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황학루의 유래에 대해 잠시 언급하기로 하겠다. 장강 가에 신씨(辛氏)가 운영하는 주막이 하나 있었는데, 하루는 남루한 차림의 노인이 와서 술을 외상으로 달라고 했다고 한다. 마음씨 좋은 주인은 술을 주었는데, 그 노인은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이렇게 와서 외상술을 마시고 갔다.
그러던 중 하루는 그 노인이 와서 오늘은 그동안의 외상값을 갚겠다고 하면서 먹던 귤의 껍질로 주막의 벽에다 학을 그렸다.[황학] 다 그리고 난 후 노인이 손뼉을 치자 그림의 학이 밖으로 나와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러자 노인이 앞으로 이렇게 나처럼 학을 춤추게 하면 손님들이 그 소문을 듣고 몰려들 것이니, 그것으로 외상값을 갚는 셈 치자고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노인이 떠난 후 주인이 손뼉을 치니 역시 황학이 벽에서 나와 춤을 추었다. 이에 소문이 퍼져 손님이 끊이질 않았고, 신씨는 돈을 많이 벌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그 노인이 다시 찾아와 외상값을 갚았으니 학을 데려 가겠다고 하면서 학을 타고 하늘로 날아갔다고 한다. 이에 신씨는 노인이 범상치 않은 사람임을 알고, 주막을 그만 두고 그 자리에 노인을 기리는 누각을 세웠으니, 그것이 바로 황학루라고 한다.
백운각에서 나와 다시 황학루쪽으로 향한다.
용월대.
이곳에서 달을 보면 마치 물에서 솟아오르듯 보이는 모양이다.
조금 더 가면 특이한 형태의 종루가 나온다.
무한천년길상종이라고 한다.
무한이 오래도록 좋은 기운을 받도록 기원하는 종.
일반인도 종을 치면 좋은 기운을 받는다고 한다.
단 돈을 내야 칠 수 있다.
드디어 황학루가 바로 앞이다.
잠시 참았던 비가 황학루에 들어서자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황학루 서문 쪽.
이곳이 정문인 셈이다.
이것은 황학루 들어가기 전 종루 아래쪽에 있는 엣날 종의 꼭지 부분이라고 한다.
종의 본체는 어데 가고 꼭지만 남았더뇨?
지
황학루니 당연히 황금색 지붕이다.
날렵한 처마 끝 너머로 사산과 그 위의 백운각 등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한의 고수목인 자미목.
배롱나무라고도 하는데, 꽃이 석 달 열흘 간 피어있기 때문에 목백일홍이라고도 한다.
백일홍-배길롱-배롱??
종루와 종꼭지.
다시 장강.
황학루란 이름에 걸맞게 누각 안에는 온통 황학의 그림과 조각들이다.
사산 왼편 아래쪽으로는 철로가 이어져 있다.
신선이 타고 간 황학.
장강대교 오른편에 멀지 않은 곳이 위쪽으로부터 한강이 흘러들어와 장강에 합류하는 지점이다.
날씨가 너무 흐려 잘 보이지 않는데다 사진으로 담으니 아예 분간이 안된다.
곳곳에 황학이다.
지금의 황학루 모형도 전시해 놓았다.
이렇게.
역대의 황학루 모형도 전시해 놓았다.
또 다른 장강대교. 현수교 형태의 이 다리, 엄청 길다.
다시 비가 그쳤다.
회랑이 악양루에 비해 많이 넓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도 악양루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무한이란 도시의 전체적인 인상이 중국의 대륙적 특성인 광대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서문쪽 입구에서 본 황학루.
신씨 주막의 벽에 그려놓은 황학이 손뼉을 치자 나와서 춤을 추고, 그것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 든다.
사실 황학과 관련된 전설은 낭만 가득한 전설일 뿐이다.
실재로는 삼국시대 오(吴) 황무(黄武)2년(223)에, 군사용으로 지어진 망루였었다. 진(晋)나라가 오(吴)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이 누각이 군사적 효용이 상실되었으며, 강변의 발전과 함께 점차 여행지, 연회석으로 변화했던 것이다. 특히 당대에 문인들의 유랑이 잦았던 시기에는 자연스럽게 시인묵객들이 이곳을 찾아 주변의 풍광과 자신의 감회를 노래했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오늘날 황학루를 가장 유명하게 만들었던 일등공신은 바로 당 현종 때의 최호(崔颢704?—75)를 들 수 있다.
그의 7언시 <황학루>를 보기로 하자.
昔人已乘黄鹤去(석인이승황학거)옛 사람은 이미 황학을 타고 떠나버렸고
此地空余黄鹤楼(차지공여황학루)이곳엔 다만 황학루만 남아있네
黄鹤一去不复返(황학일거불부반)황학은 한 번 떠난 후론 다시 돌아오지 않고
白云千载空悠悠(백운천재공유유)흰구름만 천 년토록 부질없이 떠가네
晴川历历汉阳树(청천역력한양수)맑은 강 건너편으론 한숫가의 나무들 뚜렷하고
芳草萋萋鹦鹉洲(방초처처앵무주)향기로운 풀은 앵무섬에 우거져 있네
日暮乡关何处是(일모향관하처시)날은 저물었는데 고향땅은 어디더냐
烟波江上使人愁(연파강상사인수)안개 자욱한 물결은 나그네를 시름젖게 하네
사실 이 시는 형식적으로 보자면 시의 기본적인 원칙, 즉 같은 글자를 가능하면 쓰지 않는 원칙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시다. 그런데도 전체적으로 시의 구성이 풍경과 나그네의 시름 등을 절묘하게 어우러지게 하여 사람들의 감동을 충분히 자아내고 있다. 그래서 천하의 천재 낭만파시인인 이백도 이 누각에 올라 일필휘지로 한 수 읊어내려고 하다가 누각에 걸려있는 이 시를 보고 붓을 던졌을 정도이다. 황학루 동문쪽으로 내려가면 이백이 붓을 던졌다고 하는 각필정을 복원해 놓고 있다.
그러나 이백이 누구던가. 황학루에다 기어이 자신의 시를 남겨놓고야 말았으니, 다음은 이백의 시다.
<黄鹤楼送盂浩然之广陵>(황학루송맹호연지광릉)황학루에서 맹호연을 광릉으로 전송하며
故人西辞黄鹤楼(고인서사황학루)친구는 서쪽에서 황학루를 떠나
烟花三月下扬州(연화삼월하양주)안개 자욱한 꽃핀 삼월에 양주로 내려가네
孤帆远影碧空尽(고범원영벽공진)외로운 돛 먼 그림자는 푸른 허공으로 사라져가고
唯见长江天际流(유견장강천제류)오직 보이는 건 장강이 하늘가로 흐르는 것
이백 외에도 자연시의 대가 왕유, 중당사회시인 백거이, 송대의 악비, 육유 등도 걸작을 남기고 있다.
이곳에는 역대 황학루 관련 사진 자료 등을 전시해 놓았다.
역대 시사 전시관.
안개를 연출하고 있다.
굳이 연출하지 않아도 날씨 자체가 안개가 자욱하다.
장강만리정.
황학루가 총 6층인가 7층인가로 되어 있는데, 당연히 엘리베이트도 있다.
다만 노약자 전용. 그런데도 보통 사람도 많이 이용하고 있다.
천정의 모습.
악양루 천정의 모습과 닮았다.
다음에 다시 무한에 가면 장강대교 너머 강한지구에도 가 볼 생각이다.
맨 윗층에 마련된 전망대.
서문으로 바로 빠져나갈까 하다가 이백의 각필정 등 아직 보지 못한 곳이 많아서 산 기슭을 따라 동문쪽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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