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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가니 추위가 오네

[24절기] 소만(小滿): 밀, 보리가 부지런히 이싹을 채워가는 시기

by 유경재 2022. 5. 20.

내일(5월 21일)은 24절기 중 소만이다. 소만(小滿)24절기 중 여덟 번째이자, 여름 절기의 두 번째로 입하(立夏)와 망종(芒種) 사이에 든다. 520일에서 22일 사이가 되며, 태양의 황경이 60°인 날로 대개 햇볕이 강해지고 강수량도 점점 많아지고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며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중국 속담에 크고 작은 시내가 물로 가득 차며 양자강과 황하가 가득 찬다네.”(小满大满江河满)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로 본다면 소만(小滿)이란 이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즉 하나는 농사와 관련된 것으로 보리나 밀의 싹이 아직 완전히 가득 차지 않았다는 뜻이며, 다른 하나는 강수량과 관련하여 아직 강과 내를 가득 채우지는 않는 시기라는 것이다. 농촌에서는 모내기가 시작되고 보리를 수확한다.

'소만'이라는 말은 만물이 자라서 세상을 가득 채운다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여러 문헌에 소만 기간을 5일 단위로 3후로 구분하여 小满有三候라 하여 소만에 세 가지 기후 현상이 있다고 했는데, 처음 5일간인 일후(一候)에는 一候苦菜秀’(일후고채수)라 하였으니, 씀바귀가 줄기와 잎이 무성해지고, 다음 5일간인 이후(二候)에는 二候靡草死’(이후미초사)라 하였으니, 가는 잎의 냉이 같은 봄나물들이 강렬한 햇빛에 말라 죽으며, 마지막 5일간인 삼후(三候)에는 三候麥秋至’(삼후맥추지)라 하였으니, 보리싹이 익어간다.

[소만 관련 풍속 및 속담]

소만 무렵 농촌에서는 본격적으로 농사일이 바쁘게 시작된다. 논을 갈아 물을 대어 모내기 준비를 하고, 빠른 지역에선 모내기를 하기도 한다. 보리가 익어 수확을 서둘러야 하며, 밭작물도 모종을 심는다. 가을에 거둔 곡식이 떨어지고 보리 수확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인 이 무렵을 전에는 '보릿고개'라고 부르기도 했다. 비가 내린 후 죽순이 올라오면 살짝 데쳐 별미로 먹었으며 향이 좋은 개똥쑥으로 쑥국을 끓여 먹었다. 갓 거둔 보리로 햇보리밥을 해먹었다. 죽순을 낸 대나무가 양분을 잃고 누렇게 변한 것을 죽추(竹秋)라고 불렀다.

소만 무렵 날씨는 변화가 심해 한여름 기온을 보이다가도 삽시간에 비바람이 불고 기온이 내려가기도 해서, “소만 바람에 늙은이가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丁學游)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4월령(음력이므로 대체로 양력 5월 무렵에 해당)'에 입하, 소만 절기에 대한 당시 농촌 풍습이 전하는데 “4월이라 맹하(孟夏: 초여름)되니 입하, 소만 절기로다라고 하여, 이 무렵부터 여름 기후가 나타나고 식물이 무성하게 자란다고 보았다.

입하와 소만 무렵에 행했던 풍속으로는 봉숭아 물들이기가 있는데 동국세시기에 보면 "계집애들과 어린애들이 봉숭아를 따다가 백반에 섞어 짓찧어서 손톱에 물을 들인다"라는 기록이 있다. 봉숭아꽃이 피면 꽃과 잎을 섞어 찧은 다음 백반과 소금을 넣어 이것을 손톱에 얹고 호박잎, 피마자잎 또는 헝겊으로 감아 붉은 물을 들인다. 이 풍속은 붉은색이 사악함을 물리친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첫눈이 내릴 때까지 손톱에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을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밖에 풋보리를 몰래 베어 그슬려 밤이슬을 맞힌 다음 먹으면 병이 없어진다고 여기기도 했다.

60여 년 전 소만 풍경을 동아일보1947522일 기사를 통해 들여다보겠다.

 

여름은 차츰 녹음이 우거지고 철 맞춰 내린 비로 보리와 밀 등 밭곡식은 기름지게 자라나고 못자리도 날마다 푸르러지고 있으나 남의 쌀을 꿔다 먹고 사는 우리 고향에 풍년이나 들어주어야 할 것 아닌가? 농촌에서는 명년 식량을 장만하고자 논갈이에 사람과 소가 더 한층 분주하고 더위도 이제부터 한고비로 치달을 것이다.”

[소만 관련 중국 속담]

○ 小滿小滿麥粒百漸滿(소만소만, 맥립백점만)

소만 때가 되면 보리밭에 보리싹이 알이 점점 알이 차기 시작한다.

○ 小滿不下黃梅偏少(소만불하, 황매편소)

소만 무렵 강우량이 적으면 매실이 익을 때도 강우량이 적을 가능성이 있다.

○ 小滿不滿芒種不管(소만불만, 망종불관)

소만과 망종 사이 비는 상관관계가 있는데, 소만 때 비가 적으면 망종 때도 비가 적다. 반대로 소만 때 비가 많으면 망종 때 홍수 재해를 조심해야 한다.

○ 小滿不滿幹斷田坎(소만불만, 한단전감)

소만 무렵 비가 오지 않으면 벼농사에도 물이 부족하다.

小滿不滿無水洗碗(소만불만, 무수세완)

소만 무렵 비가 충분히 오지 않으면 밥 그릇 씻을 물도 없게 된다.

○ 麥到小滿日夜黃(맥도소만일야황)

, 보리는 소만 때가 되면 주야로 누렇게 익어간다.

小滿十日滿地黃(소만십일만지황)

소만 무렵 10일 동안 들판이 온통 누렇게 변한다.

 
[소만 관련 한시]

<小滿>(소만) 소만

() 구양수(歐陽修)

 

夜鶯啼綠柳,(양앵제록류) 밤꾀꼬리는 푸른 버드나무에 앉아 울고

皓月醒長空.(호월성장공) 하얀 달은 긴 하늘에 깨어 있네

最愛壟頭麥,(최애롱두맥) 가장 사랑스러운 건 밭고랑의 보리

迎風笑落紅.(영풍소락홍) 바람을 맞으며 떨어지는 봄꽃을 비웃는다네

 

[주석]

: 뚜렷하다. 분명하다. : 깨끗하다. 밝다.

: 밭둑. 밭이랑. 落紅: 떨어지는 꽃.

 

이 시는 무엇보다도 색채감이 풍부하다. 캄캄한 밤, 푸른 버드나무, 짙은 쪽빛의 하늘, 황금빛 보리, 녹색, 흰색, 홍색 등을 동원하여 소만 시절 풍경을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다음으로 작가의 당시 심리, 감정을 담은 어휘가 적절히 사물에 이입하고 있는 것도 돋보인다. 꾀꼬리가 울고, 보리가 가장 사랑스럽고, 떨어지는 봄꽃을 비웃는 등이 그것이다. 특히 마지막 구는 여름이 되어 봄꽃이 모두 조락하게 되지만 보리는 이제 한창 결실의 때라는 것을 작가가 직접 개입해서 말하는 대신 사물 간의 조락과 결실이라는 대립 구도를 통해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구양수(歐陽修1007-1072): ()는 영숙(永叔), ()는 취옹(醉翁), 만년의 호는 육일거사(六一居士). 길주(吉州) 영풍(永豐)(지금의 강서성江西省 영풍현永豐縣) 사람. 시호(谥號)는 문충(文忠)이며, 세상에서는 그를 구양문충공(歐陽文忠公)이라고 부른다. 북송 때의 정치가, 문학가, 사학가로,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 왕안석(王安石), 소순(蘇洵), 소식(蘇轼), 소철(蘇轍), 증공(曾鞏)과 함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로 불린다. 후인들은 또 구양수와 한유, 유종원, 소식 등 네 명을 천고문장사대가(千古文章四大家)”라고도 부른다. 북송 시기 시문 혁신운동을 이끈 사람이기도 하다.

[소만 관련 우리나라 시]

<小 滿>

         /나희덕

 

이만하면 세상을 채울 만하다 싶은

곡 그런 때가 초록에게는 있다

 

조금은 빈 것도 같게

조금은 넘을 것도 같게

 

초록이 찰랑찰랑 차오르고 나면

내 마음의 그늘도

꼭 이만하게는 드리워지는 때

초록의 물비늘이 마지막으로 빛나는 때

 

小滿 지나

넘치는 것은 어둠뿐이라는 듯

이제 무성해지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듯

나무는 그늘로만 이야기하고

 

그 어둔 말 아래 맥문둥이 보랏빛 꽃을 피우고

 

小滿 지나면 들리는 소리

초록이 물비린내 풍기며 중얼거리는 소리

누가 내 발등을 덮어다오

이 부끄러운 발등을 좀 덮어다오

소만삼후

이제 또 보름 정도 지나면 여름 세번째 절기인 망종이 된다.

이번 보름은 얼마나 빨리 지나갈까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