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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산행기

딸이란 운명에 울고 만 보련산

by 유경재 2010. 12. 8.

가금면「장천리」를 중심으로 장미산이 있으며 노은면과 앙성면계에 보련산이 있고, 제각기 산성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삼국시대에 충주시 노은면 가마골 마을 부근에 장미라는 남동생과 보련이라는 누이남매가 있었는데 태어날 때 부터 장사기질을 가지고 이었다 한다.


그런데 관습에 따르면 한 집안에서 장사가 둘이 출생하게 되면 그 중 한 사람은 희생을 당해야 한다는 숙명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남매도 비운을 안고 있음을 자인하고 있기 때문에 성장하면서부터 운명을 정하는 방법은 상론하게 되었던 것이며 그 방법으로 성쌓기 내기를 하게 되었다. 같은 분량의 다듬어진 돌을 가지고 규정된 규모의 성을 쌓는 것인데 물론 생사의 판결이기도 한 것이다. 아무리 남매라 하더라도 생명에 대한 애착도 애착이려니와 장사라는 명예가 있기 때문에 심각했다.


보련은 노은에서 장미는 가금에서 드디어 운명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그 어머니는 두 남매보다도 더욱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속도가 아무래도 장미보다는 보련이가 더 능숙함을 판단한 것이다. 아들·딸이 꼭 같다지만 어머니의 심정은 그래도 아들쪽이 컸던 모양이다. 장미의 속도가 미흡함을 본 어머니는 생각 끝에 떡을 해 가지고 보련에게로 가 떡을 좀 먹고 하라며 떡을 펴 놓았다.


보련이가 한창 배도 고프고 피로도 한 판에 한그릇을 맛있게 먹고 또 다시 시작해서 마지막 돌 한 개를 가지고 올라가는 도중 장미 쪽에서 축성이 끝났다는 북소리와 함께 기치가 올랐다. 보련은 주저앉고 말았다. 그제서야 떡을 주신 어머니가 아들을 살리기 위한 술책인줄을 알았지만 모든 것을 운명으로 돌리고 그 길로 노은땅을 벗어나 어리론가 떠나갔는데 다음날 저녁에 보련의 본집을 향해 큰 별이 하나 떨어졌다고 한다.


이로부터 보련이가 성을 쌓던 산을 보련산, 장미가 쌓던 산을 장미산이라고 하고 그 성을 각각 장미산성, 보련산성이라고 부르며 지금가지 남아있다. 장미산성은 1997년도에 사적 400호로 지정되어 그 역사적 가치를 더 해주고 있다.

어제는 개천절이자 아내의 생일이었다. 단군왕검이 하늘을 처음 연 것처럼 아내는 나의 세상을 열었던 날인 것이다. 오전에 일찌감치 수안보로 목욕 갔다가 서문해장국집에서 모두 돌솥비빔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아이들을 집에 데려 놓은 후, 둘은 이마트에 가서 쇼핑을 한 후 저녁에 간단한 생일파티를 가졌다. 올해는 뭔지 모르게 바빠서 생일을 제대로 챙기질 못했다.


그리고 오늘 며칠 전부터 등산하기로 맘을 먹고 있었다. 바로 음력 9월9일 중양절이기 때문이었다. 여름 내내 비 때문에 음기가 판을 쳤었는데, 추석 이후 9월 하순부터 조금씩 햇볕이 따사로운 맑은 날씨가 이어져 양기가 상승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꼭 등산하기로 하였다.


어제의 취기가 말끔히 가시진 않았지만 우린 대충 짐을 챙기고 인터넷을 통해 가까운 산을 검색하다 노은쪽 하남현고개에서 시작하는 두 산 국망산과 보련산을 정하고 간단한 정보를 메모한 뒤 길을 나섰다. 집앞 김밥집에서 김밥도 사고...


탄금대 옆을 지나고 중앙탑과 고구려비 등을 지나고, 북충주인터체인지도 지나 노은면에서 앙성으로 넘어가는 고개의 마루에 차를 주차시켰다. 벌써 4-5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우리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오른쪽의 보련산으로 올랐다. 시멘트포장길을 조금 올라가니 그 끝에 송신탑이 하나 있었고, 그 옆 산길을 따라 오르게 되어 있었다. 길은 정상까지 계속 능선을 걷게 되어 있었다. 도처에 자욱한 큰키의 각종 참나무 종류들, 그리고 길에 나뒹구는 윤기나는 꿀밤과 흑갈색 낙엽들, 그 사이 간간이 소나무도 보이고.


길은 크게 가파르지 않은 완만한 능선길에, 간간히 바위도 나타났다. 한참 올라가니 앞에 좀 나이가 든 듯한 노인 내외 두 분이 마치 우리를 피하기라도 하듯 쉬다가 길을 떠났다.(그 이후 정상에 갔다 내려올 때까지 보지 못함)


얼마를 갔을까 가던 방향으로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인 곳에 일군의 바위가 전망대처럼 있었다. 아마도 안내도의 676봉일 것 같았다. 아래로 앞으로 조망하니 푸른 하늘과 하늘가의 옅은 구름, 첩첩의 먼 산들, 바로 아래의 약간 노래지기 시작하는 활엽수림, 장관이었다. 앞으로 두 봉우리 너머 가장 높게 보이는 것이 정상인 것 같았다.


우리는 가는 도중 소나무 밑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송이를 찾겠다고 쌓인 낙엽을 헤집으며 시간을 허비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만났던 사람들도 등산이 목표가 아니라 송이를 캐기 위한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 생각에 더욱 열심히 송이를 찾느라 시간도 잊었다. 그러다 시장끼가 느껴져 다시 등산을 재촉하였다. 좁은 능선길이지만 키가 큰 나무들 때문에 햇빛은 크게 받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걷기 좋은 산인 것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걸어 드디어 정상에 도착하였다. 정상에는 무덤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745미터 높이. 보련산. 사진도 찍고 돌탑도 쌓고 소원도 빈 뒤에 약간 아래쪽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었다.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가져온 음식들, 김밥, 물, 족발, 천국이란 국화주 등을 차려 놓으니 진수성찬을 방불케하였다. 중양절에 높은 산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던 고인들의 멋을 재현해보고자 했었다. 정말 양기가 몸 속으로 쑥쑥 들어오는 것 같았다. 한껏 배를 채운 뒤 다시 야호를 목이 터져라 외치고 하산을 시작하였다. 내려오면서도 혹시나 하면서 몇 차례 길 안쪽으로 들어가 송이를 찾아보았으나 헛탕만 쳤었다. 하기사 우리 같은 사람의 눈에 띌 정도의 송이라면 그렇게 비쌀 리가 없지 않겠는가? 하산길도 두어 번 오르막 길이 있었으며, 하산이 끝날 무렵에는 둘 다 무릎이 약간 안좋게 느껴졌다. 도로에 내려서니 아침에 주차되었던 차들 중 일부는 빠져나가고 없었다. 우리는 차에 올라 앙성 쪽으로 내려왔다. 조금 내려오다 심한 갈증 때문에 길 왼편으로 언젠가 와 본 적이 있는 계곡으로 들어갔다. 서울 경기도 넘버의 차량 몇 대가 주차되어 있었고, 계곡 초입의 바위에 남녀 한 쌍이 휴대용 버너에다 돼지고기를 구워먹고 있었다. 비록 계곡이지만 아차하면 산불로 번질 걸 생각하니 참 대책없는 사람들 같았다. 그리고 저렇게까지도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싶었을까하는 마음에 측은하기까지 하였다. 어쨌든 우리는 그들을 지나 좀 더 위로 올라가 얼굴도 씻고 그 물로 목도 축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요즘 거의 2주에 한 번 꼴로 아내와의 산행이 계속되는 것 같아 더욱 기분 좋은 하루였다.

★등산일정
집출발(10:10)--하남현고개출발, 등산시작(10:56)---쓰러진 표지판도착(추측컨대 676봉, 12:00)---이후 내리막길, 송이찾으며 천천히 등산, 2지점구조표시지역도착(12:30)---정상도착(13:00)---하산시작(14:10)---쓰러진표지판도착(14:56)---하남재도착(15:45)

★ 등산팁: 10-15일 후 676봉까지 등산한 후 그 앞에 펼쳐친 단풍을 감상하는 것도 좋을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