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11월 14일
오랜 연수동 시기를 마감하는 날이었다.
2001년 초 대구에서 낯선 땅 충주로 오면서 연수동에 터를 잡고,
그간 2년 간의 전세생활 빼면은 거의 한 동네에서 살아왔으니, 감히 연수동민이라고 할 만하다.
약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들판에 작금의 충주의 가장 번화한 주거상업지역인 신연수동이 들어서는 등 충주 전역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연수동 골목골목마다 나의 발자국이 남아있고, 그와 함께 나의 아름다운 추억이 스며있다.
그런 연수동을 이제 벗어나 칠금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만감이 교차하였다.
이사 전날, 아내와 마지막으로 연수동에서 외식을 하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바로 올 여름 용산동에서 연수동으로 이전 개업한 보릿고개.
그 자리는 내가 단골로 찾던 옛이야기가 있던 자리기도 하여 그 사이 단골집이 없어졌다는 섭섭함 때문에 한동안 발길을 끊었다가
연수동을 떠나기 직전 그때의 추억이라도 건져보기 위해 찾았었다.
마침 식당 앞은 옛날 중원군청이 있던 자리로,
오랜 기간 폐허로 방치되어 오다가 근래 충주의 최고층 아파트인 센트럴푸르지오가 완공되어 현재 한창 입주가 진행 중인 곳이다.
바로 이 집이다.
수요일은 휴무, 저녁 8시 이후는 주문이 안된다고 한다.
입구에 이렇게 메뉴판이 붙어있어 좋다.
마칠 때 보니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었다.
상을 치우는 모습.
중앙의 넓은 홀과 가장자리쪽으로 몇 개 독립된 방이 있다.
전에 옛이야기 때는 늘 저 방을 애용했었지.
주방 앞쪽의 저 공간은 원래 방이었는데, 새롭게 홀로 바뀌었다.
괜찮은 변신인 듯.
전국시대 사상가 맹자(孟子)가 일찍이 "백성은 밥을 하늘로 여긴다."(民以食爲天)이라고 했었지.
토속적 소품이 푸근한 느낌을 주어 좋다.
한쪽으로 너무 쏠리지 말라는 중용(중용)의 가르침은 언제나 옳은 듯.
그러나 정작 중용은 검은색과 흰색의 중간인 회색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무슨 일이든 매사 그 정도를 지켜야 함을 뜻하는 것이니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하늘의 도는 부지런한 사람에게 보답한다.
도가사상의 종주인 노자는 말씀하셨지. "하늘 그물은 넓고 성긴 것 같아도, 하나도 빠져나갈 수 없다고."(天網恢恢, 疎而不漏[失])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과보의 법칙도 마찬가지일 것.
1인 9천 원의 상차림이다.
도토리묵무침, 청국장찌게, 우렁초무침 등 하나하나가 모두 훌륭한 요리들이다.
가성비 굿.
보리밥에 각종 나물을 취향대로 넣어 비벼 먹으면 훌륭한 비빔밥이 되고.
거기에 고소하고 바싹한 빈대떡까지.
그뿐인가? 영양을 고려한 들깨삼계탕까지.
이게 다 9천 원으로 가능하다는 말씀.
그리고 구수한 슝늉도 덤으로 나온다.
메뉴에 인덕주가 있는데,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막걸리에 인삼을 갈아넣은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맛을 보지 않을 수가 없지 ㅎ
쌉쌀한 인삼향이 막걸리에 배어 약주를 먹는 느낌이다.
현관 쪽 공간에 마련된 아메리카노 커피 기계.
그리고 그 옆에 오미자차.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된 이사는 정확히 네 시간만에 마무리되고,
새로운 터에서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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