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제법 쌀쌀한 날씨가 겨울답다.
수능 망쳤다고 의기소침해진 딸아이를 데리고 어디 가까운 산이라도 찾겠다고 집을 나섰다.
차에 오르자 일전에 모임에서 들은 괴산의 산막이옛길이 문득 떠올라 가 보기로 했다.
요즘 지방마다 자연경관이 좋은 곳에 걷도록 둘레길, 올레길 등을 개발하는 게 하나의 붐처럼 일고 있는데,
어떤 이들은 이러한 붐의 원조가 이곳 괴산 산막이옛길이라고도 한다.
사실 이러한 길들이야 예전에는 나뭇꾼들이 초동들이 일상처럼 걷던 길이었는데,
현대의 도시화된 생활에서 걷기와 멀어진 현대인에게는 마치 이전에 없던 새로운 길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우선 네비게이션으로 산막이옛길을 찍으니 등록되어 있어서 길을 찾는 수고는 들 수가 있었다.
괴산군 칠성면 소재지로 들어가면 안내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면소재지를 조금 벗어나면 이렇게 도로를 확포장하는 공사가 진행 중에 있다.
지난 가을에는 이곳을 찾는 차량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길도 새롭게 넓히는 것이리라.
조금은 늦은 시간(11시 경)에 주차장에 도착하니 주차 안내를 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분주하게 신호를 해 주고 있었다. 면사무소 직원인지 아니면 인근 주민들인지? 날씨가 추운데도 불구하고 벌써 주차장은 만원에 가깝다.
출발점에 세워진 안내판. 이 안내판은 중간중간에 세워져 있다. 아래쪽 파랗게 표시된 부분이 바로 괴산댐(괴산호)이며, 산막이옛길은 댐 우측 가장자리로 나 있고, 그 오른쪽이 바로 천장봉과 등잔봉이다. 등산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보통은 입구 노루샘에서 등잔봉으로 올라 능선을 타고 천장봉까지 갔다가 산막이 마을로 내려와 호숫가의 옛길을 따라 돌아오는 코스를 택한다. 우리는 그 반대로 하기로 하였다.
입구의 시멘트길. 벌써 갔다가 돌아오는 사람도 많다.
입구 쪽에 연리지가 있다. 괴산에 특히 연리지가 많은데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 연리지(連理枝). 뿌리가 서로 다른 두 나무의 줄기가 서로 완전히 한나무처럼 붙어 자라는 나무를 말하는데, 한자의 "理"자는 나뭇결이란 뜻이다. 이 연리지는 비목어(比目魚: 외눈박이물고기. 암수 두 마리 물고기가 모두 눈이 하나뿐이어서 거리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항상 서로 붙어 다녀야 하는데, 한 마리가 죽으면 다른 한 마리도 시름시름 하다가 따라 죽는다고 한다.), 비익조(比翼鳥: 항상 날개를 나란히 하고 함께 붙어날아다니는 새), 병제련(竝제蓮: 한 줄기에 두 개가 핀 연꽃) 등과 함께 부부의 금슬을 상징한다. 중당(中唐)의 저명한 사회시인 백거이(白居易772-846호 樂天)의 <장한가(長恨歌)>란 장편 시가(당 현종과 양귀비의 애틋한 사랑을 노래함)의 마지막 구절을 보면 다음과 같이 연리지를 언급하고 있다.
七月七日長生殿,칠월 칠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私語時。한밤중에 사람들 없어지자 말씀하실 때
在天願作比翼鳥, 하늘에 간다면 비익조 되기를 원하셨죠
在地願為連理枝. 땅에 있다면 연리지 되기를 원하셨죠
天長地久有時盡, 하늘과 땅이 아무리 길고 영원해도 끝날 때가 있지만
此恨綿綿無絕期. 이들의 한스런 사랑은 끊임없이 길고 길어 끝날 날이 없으리라
연리지 나무 뒷편에 하트 모양의 나뭇판에 사랑맹세를 적어 걸어둔 게 보인다.
그 중에 일부
연리지 나무 앞에 갓 조성된 무덤 세 위가 있다. 실재 무덤일까? 보기에는 연리지와 관련된 가짜 무덤일 성 싶다. 왼편 뒷쪽으로 보이는 바위들은 고인돌이라고 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길에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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