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잔수와 률전서
최근 북한의 북한 정권수립 70주년(9월 9일)을 맞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특별대표 자격으로 8일 북한을 찾은 중국 최고지도부 서열 3위 리잔수(栗戰書)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 상무위원장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북·중 우호 관계를 강조하는 시 주석의 친서를 전달했다.
어제(9.12) 날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은 "률전서 동지가 인솔하는 중화인민공화국 당 및 정부대표단이 조선을 방문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70돌 경축행사에 참가하고 11일 평양을 출발했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의 외국어 고유명사 표기는 그 나라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중국은 고유명사, 특히 인명이나 지명은 중국은 당연하고, 우리나라도 거의 한자로 표기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한자 세대의 경우 중국의 고유명사를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식 한자 독음으로 읽어왔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한자음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정착된 것이기 때문에 유래를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 오나라 방언설, 송대 개봉 발음설, 북방중국설 등이 제시되었으나 딱히 우세한 것은 없다. 최신연구인 이토 치유키(伊藤智ゆき)의 서적(2007)에서는 한국 한자음이 대체로 중국 당나라 시대 장안의 발음에서 유래했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한국 한자음이 한자의 비교적 오래된 발음을 보존하였음은 분명하다. 다만 성조는 사라졌으며 그 중 고저는 거의 희미해졌으며, 장단음의 형태로 남아있다. 한자음을 보면 한국 한자음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중국의 발음법인 반절(反切)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반절이란 한자의 소릿값을 초성/중·종성으로 분리하여 기록하는 것이다. 東을 예로 든다면, ‘동’의 반절은 ‘德紅切’이라고 쓴다. ‘德’에서 초성인 무성 무기음 ‘ㄷ’[d]를 가져오고 ‘紅’에서 중종성인 ‘옹’[ong]을 가져와 동[dong](ㄷᅟᅥᆨ + ㅎᅟᅩᆼ)이라는 발음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대체로 동한 말 비롯되어 위진 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된 중국의 한자 표음법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한자음 역시 만들어질 때는 고대 중국의 한자발음을 그대로 흉내내고자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고대 중국어발음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중국의 경우 자신들의 언어이다 보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게 되었으나, 우리는 중국어를 본뜬 것이기 때문에 한자음은 변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었다. 가장 큰 변화는 고대 중국어의 四聲(平上去入) 중 入聲자인 k(ㄱ), p(ㅂ), l(ㄹ)로 끝나는 글자의 발음은 변화가 일어나 입성자가 모두 평, 상, 거 세 성조로 편입되어 버렸다.[방언 중에는 남아있는 경우도 있음] 그러다 보니 지금처럼 중국어 발음과 우리의 한자음의 차이가 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山이나 慢처럼 아직도 중국어와 발음이 거의 같은 글자도 많다.
문제는 옛날 우리의 한자음이 만들어질 때와는 달리 지금은 중국어의 한자음과 우리의 한자음이 많이 달라졌다는 데 있는데, 그러다 보니 외국어 고유명사 표기의 원칙이 조금 어긋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비한자세대는 중국어 고유명사를 지금의 중국어발음표기인 한어병음자모에 맞추어 현재의 중국어발음과의 유사성을 최대한 도모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한자음과 중국고유명사 발음이 차이가 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우리에게 이미 너무도 익숙한 고대의 인명이나 책명, 시대와 조대명까지도 한어병음자모에 맞추어 표시하다 보니 오히려 낯설고 혼동이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춘추시대 성인 공자(孔子)의 경우, 춘치우의 콩즈라고 표기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낯설음을 방지하기 위해 1986년에 제정된 중국어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신해혁명(1911년. 청조의 멸망으로 봉건시대의 종말을 의미) 이전의 고유명사는 한국 한자음으로 표기하고, 이후의 고유명사는 중국어 발음대로 표기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특정 연대인 1911년을 경계로 한다는 것도 사실 좀 애매하긴 하다. 특히 지명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들은 바에 의하면 북한도 이전에는 한어병음자모에 의한 한자음으로 읽다가, 혼동이 된다고 해서 다시 우리의 한자음으로 복귀했다고 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서두에서 예를 들었던 률전서가 나오게 된 것이다. 우리의 한자음 표기도 원래는 고대 중국어 발음과 근사하기 때문에 전혀 잘못된 것은 아니며, 원칙이라면 하나의 원칙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외국어 고유명사에 대한 문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발생되고 있다. 즉 우리가 지명, 인명 등의 고유명사들이 거의 대부분 한자로 표기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우리나라 발음에 가깝게 읽지 않고 현대 중국어발음으로 읽기 때문에 외국어 고유명사 표기의 원칙을 깨트리고 있다는 것이다.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에 참가한 우리나라 선수의 이름은 알파벳으로 표기되기 때문에 우리의 발음에 가깝게 읽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 예를 들어 한자로 표기할 수 있는 대통령의 이름[이명박: 리밍보, 박근혜: 퍄오진훼이, 노무현: 루우쉔, 문재인: 원자이인]이나 지명[대전: 다텐, 성남: 청난, 충주: 중저우] 등을 중국 언론매체에는 모두 한결같이 중국어로 읽어버려 고유명사로서의 기능을 상실해버린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우리나라나 북한에서는 아마도 이러한 모순이나 애매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 관련 학자들이 온갖 방안을 강구했을 것이며, 그 결과가 지금의 모습일 진대, 나는 차라리 시기 구분 없이 우리 조상들의 중국어발음방안이자 원칙이기도 한 한자음을 따른다는 북한의 방법이 더 무난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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