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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본능

[강릉여행] 강릉의 바다: 주문진, 그리고 정동진1

by 유경재 2019. 1. 31.

새해가 밝았다고 소란을 떨던 때가 바로 어제 같건만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가고 있다.

가슴 속 새로운 다짐들, 아직 채 꺼내기도 전에 말이다.

시간에 대한 체감속도는 지난 해에 비해 더욱 빨라져가고,

빠를수록 마음은 따라서 더 조급해져 간다.

새로운 해를 맞았건만 뭔가 묵은 찌꺼기를 훌쩍 떨쳐내버리지 못한 답답함이 1월 한 달 내내 나를 감싸고 있다.

그렇다.

벗어나야 한다.

서울을 제외하고는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바다의 은혜를 입지 못하는 지역, 충청북도.

바다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귀양지 같은 도시, 충주.

1월이 다 가기 전에, 이 겨울이 끝나기 전에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잡기 위해서라도 바다를 찾아 떠나자.


그렇게

지름신이라도 내린 것처럼 갑작스럽게 떠난 바다는

충주에서 가장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강원도 강릉.

1월 28일-29일 이틀간의 바다 만나기 여행도 순식간에 과거 속으로 편입되고 만다.

그때의 또렷한 인상을 조금이라도 오래 추억하고파

이렇게 형체 없는 인터넷에 흔적을 남긴다.


[강릉 주문진 숙소 앞의 해변]

푸른 색의 하늘과 바다, 그리고 검은 옷의 두 사람,

멀리 떠 있는 부표는 사람들의 마음만큼이나 쉴새없이 흔들리고 있다.


[사색 중인 갈매기]

기억해보건대 바다에 가서 갈매기를 보지 못한 때도 있었던가?

조너선 리빙스턴을 본다면 꿈은 바다 그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 또한 저 새처럼 늘 바다를 그리워하는 지도 모른다.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

작년인가 티비 채널을 돌리는 중 언뜻언뜻 스쳐보낸 드라마 제목이다.

제목만 본다면 환영과 환상 속의 사랑을 그린 듯 생각되지만 한 번도 채널을 멈춘 적이 없던 나로서는 저기 젊은 연인들과는 벽을 사이에 둔 듯 멀게만 느껴진다.


드라마 속 주인공 연인들이 여기에서 저런 포즈를 취했을 것이다.


입맞춤은 언제나 달콤하다.

어쩌면 인생 최초의 입맞춤은 온몸을 전율케하고 하늘과 땅이 서로 뒤바뀐 느낌을 줄 지도 모른다.

보고 있노라니 아득히 먼 기억 속의 내 모습이 안타깝게 떠오른다.


뒤에 사람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 대기 중인 모양이다.

그런데 최후의 두 사람은 누가 사진을 찍어줄까

아항, 그래서 삼각대가 필요하구나.


겨울바다 해변.

저 길 끝까지 따라가면 어쩌면 부산을 지나, 여수도 지나고, 방향을 틀어 인천도 지나고 신의주를 거쳐

발해만도 지나고 광둥성도 지나고 베트남도 지나고, 지나고, 지나고

그렇게 해서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유럽도 지나고, 그래서 알래스카 해협을 통과해,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올 수 있으려나.


강릉의 접두사가 솔향이다.

이 지역엔 유난히 소나무가 많다.

그것도 쭉쭉 뻗은 멋진 소나무들이.

떨어진 솔방울이 다시 싹을 틔우고 그렇게 강릉의 소나무는 강릉의 솔향기를 지켜가고 있다.


[주문진의 등대]

숙소에서 나와 차를 몰고 주문진 등대를 찾았다.

바다를 더 멀리 보기 위해...


등대를 오를수록 나의 바다는 점점 더 넓어진다.

 

현대문학 초기 로맨티스트 시인 박인환은 등대를 이렇게 노래했다.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학창시절의 찬란한 기억들,

목마와 숙녀에 빠지고, 박인환에 빠지던 그 시절이 순간이동으로 나에게 달려든다.


떠오르는 추억 속의 그 사람은

지금은 이름조차 잊었건만

어찌 이리도 내마음을 아리게 하는지.


".......

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사랑이

고독한 이유를 말하고 있네


파도 드센 밤바다

오롯이 홀로 서 있는


때로 성난 폭풍이

허리를 꺾을 듯 휘감아 와도


그저 의연히

먼 뎃 시선을 거두지 않아


온몸으로 빛이 되는 그대여!


사랑이

고독할 이유를 말하고 있네(<등대>-홍수희)


새는 인어를 사랑하고,

인어는 새를 사랑하지만

날 수 없고, 잠수할 수 없으니 그 사랑 어쩌면 좋은가.


이 새를 조각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갈매기를 생각했을까 독수리를 생각한 걸까.

화룡점정이란 고사성어는 알고 있었을까.

어느 때 어느 해변에서 바로 내 눈 앞을 날던 갈매기의 순박하고도 선한 그 커다란 눈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온갖 나만의 상상의 하늘에 날고 있던 나를 돌연 현실이란 땅 위로 추락시키는 구조물.

나는 정말 표준 인간이 아니란 걸 새삼 깨닫게 된다.


태극 색을 닮은 지붕들이 올망졸망 어깨를 부딪힌 채 외로움을 피하고 있다.

정겹다.

저 속에는 또 얼마나 많은 무한한 삶들이 깃들여져 왔을까, 있을까?


보기에는 소박해 보이지만 강원도 첫번째 등대라고 하니,

새삼 다시 쳐다보게 된다.


바다는 끊임없이 바위에게 사랑을 호소하고.


달빛이 맑다

달빛에 끌려온 파돗소리에 발 담가놓고

등대더러

너도 달빛에 발 담그라 했다

(<달빛과 등대 - 등대 이야기54> - 이생진1929-)


[아들바위][소돌바위]

등대에서 내려와 다시 차를 몰고 해변을 따라 북쪽으로 더 가 본다.

해변의 바위 모습이 누운 소를 닮았다 해서 소돌바위라고 하고,

또 그 바위에 소원을 빌면 아들을 나을 수 있다고 해서 아들바위라고 하는

아들바위 해변이다.


여기는 파도가 유명한 모양이다.

배호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500원 동전을 넣으면 노래도 감상할 수 있다.


♬부딪쳐서 깨어지는 물거품만 남기고

가버린 그사람을 못잊어 웁니다

파도는 영원한데 그런 사랑을

맺을수도 있으련만

밀리는 파도처럼 내사랑은 부서지고

물거품만 맴을도네

 

그렇게도 그리운정 파도속에 남기고

지울수 없는사연 괴로워 웁니다

추억은 영원한데 그런 이별은

없을수도 있으련만

울고픈 이순간에 사무치는 괴로움에

파도만이 울고가네 ♬



언덕 위에는 등대를 닮은 전망대가 아들바위를 내려다보며 지키고 있다. 



방파제 끝에도 등대가 보인다.


밀리는 파도처럼 바위를 향한 바다의 사랑은 산산이 부서지고

결국엔 물거품만 바위 주변을 맴돌고 있네.


풍화작용이라 쉽게 말하지만,

밋밋한 바위가 저 모양으로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했을까?

상상력을 아무리 동원해도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들바위. 소돌바위.


강릉의 바다 풍경은 다음 편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