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 팽조원 내의 인물전시관을 계속 둘러보기로 한다.
한나라 개국항제 유방.
유방의 고향이 서주라고는 하지만 서주시내는 아니고 광역서주시의 한 현인 패현이다.
그래서 패현에 가면 유방과 관련된 유적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패현에 있는 유방의 사당인 한고조 원묘.
항우의 책사인 범증이 일찌감치 유방이 범상치 않음을 알아채고 미리 제거하기 위해 유방을 홍문에서 초대해 술을 마시면서 항우에게 유방과 검무를 추게하면서 그걸 기회로 죽이라고 했는데, 항우는 유방이 자기가 먼저 진나라 도성을 공격한 것을 사과하고 신하인 척 한 것에 그만 마음을 풀어 죽이지 못하자 범증이 다른 사람을 시켜 죽이게 하니 항우가 오히려 막아주는 듯까지 했다고 한다. 이에 유방 측에서 함께 온 사람들이 범증의 계획을 눈치채고 이에 번쾌가 나서서 유방 대신에 검무를 추고, 그 사이 유방은 도망갔다.
바로 그 잔치를 홍문지회, 홍문연이라고 하는데, 천하의 운명, 대세가 결정되는 자리였던 것이고 그 자리에서 큰 역할을 했던 번쾌였다.
요즘 중국 뉴스를 보면 중국 전통 복장을 만주족의 치파오에서 차츰 한족의 한복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명절이나 기념일 등에 이러한 한족의 전통복장, 우리로 치면 한복을 입고 외출하는 사람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머물고 있는 대학에도 가끔씩 치파와는 달리 우리 한복과도 닮은 듯한 치렁한 옷을 입은 학생들을 가끔씩 보게 된다.
서주에 유명인으로 유씨가 많은 것은 당연한 것.
대부분 유방의 후예인 왕족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안 역시 왕족으로 회남왕에 봉해졌으며, 도가 계열의 <회남자>란 책을 남기기도 한 사람이다.
유향 역시 왕족으로 유안과 비슷한 인물이며, <신서>, <설원>, <열녀전> 등을 남긴 경학가이자 문학가였다.
장도릉?
혹시 후한말 오두미도를 창시하여 후일 황건적의 난을 일으킨 바로 그 장도릉인가?
일개 사병 출신으로 나중에는 제왕의 자리까지 차지한 남조 송나라 개국임금인 유유도 이 서주가 본관인 모양이다.
전시관 바깥에서 봤던 그 동상의 주인공인 <세설신어>의 작가 유의경.
세설신어 내용을 이렇게 병풍 모양으로 소개하고 있다.
당나라가 망한 후 송나라가 들어서기 전 혼란기인 오대십국 시대 십국 중의 남당의 황제였던 이욱.
정치보다는 문학과 노래, 여색을 좋아하다 결국엔 나라를 망하게 만들었다는 오명을 천추후대에 남긴 인물.
당나라 때의 역사가로 <사통>이란 역사책을 남겼던 유지기.
그러고 보니 정말 유씨가 많다.
남조 제나라 양나라 때 문학가인 유효작.
어쩌면 지금 서주에도 유씨 성은 다른 지역에 비해 그 비율이 높을 수가 있겠다 싶은데...
송나라 때의 대표적인 시인 중의 한 사람인 진사도.
제왕에 대해서는 따로 전시실을 만들어 놓았다.
앞에서 이미 소개했던 유방을 여기서 또...
유방, 왕망의 신나라를 쳐서 다시 한나라를 회복한 후한 광무제 유수, 조조의 아들 위문제 조비까지 이 서주와 관련이 있는 모양이다.
후한 광무제 유수의 초상화.
남조 제나라를 이어 다시 나라를 일으킨 양나라 개국황제 양 무제 소연.
명 태조 주원장까지.
서주는 그야말로 제왕의 도시, 용이 기운이 넘쳐났다고 할 만한 고장이다.
당나를 이어 후량을 건국한 주전충도 여기 사람?
이렇게 실물 옷도 전시되어 있다. 많지는 않지만...
이게 바로 중국의 한족 전통복장인 한복인 모양이다.
근현대관으로 들어선다.
엄마, 아빠, 그리고 아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걸까?
한 집안에 세 명의 열사?
엄마와 아빠 모두 공산당원이었는데 1941년 국민당과 싸우는 과정에서 아들과 함께 일가족 세 명이 모두 희생되었다고 한다.
전시관을 빠져 나오니 과연 이 세 열사의 동상도 보인다.
가볍게 공원산책하러 왔다가 역사 공부 진하게 한 날이다.
전시관 관리원에게 바로 앞에 보이는 운룡산 자락의 저 건물은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자기도 모른단다...
가볼까 말까??
팽조원을 그냥 빠져나가기엔 뭔가 덜 본 듯 미진한 듯 해서 다시 중앙로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어본다.
아치형의 다리가 운치를 더한다.
이것도 연꽃인가?
연꽃으로 보기에는 꽃잎은 물론 잎도 작다.
일월암? 뭘까 싶어 올라가 봐도 아무 설명이 없다.
뭘까? 왜 일월암일까?
중앙통로를 지나 남쪽으로 좀 더 걸어오니 동물원 입구가 나온다.
팽조원은 입장이 무료인데 동물원은 입장료가 있다.
아이들 데리고 많이 들어가고 나오고 한다.
아이들 데리고 많이 들어가고 나오고 한다.
동물원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조금 걸어가니 하늘쪽에 높다란 기와지붕이 보인다.
여기가 팽조각인가?
팽조수당.
대팽각이란 현판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여기가 남쪽 산인 수산의 정상인 모양이다.
수산이란 패방이 보인다.
나는 거꾸로 내려온 셈이다.
이제는 더 이상 볼 것이 없는 듯.
정문으로 나오면서 연꽃 감상을 하는 한편, 도로 건너 보이는 운룡산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맑은 날 관경대에 올라 서주시내를 내려다보는 것도 어쩌면 그 기회가 흔치 않으리란 생각에 다시 운룡산 관경대에 올랐다는...
그날은 핸드폰 만보기에 찍힌 숫자가 거의 2만 보에 육박했었다는 의외의 수확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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