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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폭스트로트★

[중국남방명루기행] 무한(武漢)의 황학루(黃鶴樓)-8: 중국현대사의 첫 페이지 신해혁명박물관

by 유경재 2014. 5. 12.

2박3일 일정의 무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오늘은 무한에서 조금 구경한 후 상해로 가는 길에 그냥 가기 아쉬워서 중간에 안휘성 성도인 합비(合肥)에 하루 들렀다 갈 계획이다. 무한에 볼 곳이 많다. 종자기와 백아의 이야기가 담긴 백아정이나, 무한을 호수의 도시로도 불리게 한 동호 등도 보고 싶지만 시간이 허락지 않아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다만 신해혁명박물관만 구경하기로 한다.

 

호텔 체크아웃 후 다시 무거운 배낭을 진 채 우산을 쓰고, 부근의 박물관으로 들어선다. 각진 부메랑 모양으로 생긴 붉은 색 건물이 인상적이다. 지하로 내려가 왼쪽 1,2,3층의 각 진열관을 관람한 후 오른쪽으로 넘어가, 다시 3,2,1층의 순으로 관람을 마치고 나온다.

 

만주족의 청나라 황제들은 오늘날의 중국을 있게 한 장본인들이다. 특히 강희제는 멀리 티벳, 신쟝에서부터 남방까지 어디 손을 뻗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정반합의 역사는 내외부 모순으로 급격히 붕괴되어 간다. 특히 밖으로는 서구의 동점으로 인해 그간 중화사상에 젖어있던 중국인들을 충격에 빠트리게 된다. 안으로는 부패한 정치와 권력다툼, 그로 인한 민생의 피폐, 여기에 영국의 아편밀매 등으로 거대 제국은 비틀거리게 된다.

 

이를 각성한 일부 청년 지식인들의 반봉건반제 투쟁, 아편의 폐해를 막기 위해 임칙서를 파견하여 영국선적의 아편을 몰수해 바다에 폐기하니, 이로 인해 영국과 전쟁이 발발, 중국의 패배로 중화사상의 반성이 있게 된다. 양무운동, 의화단사건, 변법자강운동 등 일련의 반제반봉건 운동은 손문 등의 지식인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조직화되기 시작한다.

 

흥중회, 동맹회 등의 중화동맹회로 하나가 되어 광주에서 처음 의거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여러 차례 시도 끝에 결국에는 19111010일 무창[무한]에서 청군을 격파하고 승리하게 된다. 이로써 혁명은 불길은 전국적으로 퍼져 다음 해 11일 남경에서 중화민국임시정부가 건국되며 초대 총통으로 손문이 추대된다.

 

현대 중국의 단초를 마련한 중요한 계기가 바로 신해혁명이니, 중요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손문 이후 장개석으로 이어지는 국민당은 후일 대만에서 이 혁명일을 쌍십절이라 하여 국경절로 삼고 있다. 연호 역시 1912년을 민국1년으로 삼고 있다. 중국이 비록 국공내전의 승리 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1949101일을 국경일로 삼고 있지만 이 신해혁명에 대한 중요성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구분이 필요치 않을 정도다.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책으로만 읽었던 중국의 근현대사를 여러 가지 시청각자료들을 통해 다시 찬찬히 공부한 셈이다. 다 둘러보고 나오니 비는 어느 정도 그쳐가고 있다. 아침을 먹지 않았기에 늦은 아침 겸 점심을 주변 식당에서 국수로 간단히 해결하고, 안휘성 합비로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한다.

 

비는 내리는데, 식사도 하지 않고 바로 박물관으로 간다.

무료 입장인데도 오른쪽 빨간 글씨 전광판 보이는 집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입장권을 받아서 들어가야 한다.

 

일단 지하에 출입구가 있다.

 

입구 현관 바로 안쪽.

대형기념조각물 앞에 기념사진들을 찍고 있다.

공짜라고 하는데, 알고 보니 촬영은 공짜지만 사진은 돈을 내야 한다고 한다.

나갈 때 사진이 필요하면 돈을 내고 찾아가면 된다.

 

제1전시관 입구.

약간은 비장한 분위기가 들게 하고 있다.

 

박물관은 여러 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는데, 역사순으로 주제별로 관련 사건, 인물에 대한 소개, 사진, 유물, 조형물 등이 설치되어 있다.

청나라 말의 중국 상황을 설명하는 코너. 19세기 중엽부터 서구열강의 침입으로 인해 불평등한 각종 조약을 맺고 청나라는 기울기 시작한다.

 

신축조약 조인식 장면.

 

1900년 영국, 미국 등 8개국이 자국 대사관 보호란 명목으로 북경에 진주하여 북경을 파괴하고 마침내 다음해 이홍장 등이 대표가 된 청나라는 8개국과 불평등한 신축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신축조약의 주요 내용. 전쟁으로 인한 열강들의 피해액을 보상하는 것에서부터 청나라가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들이 열거되어 있다.

훗날 이홍장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힘이 없으니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북경의 자금성 안에 8국 연합군이 주둔하는 모습.

 

망해 가는 조극에 대한 격앙한 슬픔을 시로 표현한 청말 애국시인이자 변법 운동에 적극 가담했던 담사동.

세상에 봄 근심 풀어볼 만한 게 아무 것도 없어, 오직 푸른 하늘을 보고 한바탕 크게 통곡한다네.

4억의 동포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니, 하늘가 어디에 신령스런 중국땅이 있는고?

 

서구 열강뿐만이 아니다. 일본에게도 갑오전쟁에 패하여 불평등조약인 마관조약을 맺게 된다.

 

침몰하는 대청제국.

 

특별히 보여줄 거리가 없으니 이렇게 조형물을 많이 전시하고 있다.

 

아편의 폐해에 대한 만화.

 

어쩌다 당시의 물건들도 전시되어 있다.

 

앞의 임금이 광서제. 그 뒤에 희미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사람이 바로 수렴청정의 서태후.

광서제는 개혁파의 의견을 받아들여 청나라를 현대화시키려고 하는데, 서태후가 반대하며 개혁을 봉쇄해버린다.

마치 우리의 대원군처럼.

 

수렴청정에 대한 설명.

서태후의 공식적인 칭호는 자희태후.

 

서양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여 청나라를 강하게 하자는 운동인 양무운동.

 

이 양무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으로, 증국번, 좌종당, 이홍장 등을 들 수 있다.

 

무술변법.

강유위가 주동이 되어 광서제의 허락을 받아 단행한 정치혁신 운동.

그러나 수렴청정의 서태후에 의해 진압되어 강유위, 양계초는 도피하여 생명을 건졌으나, 나머지 담사동 등 6인[무술육군자]은 잡혀서 처형된다.

 

광서제.

 

변법유신에 참여했던 양계초.

 

변법유신의 주동자 강유위. 그는 변법이 실패로 돌아가자 일본으로 도피하였다.

 

유신에 관련된 이론을 책으로 펴낸 강유위.

 

학자들은 외국의 과학과 학술 이론을 번역하여 중국인이 서양에 눈을 뜨도록 도왔다.

사진은 다윈의 <종의 기원>을 번역한 엄복.

 

각종 개혁 주장이 여러 통로를 통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기 시작한다.

 

자희태후, 즉 서태후는 개혁을 막기 위해 우선 광서제를 유폐시키고 개혁에 참여한 인물들을 소탕한다.

 

무술변법의 실패로 서태후에게 죽임을 당한 여섯 명. 무술육군자로 불린다.

 

 

의화단운동.

1899-1900년에 걸쳐 북방에서 일어났던 자발적인 반제국주의 군중애국운동인데, 청 정부와 연합군의 진압으로 실패하게 된다.

 

의화단운동에 가담하여 희생당한 사람의 시신이 바닥에 나뒹군다.

인간들의 잔인함, 정말 왜 서로 죽이려고 하나?

 

관군을 믿지 못하니, 도처에서 자발적으로 의용군을 조직하게 된다.

비록 창대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기운이 모두 신해혁명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왕조체제에서 서양의 입헌제로 가야한다는 각성이 일기 시작한다.

 

몰락해가는 청나라도 결국은 유신을 채택하게 된다. 그러나...때는 늦으리.

 

혁명의 기운이 어느 정도 배태되어 드디어 그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론이 아무리 비등해도 그 여론을 한곳으로 모아 체계적인 힘을 발휘하게 만들어주는 지도자가 없으면 혁명은 성공하기 어렵다.

하늘은 중국에게 손문이란 지도자를 보내주었다.

 

젊은 시절의 손문.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하와이로 가는 연락선을 타게 된다.

그때 넓은 바다를 보며 망해가는 중국을 구하여 세계 속의 중국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품게 된다.

 

청소년들이여! 꿈을 크게 가져라...

 

손문의 필체.

모두다 사랑하라.

 

혁명의 불길은 남방의 광주에서 손문에 의해 점화된다.

그것을 기념하여 중산대학이 광주에 있게 된 것이다.

 

혁명에는 힘이 필요하다.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개인보다는 조직이 필요하다.

곳곳에서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이 혁명 조직을 결성하기 시작한다.

 

손문은 하와이에서 중국혁명단체인 흥중회를 결성한다.

 

각 혁명조직들이 매체와 서적을 통해 자기들의 주장을 발표하여 국민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1904년 이후 혁명조직은 흥중회를 비롯하여, 화흥회, 과학보습소, 광복회, 악왕회 등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게 된다.

 

송교인과 함께 화흥회의 중심인 황흥.

 

화흥회 회원 기념 사진.

 

광복회도 있다.

광복회의 맹세문.

-. 만주족의 청나라를 치고, 한족의 나라를 되찾자.

-. 우리의 산하를 되찾자.

-. 몸을 나라 위해 바치자.

-. 성공하면 뒤로 물러나자.

 

지금 보면 광복회 등 당시의 혁명조직의 목표가 처음엔 단순히 만주족을 청나라를 없애고, 한족의 나라를 되찾자는 정도였다.

마치 몽고족의 원나라를 치고, 한족의 명나를 세웠던 주원장처럼...

 

악왕회는 안휘성에서 결성된 비밀혁명조직.

점차 혁명의 기운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