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내용은 내가 평소 생각하던 바를 체계적으로 잘 설명해 주고 있어서 매우 공감이 가는 글이라 이렇게 전재한다.
- 출처: 대학지성(21.6.22)
- 글쓴이: 박충환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
[경북대 민교협 시사칼럼]
내게는 지금도 존경해 마지않는 대학 시절 은사가 한 분 계시다. 당신은 훌륭한 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제자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자애로운 스승이기도 했다. 슬하에 중고등 학생 자녀를 셋이나 두고 계셨던 그 교수님은 연구실 티슈를 반으로 잘라 사용하고 자녀들에게 필요한 탁상용 전등을 한참이나 벼르다 시장에서 중고로 구해줄 정도로 검소한 분이었다. 이렇게 당신 자신과 자녀들에게는 지극히 검소하셨던 분이 정작 사재를 털어 제자들에게 밥과 술을 사는 데는 아낌이 없었다.
대부분 농촌에서 올라온 흙수저 출신 자취생들에게 당신이 사주시는 밥 한 그릇은 고향의 집밥처럼 따듯했고 사제 간의 정을 담아 주고받은 술잔은 감로주보다 달콤했다. 당신과 함께 밥을 먹고 밤새 술잔 기울이며 나누었던 대화는 그 어떤 가르침보다 훌륭한 가르침으로 갈무리되어 졸업 후 사회인이 된 수많은 제자들에게 삶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교수님은 그렇게 어떤 때는 부모처럼, 어떤 때는 인생 선배로서, 또 어떤 때는 친구처럼 많은 시간을 제자들과 함께했고, 가난한 농민의 아들이었던 내가 감히 도미 유학에 도전하고 학자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격려해주신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 선생에 그 제자라 했던가! 과거 은사님의 ‘돈 많이 드는’ 학생지도 방식은 현재 교수가 되어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나를 통해 오롯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급변한 세태만큼이나 사제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연구실 밖에서 가능한 자주 학생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소통하는 것이 대학교육의 중요한 일부라 여기며 이를 최대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내가 제자들에게 주는 관심과 사랑은 그 교수님께 받은 은혜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지만, 선생이자 인생 선배로서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에 큰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최근 신자유주의 시장논리의 만연으로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대학에서 이제 이런 사제관계조차 옛이야기가 될 것 같아 통탄을 금할 수 없다. 일전에 캠퍼스 곳곳에 “교수는 부끄러움도 없나? 학생상담 카톡 1건에 13만 원!”이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걸려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학내 구성원 중 누군가 학생상담 명목으로 달랑 카톡 문자 1건 보내고 한 학생당 13만 원이나 받는다며 교수들을 조롱하고 비난한 것이다. 이 터무니없는 내용의 현수막을 본 교수들은 참담한 심정으로 분노했다. 그런데 교수들의 분노는 현수막을 건 익명의 학내 구성원이 아니라 교육부를 향해 표출되고 있었다. 사회적 존경을 받아야 할 국립대 교수들을 돈이나 밝히는 파렴치한으로 만든 원흉이 바로 교육부였기 때문이다.
2015년 교육부는 이른바 ‘교육·연구 및 학생지도 비용’(이하 교연비)이라는 정책을 시행한다는 지침을 각 국립대학에 하달했다. 대학마다 그 액수와 지급방식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국립대 교수들에게 지급되는 교연비는 통상임금에 준하는 급여성 경비로 그것을 받지 않으면 동급의 일반직 공무원보다 많게는 2,000만 원 정도 연봉을 적게 받는 셈이 된다. 교연비는 원래 사립대학에 비해 턱없이 낮았던 국립대 교수들의 급여를 보충하기 위해 기성회 회계에서 연구보조비 등의 명목으로 지급되던 급여 보조성 경비를 대체하는 것이었다. 정부는 본봉 외에 이 급여 보조성 경비를 받는다는 이유로 국립대 교수들에게는 일반직 공무원이 받는 20여 가지의 수당조차 지급하지 않아 왔다. 항간에는 국립대 교수가 마치 특권을 누리고 특별대우를 받는 것처럼 말들이 많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기성회비에 기반한 기성회 회계는 애초에 정부의 국립대학에 대한 재정 책임을 대학과 학생들에게 전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로서 약 반세기 동안이나 기형적으로 존속하다 2012년 학생들이 제기한 위헌소송으로 폐지의 수순을 밟게 된다. 그 후 교육부는 뜬금없이 기성회 회계의 급여 보조성 경비를 학생 등록금 부담을 가중시키는 주범으로 지목하고, ‘국립대학회계법’의 제정을 통해 기성회비를 폐지하는 대신 그 액수만큼의 수업료를 학생들에게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 조치는 대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여론에 떠밀린 교육부가 궁여지책으로 급조한 대국민 사기극이었다. 이전의 ‘기성회비’를 무늬만 바꿔 ‘수업료’로 전환했을 뿐 국립대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새롭게 시행된 교연비 제도 하에서 기성회 회계의 급여 보조성 경비가 사업성 경비로 전환되면서 국립대 교수들은 수십 년 동안 당연하게 받아오던 급여성 경비를 교육, 연구, 학생지도 영역으로 분류되는 ‘사업’에서 양적인 성과를 제출하고 받아야 하는 불이익을 감내해야 했다. 교육부가 주먹구구식으로 시행한 교연비 제도로 인해 교수이기 이전에 생활인으로서 가족을 부양하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국립대 교수들은 이 기괴하기 짝이 없는 급여 아닌 급여를 울며 겨자 먹기로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툭하면 체불되는 교연비로 인해 만성적인 임금체불에 시달리기도 한다.
앞서 현수막으로 문제가 된 학생상담은 바로 교육부의 기형적인 교연비 제도가 낳은 사생아이다. 2015년 이후 대학 당국은 교육부 규정에 따라 교연비를 지급하기 위해 이전까지 교수의 재량과 학생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던 학생지도를 ‘학생상담’이라는 이름의 의무적 사업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 학기에 한 번 이상 지도교수를 만나 상담을 해야 하고, 교수는 교수대로 학생지도비를 받기 위해 일정 건수 이상의 학생상담을 사업성과로 남겨야 한다. 이러한 왜곡된 제도적 현실은 교수가 상담을 위해 학생을 연구실로 부르는 일이 마치 돈벌이를 위한 것인 양 보이도록 만들어버린다. 일부 교수는 그렇지 않아도 연구하랴 강의하랴 프로젝트 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보니 학생상담 횟수를 본의 아니게 변칙적으로 채워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 이것이 감사에 적발되어 교육부 관료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소명하는 웃픈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렇게 교연비는 그 태생부터 문제투성이로 대학의 사제관계를 파괴하고 국립대 교수의 명예와 권위를 실추시키는 지극히 기형적인 제도이다. 교육부의 파행적인 교연비 정책이 대학 캠퍼스에서 교학상장(敎學相長)의 미덕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고 아름다워야 할 사제관계를 차가운 돈의 관계로 변질시키고 있다.
교육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대학 자율의 원칙을 비웃듯 대학예산을 틀어쥐고 돈으로 대학 위에 군림하고 있다. 오랜 세월 관료 권력 집단으로 화한 교육부가 대학의 자율성과 대학교육의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교수들의 학문적·지적 창의성을 고사시키고 있다. 창의성이 고갈된 교수가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할 창의적 인재를 어떻게 길러낼 수 있을까? 대학은 교육부 관료들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대학이 번성하도록 지원해야 할 교육부가 오히려 신자유주의 시장논리의 첨병으로 대학을 망치고 있다. 국가 백년지대계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교육부는 해체되어 마땅하다.
박충환 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교수·경북대 민주화교수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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