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 살고, 누으면 죽는다?]라는 책을 본 기억이 난다. 요즘의 트렌드는 건강이 아니겠는가.
정말 오랜만이다. 이제 중국에서 귀국한 지 달포 가량 지난 시간, 비록 짧은 1년이었지만 많은 부분들이 낯설어 적응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개학 후 2주가 지난 시즘, 조금은 제자리를 잡아가는 듯한 느낌이다.
타국에서조차 주말마다 산행을 했었는데, 한국에서 이렇게 운동과 담을 쌓아서야. 그래서 그런지 67kg이던 체중이 이제는 곧잘 70kg을 넘나들고 있다. 운동량이 너무 없어서다. 아파트를 내려가 바로 차를 몰고 학교로 가고, 학교 건물 바로 앞에 차를 대고 연구실에 들어가 이후 퇴근까지는 책상 앞에 앉아 있으니, 하루 종일 기껏해야 500m인들 걷겠는가?
그래서 어제는 모처럼 아내와 산행을 감행했다. 놀토가 아니니 아이들은 모두 등교했고, 세비는 이번 주는 아예 내려오지 않겠다고 하고, 두 아이는 오후에는 수학, 과학 경시대회 시험이 있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인터넷을 통해 산행지를 여기저기 물색하다가 아직은 산불 위험기간이라 입산금지 산이 많아 선택의 여지가 좁기에 우선은 가장 가까운 월악산을 목표지로 정했다.
집앞 분식점에서 한 줄 천 원 김밥 사서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집을 나섰다. 날씨가 정말 화창하다. 완연한 봄이다. 그러나 아직 경치만은 겨울 그대로 크게 바뀐 게 없이 회색 일변이다.
조금은 물이 줄어든 듯한 충주호반 구비진 도로를 따라 월악산 동창교 부근 어느 식당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10시 20분에 산행 시작, 산뜻한 공기, 맑은 하늘, 졸졸 흐르는 맑은 계곡물, 적당히 물기를 머금은 산길, 이 모든 것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영봉은 해발 1097m, 크게 세 가지 코스가 있는데, 즉 덕주사 코스, 신륵사 코스, 그리고 이곳 동창교 코스가 있는데, 이 코스는 총 4.3km로 경사가 급하기로 유명하다. 몇 년 전, 그해도 3월이었던 것 같다. 아무 준비없이 산행했던 그날이 생각난다. 그때 오를 때는 덕주사쪽에 주차시킨 뒤 그곳으로 올랐다가 눈 때문에 애를 먹고 정상을 밟은 뒤 동창교 쪽으로 내려왔었다. 그때 기억에 내려오는 내내 눈에 미끄러지며 고생고생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오늘 산행은 그때에 비해 여러 가지 조건이 좋은 듯 하다. 날씨도 그렇고.
[동창교-헬기장-영봉 코스] 입구다. 4.3km 수직 등반, 오랜 공백 후의 산행이라 조금은 두렵다.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로 인해 월악산은 완전 공짜다. 값으로 메길 수 없는 대자연의 혜택을 이렇게 공짜로 누릴 수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 아니랴. 안내도를 보며 오늘 산행에 대한 각오를 다진다. 지금 시각이 10시 20분 대략 5시간 걸릴 거로 예상하면서...]
[중국 북경 주변의 메마른 바위산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조차 정겹기 그지없다. 역시 우리네 산천이 최고여... 이 좋은 산수를 어이 찾지 않으리.]
[몇 년 전인가 우연히 덕주사 코스로 영봉에 올랐다가 하산길에 이 코스를 택하여 눈길에 고생하던 때가 생각난다. 그런데 지금 눈이 없어서 그런지 평탄하기 그지없는 산길로 보인다. 눈이 싱그럽고, 코가 산뜻하고, 그래서 온몸의 세포들이 약동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적어도 아직은...]
[산행 초입에 조그만 산신각이 있다. 여기저기 금기를 쳐 놓은 게 상당히 토속적이다. 오랫만이다. 중국에서는 온통 붉은 색 일색이었는데, 역시 차이가 난다.]
[조금 더 오르자 본격적인 계단길이 나타난다. 벌써 30여 분을 걸었다. 그러나 쉬어야할 정도로 힘들지는 않다. 등산객들은 주말을 맞아 더러 보이지만 대부분은 덕주사 코스를 택하기 때문에 많지는 않다. 그래서 더 좋다, 이 코스가.]
[대충 1시간 가량 오르니 작은 능선이 하나 나타난다. 앞서 가던 등산객들이 곳곳에 주저앉아 쉬고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이정표에도 누군가 걸어둔 배낭이 덩그렇다. 아직은 가야할 길이 더 멀다. 힘을 내자. 쟈요우!]
[옷 벗은 겨울 나무 사이로 저 멀리 바위로 된 영봉이 눈에 들어온다. 한마디로 우람차다. 봄이 왔건만 아직 수목들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있다. 아마도 준비를 하고 있겠지. 한 달만 지나도 풍경이 완전히 다르리라. 산천의 색깔이 다 바뀌겠지.]
[이런 계단도 있다. 꾸준히 하늘로 하늘로 향한...]
[드디어 마지막 능선에 올랐다. 이름하여 송계삼거리. 1시간 반만에 주파하였다. 오른쪽으론 덕주사 , 왼쪽으로는 영봉.]
[아직도 1.2km가 남았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봉우리건만, 빙빙 둘러 나선형처럼 올라가야 하니 아직도 한참이나 멀다.]
[출발부터 끝없이 오르던 산길이 목표점을 눈앞에 두고 다시 내리막길이다. 어떻게 올라온 길인데 내려가야 하다니. 내리막이란 말은 목표점과 멀어진다는 말씀. 그만큼 나중에 더 힘이 든다는 말씀. 그러나 어쩌랴. 바로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니. 인생이란 아무리 바쁘더라도 때로는 이렇게 후퇴하는 것처럼 둘러가야 할 때도 있으리라. 그래도 노여워하지 마라. 목표를 잃지 않으면 되지 않겠는가. 내려가면서 잠시 호흡을 고르자. 오를 때를 대비해 힘을 조절하다.]
[월악산 영봉으로 오르는 또하나의 코스 신륵사 코스를 알리는 이정표를 만난다. 아마 세 코스 중 이 코스가 가장 짧을 것이다. 짧으면 짧은대로 길면 긴대로 산행은 코스마다 제각각 자신만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인생이 짧든 길든, 이런 인생이든 저런 인생이든 다 살만한 가치가 있듯이...]
[유난히 파란 하늘이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내일은 전국적으로 황사라는데, 이렇게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이 봄 세 달 중 과연 며칠이나 될까. 실컷 향유하자. 본다고 느낀다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막는 사람도 없는데...]
[영봉 뒷편으로 돌아오르는 길, 곳곳에 눈이다. 사람들이 많다.]
[길에도 눈이 쌓였다. 다시 내려가는 길이다. 미끄러지는 사람, 조심조심 난간을 잡고 기듯이 몸을 의지해 한발한발 옮긴다.]
[드디어 영봉에 올랐다. 출발부터 2시간 반만에...감회가 새롭다. 그런데 사람들로 만원이다. 정상석에서 사진 한 판 찍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기다리자. 어떻게 오른 산인데, 30분이 되더라도 기다렸다가 정상에 선 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자.]
[정상에 섰다. 그러나 셔트 누르는 몇 초 후에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정상이란 오르기는 그렇게도 어렵건만 정상에 선 기쁨을 누리는 시간은 불과 몇 초다. 우리네 인생이 그렇지 않겠는가. 그렇게 힘들게 목표를 향해 바둥대며 살건만 정작 목표를 이뤘을 때의 성취감을 누리는 시간은 얼마나 되랴. 사실 살아가는 그 과정이 바꿔 말하면 죽음을 향해 한발짝씩 다가가는 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그렇게도 미련스럽게 욕심을 부리며 살아가는지...]
[멀리 희미하게나마 충주호도 보인다. 비록 맑은 날씨건만 약한 안개가 무대의 연기처럼 먼 경치를 감싸고 있다. 그러나 이나마의 호쾌한 시선이라도 얼마만이었던가.]
[내려오는 길에 우리는 돌탑을 몇 개나 쌓았다. 돌탑 한층한층이 우리와 관계한 사람들이 생각하면서, 그들의 행복과 건강과 화목과 안녕을 빌고 또 빌었다.]
하산하여 주차장까지 내려오니 대략 4시간 40분 정도 소요된 산행이었다. 비록 긴 시간 세운 산행 계획은 아니었으나 나름대로 보람된 의미있는 산행이었다. 앞으로도 시간만 허여된다면 자주 산행을 가야겠다. 오늘 산행이 바로 금년도의 긴 산행의 출발이라고 여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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