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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산행기

천등~산~ 박~달재를♬

by 유경재 2010. 12. 3.

일시: 2003년 9월 20일(토) 오전 9시-오후1시

지난 한 주 잦은 과음으로 인해 중반부터 어금니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술을 중단하였다. 그랬더니 며칠만에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 이왕 몸을 보살피기로 한 것, 토요일에 침대에서 뒹굴며 시간을 보낼 게 아니라 가까운 산에라도 오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억지로 아내를 설득하여 산행을 하기로 하였고, 그 대상지는 지난 번 비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였던 천등산으로 정하였다. 지난 번에는 천등산을 오르는 대신 백운을 지나 제천 쪽으로 좀 더 가서 박달재를 드라이버하고 구경하였다.

 

옛날 가요의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 님아...라는 노래가 휴게소의 스피커를 통해 끊임없이 비오는 박달재를 싸고 돌았다. 게다가 비까지 내려 우리는 우산 하나를 함께 받쳐들고 처음 올라보는 박달재 여기저기를 신기한 눈으로 탐색하였다. 조선 중엽 경상도 총각 선비인 박달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다가 박달재 아래 동네의 한 민가에서 묵었는데, 그집의 딸 금봉이란 아가씨와 사랑을 하게 되었다. 다시 길을 떠나던 날 금봉이는 낭군을 위해 도토리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고 시험이 끝난 뒤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진다. 그러나 과거도 끝났고 약속 날짜도 이미 한참을 지났지만 낭군은 오지 않아 시름에 젖어 상사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된다. 이후 시험에 낙방한 박달은 처음에는 만날 면목이 없어 오지 못하다가 나중에 이곳에 들러 금봉의 죽음을 듣고 박달재를 오르내리니 언뜻 금봉이의 환영이 보이는 듯 해 절벽쪽으로 달려가다가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어쨌든 노래가사와는 달리 천등산은 박달재와는 떨어져 있는 산이었다. 천등산은 충주와 제천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산 중의 하나로 그 고개는 다릿재라고 불린다. 다릿재까지는 차가 다니니 다릿재 휴게소에 주차시켜 놓고 임도를 따라 산행을 시작했다. 임도는 천등산 중턱을 한바퀴 일주하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 우리는 왼쪽으로 올라가다가 첫 표식이 있는 산길로 산행을 시작했다. 능선을 타고 계속 이어진 산길에는 중간중간 잔디 고운 무덤이 소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대략 20여 분을 오르니 제법 큰 바위 몇 채가 나타났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돌아 난 길을 따라 올라갔다. 계속된 오르막길이었다. 아래로부터 약 30여 분 오르니 제천이 보이는 일차 능선에 오른 것 같았다. 표지판에는 (다릿재하산길 20분, 정상 40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약간 휴식을 취하니 뒤따라 아저씨 한 분이 혼자 올라오고 있었다. 우린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먼저 산행을 계속했다. 우리가 가는 산길 곳곳에는 작은 도토리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고, 어떤 것은 아직 파란 집채 떨어져 누군가가 빼내 간 것으로 보이는 것도 많았다. 아마도 도토리를 전문으로 채취하는 사람들이 그랬을 것 같다. 도토리의 특징은 나무는 큰대 비해 알이 너무 잘았다. 조금 가니 정상 30분이란 표지판이 넘어진 채 있었다. 이제 능선길은 계곡처럼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도록 되어 있었다. 아마도 저 건너 봉우리가 정상인 듯 싶었다. 그래서 우린 좀 쉬었다가 다시 힘을 내어 산행을 시작하였다. 얼마 가지 않아 정상에 도착하였고, 정상은 바위가 없는 대신 헬기장 표시가 되어 있는 정도의 넓이였다.


우리는 둘 다 잠긴 목을 있는대로 다 크게 떨쳐 고함을 질렀다. 비록 높은 봉우리는 아니지만 충주와 제천 등 사방이 조망되었다. 조금 쉰 후 하산을 시작하였는데, 하산하는 중에 오를 때는 그냥 돌아 지나쳤던 바위를 지날 때는 바위에 올라 사진도 찍으며 쉬었다. 그리고 오를 때와 반대쪽으로 돌아내려왔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였다. 한참 내려오니 계속 낯설은 길이 나타났다. 그러다 갈림길이 나와 두 사람이 한 길씩 잡아 조금 내려가니 이내 계곡을 사이에 두고 길이 벌어져 버렸다. 다시 계곡을 넘어 아내에게로 가니 아내는 다시 갈림길 시작되는 곳으로 올라간 뒤였다. 그래서 다시 아내처럼 올라가 합류하여 내가 내려가던 오른쪽 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방향을 보니 제천쪽으로 많이 치우친 길 같았다. 그러나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다. 어디로 내려가든 임도와 만날 것이고, 그 임도를 따라 다릿재로 가면 된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임도가 나타났는데, 그곳엔 제법 주차장처럼 넓은 공터고 있고 천하대장군상도 두 개 있었고, 채화용 제단과 등산안내도 있었다. 본래 이곳으로부터 등산이 시작되는 것인데 우리가 좀 앞선 곳에서 등산을 시작한 것 같았다. 사진 몇 장 찍고 임도를 따라 내려오니 처음 만났던 그 아저씨가 차를 몰고 지나면서 타라고 하였다. 그러나 우린 산책을 하기 위해 사양하고 얘기를 나누며 경치를 보면서 하산하였다. 길가에는 유독 맑고 곱게 보이는 형형색색의 코스모스가 인상적이었다. 자세히 보니 코스모스뿐이 아니었다. 온갖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울긋불긋 초가을 산길을 수놓고 있었다. 태풍이 지난 지도 얼마되지 않지만 그 이후 충주에는 또 큰비가 왔었다. 바로 어제까지 비가 왔건만 계곡은 바짝 말라 있었다. 천등산은 물이 없는 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릿재까지 내려와 샘물을 한 병 받아 차를 타고 산행을 끝냈다. 천등산은 등산초보인 학생들과 산행하기에 적합한 코스인 것 같았다.

구체여정: 집 출발(9:10) - 다릿재 출발, 등산 시작(9:40) - 제1표지판능선도착(10:15) - 정상 도착(10:50) - 하산 시작(11:10) - 다릿재도착(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