧아지는 반면, 낮 시간은 1년 중 가장 길어져 무려 14시간 35분이나 된다. 1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길기 때문에 북반구의 지표면은 태양으로부터 가장 많은 열을 받는다. 그리고 이 열이 쌓여서 하지 이후로는 기온이 상승하여 더워지면서, 삼복(三伏) 때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게 된다. 일종의 "異時因果"(이시인과: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과보의 법칙 중의 하나로, 원인이 있고 난 뒤에 결과가 바로 이루어 지지 않고 시간을 달리 해서 나타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라는 말은 여름의 절정이라는 뜻이다. 하지 이후부터 음기가 생겨나고 양기는 점차 쇠퇴하기 시작한다.

[하지삼후]

고대 문헌에 의하면 하지 기간을 5일 단위로 나누어 3(三候)로 구분하여(, 二候蟬始鳴, 三候半夏生.) 각각 기후적 특징을 설명하고 있는데, 기록에 따르면 하지일부터 첫 5일간인 초후(初候)에는 일후녹각해”(一候鹿角解)라고 하여, 사슴의 뿔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고,[녹각은 앞을 향해 자라기 때문에 에 속하는데, 이때부터 양기가 쇠퇴하기 때문에 녹각 역시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며, 동지 때가 되면 완전히 떨어져 나가고 새로운 뿔이 자라나기 시작한다고 음양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다음 5일간인 중후(中候)에는 매미가 울기 시작하며, 마지막 5일인 소서(小暑) 전까지인 말후(末候)에는 약초로 쓰는 반하(半夏: 끼무릇 · 소천남성 · 법반하라고도 하며, 덩이뿌리로 밭에서 자라는 한약재. 을 좋아하는 성질을 지님)의 뿌리에 작은 공처럼 생긴 덩이줄기가 생기기 시작한다. 반하는 잡초처럼 밭에서 자라는데 보통 7~8월에 덩이줄기를 수확하여 기침, 가래 증상에 사용한다. 소염, 진통의 효과도 있어 예로부터 민간요법에 널리 쓰였다.

[하지의 풍속]

하지는 모내기가 끝날 무렵이며, 더불어 늦보리, 햇감자와 햇마늘을 수확하고 고추밭 김매기, 늦콩 파종 등으로 논밭의 농사가 한꺼번에 몰아쳐서 무척 바쁜 시기이다. 이 밖에도 메밀 파종, 누에치기, 그루갈이용 늦콩 심기, 대마 수확, 병충해 방재 등이 모두 이 시기에 이루어진다. 농촌에서는 하지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보았고, 반대로 하지가 지날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냈다. 이때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 이때가 되면 매실이 노랗게 익어가기 때문에 이때의 장마를 梅雨’(매우)라고도 한다. 따라서 구름만 지나가도 비가 온다는 뜻으로 하지가 지나면 구름장마다 비가 내린다.”라는 속담도 있다. 감자의 수확은 하지가 제철이기 때문에 감자를 '하지감자'라고 하기도 하고, 햇감자를 '하지감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감자는 하지가 지나면 싹이 말라 죽기 때문에 하지를 '감자 환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방에서는 하지가 되면 양기가 올라 음양의 기운이 서로 상충하게 되므로, 자칫하면 육신의 균형을 잃기 쉬운 날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격렬한 운동을 금지하고 남녀 간의 관계도 피하며 심신을 편안하게 하도록 권했다. 몸의 균형을 잃어 탈이 날 수 있기 때문에 음식을 조심하며, 경솔하게 돌아다니거나 화를 내는 것도 금기로 여겼다.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丁學游)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오월령(음력이므로 대체로 양력 6월 무렵에 해당)'에 망종, 하지 절기에 대한 당시 농촌 풍습이 전한다.

[하지 관련 속담]

(우리나라)

- 하짓날은 감자 캐먹는 날이고 보리 환갑이다

- 하지가 지나면 감자 환갑이다: 하지가 지나면 보리가 마르고 알이 잘 배지 않으며, 감자 싹이 죽어버리기 때문.

- 하지가 지나면 발을 물꼬에 담그고 산다.

- 하지가 지나면 구름장마다 비가 내린다.

- 하지가 지나 열흘이면 구름장마다 비다.

- 하짓날에 남쪽이 적색을 띠면 나라가 태평하고 곡식이 풍성하다.

(중국)

不到冬至不寒, 不到夏至不熱(부도동지불한, 부도하지불열): 동지가 되지 않으면 춥지 않고, 하지가 되지 않으면 덥지 않다.

夏至無雨三伏熱(하지무우삼복열): 하지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삼복에 덥다.

夏至狗無處走(하지구무처주): 하지에는 개도 도망갈 데가 없다.

日長長到夏至, 日短短到冬至(일장장도하지, 일단단도동지): 해가 길어져 하지까지 길어지고, 해가 짧아져 동지까지 짧아진다.

夏至東南風, 十八天後大雨淋(하지동남풍, 십팔천후대우림): 하지 때 동남풍이 불면 18일 후에 큰비가 온다.

[하지 관련 한시(중국시)]

詠廿四氣詩夏至五月中(영이십사기시하지오월중24절기 중 하지 시절 오월을 노래하다

, 元稹(원진779-831)

 

處處聞蟬響(처처문선향), 곳곳에 들리는 매미 소리

須知五月中(수지오월중). 음력 5월임을 알려주는 듯

龍潛淥水穴(용잠녹수혈), 용은 맑은 물속 깊은 굴에 잠겨 있고

火助太陽宮(화조태양궁). 불은 태양궁을 도와 해가 더 뜨겁네

過雨頻飛電(과우빈비전), 지나가는 비에 자주 번개 번쩍거리고

行雲屢帶虹(행운루대홍). 떠가는 구름에는 곧잘 무지개가 함께하네

蕤賓移去後(유빈이거후), 양의 음률 유빈이 떠나간 후로는

二氣各西東(이기각서동). 음과 양의 기운이 각각 동서로 헤어지네

 

[주석]

- 龍潛(용잠): 양기가 잠복한 것이 마치 용이 물속에 잠겨 있는 것 같다는 말.

- 渌水(녹수): 맑고 투명한 물.

- 太陽宮(태양궁): 태양의 신이 사는 궁전. 전설에 의하면 수인씨(燧人氏)가 새를 타고 가서 불을 가져왔다고 한다.

- 飛電(비전): 번쩍거리며 나는 듯한 번개.

- 帶虹(대홍): 무지개를 동반하다. 띠 모양의 무지개라고 보아도 될 듯.

- 蕤賓(유빈)옛날 음악의 12() 중 일곱 번째. 유빈은 양률에 속한다. 하지에 극성했던 양의 기운을 비유한 말이다.

- 移去(이거): 옮겨서 떠나간다.

- 二氣(이기): 음양(陰陽)의 두 기운. 하지 이후로 음의 기운은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하고, 양의 기운은 조금씩 감소하기 시작하는 것을 말한다.

 

[작가]

원진은 자가 미지(微之)이며, 하남성 낙양(洛陽) 사람이다. 당나라 때의 대신이자 문학가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있어서 정원(貞元) 9(793)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좌습유의 벼슬을 받았으며, 감찰어사로 옮겼다. 한차례 재상에 임명되었으나 동주자사(同州刺史)로 좌천되었으며, 다시 조정으로 들어와 상서우승(尙書右丞)이 되었다. 태화(太和) 4(830)에는 무창군절도사(武昌軍節度使)로 나갔다가 이듬해 졸했으며,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벼슬이 추증되었다. 원진은 백거이(白居易)와 함께 과거에 급제하여 평생 문학적 동반적로 지냈으며, 함께 신악부 운동을 제창하기도 했다. 세상에서는 그들을 元白”(원백)이라고 병칭했으며, 그들의 문장을 元和体”(원화체)라고 했다. 현존하는 그의 시는 830여 수이며, 元氏長慶集(원시장경집)이 세상에 전해온다.

[하지 관련 우리나라 현대시]

<하지(夏至)> 최원정(1958~ )

장맛비 잠시 멈춘

하늘 사이로

자귀나무 붉은

꽃등을 켰다

주먹만 한 하지감자

뽀얀 분 나게 찌고

아껴 두었던 묵은지

꺼내는 순간

어디선가 들리는

매미의 첫 울음소리

놋요강도 깨질 듯 쟁쟁하다

 

오늘부터 장마가 제주도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북반구의 여러나라에서는 이상 폭염이 발생되고 있어 우리나라도 올 여름 유례 없는 더위가 예상된다. 하지 다음에 이어질 본격적인 더위의 절기인 소서와 대서를 어떻게 나야 할 지 벌써 걱정이 된다. 더위 글을 쓰고 있자니 시원한 막국수나 냉면 한 그릇이 문득 간절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