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경자년 추석 연휴를 앞두고 목하 대한민국의 가장 큰 이슈는 며칠 전 9월 21일 실종된 어업지도선 공무원이 22일 북한의 총격에 의해 피살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23일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이 있고 난 다음날인 24일 대한민국 국군 당국의 첩보에 의하면 그 공무원은 북한 영해로 들어가 북한군에 의해 총격을 당한 후 보트 위에서 화장되었다고 하는데, 대다수 국민들은 몇 시간 동안의 구출 기회가 있었건만 북한을 자극할까 두려워, 첩보망이 노출될까 두려워 총격과 화재 현장을 지켜보고만 있었다고 하는 대한민국 국군에게 과연 믿고 국방을 맡길 수 있을까 라는 걱정과 노여움을 쏟아내고 있다. 그리고 엊그제 9월 27일 국군의 날 행사가 처음으로 특전사에서 열렸으며 그 자리에 대통령이 참석하여 기념식을 진행하였는데, 공중파 채널이 총동원 되어 생중계하는 덕분에 대한민국의 대다수 국민들은 대통령의 입을 통해 공무원 피살에 대한 언급, 나아가 국민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군통수군자이자 국가의 최고 수반으로서의 사과 내지는 북한을 응징하겠다는 말이 나오기를 기대했으나 끝내 구름 잡는 듯한 평화 운운뿐이어서 대한민국 납세자들의 분노 게이지를 더욱 상승시켰다. 통일부에서는 북한에 항의할 연락 채널이 없다는 말도 안되는 구실로 정신줄을 놓고 있다가 다음날 북한 김정은이 사과 통지문을 보내왔다고 하면서 그제사 대통령 이하 현 정부의 책임자들이 마치 가뭄에 기다렸던 단비인 양 비록 한 사람이 희생된 건 안타깝지만 이렇게나 빨리 사과를 한 것은 남북관계의 진전이라고 떠벌리고 있다. 심지어 어떤 이는 그런 김정은을 계몽군주에까지 비교하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4대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정신적 공황 상태까지 내몰리는 듯하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당연히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다. 정부는 단지 국민으로부터 약정된 기간동안 국가의 경영을 위탁받은 기관이다. 대통령이나 정부 부처 각 장관들 역시 그런 정부의 일부일 뿐이다. 국가의 주인이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의해 희생 당했는데도 정부가 그것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정부는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인가. 나아가 국가의 주인을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는 또한 존재의 필요성이 무엇인가.
우리는 이쯤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현재 국가 경영을 위탁 받은 자들의 국가관에 대해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최고의 신성불가침적인 가치는 민족이지 국가는 그 아래다. 따라서 국가의 안위보다는 민족의 통일, 즉 남북의 통일이 정책의 최우선이다. 그랬기에 대통령은 이번 사건 하루 뒤인 23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종전선언이 남북,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를 가져온다고 외쳤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의 정책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나 역시 북한을 감정적으로는 우리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은 적이 거의 없다. 왜냐하면 북한 역시 현대사 이전 오래도록 한반도란 땅에서 같은 언어, 같은 문화를 향유하며 역사를 같이해 온 같은 민족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감성상의 인식이지 이성적인 인식상으로는 엄연히 세계 속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인 타국인 것이다. 현 정부 위정자들의 민족이 국가, 국민보다 우선한다는 인식은 너무나 위험하다. 심지어 대한민국은 일찌감치 명칭이야 다문화국가라고 하지만 다민족국가임을 선언한 나라이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북한이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같은 국가여야 하고 또 나아가 국가정책보다 민족정책이 우선해야 한다고 하면 국민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중국의 옛 만주지역인 동북3성에는 우리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중에 길림성의 연변은 조선족자치주로 불릴 정도로 우리 민족이 집중되어 있다. 이들 조선족의 국가는 당연히 중국이요, 중국이란 나라에 국민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를 다하고 있다. 그런데도 민족을 우선시한다면서 그들에게 중국이란 그들의 국가보다 민족적 차원에서 우리를 더 우선시 해주기를 바란다면 어떨까. 당연히 어불성설임을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엄연히 북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국호를 가진 중국이나 세계의 다른 나라처럼 우리 대한민국과는 완전히 다른 타국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런 타국을 단지 같은 민족, 통일의 대상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한민국과 그 속의 주권자인 국민을 도외시하는 것은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남북, 민족의 통일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민족의 통일이 국가와 국민보다 더 우선시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일 뿐이다. 순직한 그 공무원 역시 매달 월급에서 공제되는 갑근세며, 국세청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나오는 주민세를 비롯한 온갖 명목의 다양한 세금의 납세의 의무를 충실하게 지켰을 것이다. 국민이 납세나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이란 국가가 세계 속에서 다른 나라에 침략을 받지 않고 다른 나라보다 잘 살게 되어 우리 또한 생명을 보호 받고 각자의 삶이 향상되기를 바라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도 민족이란 이름으로 국민의 희생을 위안으로 삼는다면 인식이 전도되어도 한참이나 전도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통일을 지향하는 같은 민족이지만 통일의 정책은 어디까지나 세계 속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의 외교 정책인 호혜주의 원칙을 엄수하며 펼쳐야 한다. 요몇 년 사이 북한에서 군인이나 민간인 등이 탈북, 귀순해 왔으며 우리는 그럴 때마다 최대한 그들의 생명을 보호하며 받아주었다. 동해나 서해 바다에서 조류에 휩쓸리거나 기관고장으로 인해 우리 영해를 침범하게 된 북한 어선 역시 최선을 다해 구조하여 돌려보냈다. 그런데도 북한은 그렇지 않다는 건 외교의 기본을 저버린 것으로, 그러한 불평등한 관계에서 북한과 외교를 펼치는 정부는 진정 대한민국 정부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북한과의 통일은 대한민국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주변 강대국은 차치하고서라도 우선은 상대국인 북한과 함께 해결해야 한다. 이번 같은 비상 상황에서 북한에게 연락할 핫라인 하나도 없는 정부가 김정은의 통지문은 어떻게 받았는지 궁금하며, 나아가 그 정도로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종전선언, 평화 운운 하는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는 확실히 남북평화에 조급증이 걸린 듯 보인다. 이런 병증을 알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현 정부 내내 갑의 위치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통일 정책은 목표에 도달하는 속도가 더디더라도 조급증 내지 말고, 민족보다 국민을 우선하는 토대에서, 남북의 상호 대등한 관계에서 시행되어야 한다. 답답한 마음에 중언부언 횡설수설 넋두리를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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