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은 미모의 아가씨와 함께 소흥의 마지막 여정인 채원배고거와 왕희지고거로 향했다.
이름은 공비비, 나이 22세, 고향은 절강성 서남단 려수, 친구가 소흥에 취업해 있어 친구 만나기 위해 어제 왔다가 노신고리 구경하고, 오늘은 친구가 출근하는 바람에 혼자 다니는데, 자기는 내일이나 모레쯤 집에 갈 생각이란다.
좀 일찍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 속에서 소흥에서의 남은 몇 시간을 함께 이야기하며 구경할 수 있어 좋았다.
이야기하느라 사진을 별로 찍지 못했다는.
마침 왕희지고거가 숙소였던 소흥왕조대주점 뒷편이어서 16층 방안에서도 보인다.
전날 방안에서 찍은 왕희지고거 마을 사진.
멀리 보이는 탑은 문필탑.
문필탑 아래로 마을 끝쪽 황색 담벽의 두 건물이 왕희지고거.
일찍부터 계주사란 절로 바뀌었다.
사진이 뒤죽박죽이다.
호텔 또는 탑산, 비익루 등에서 바라본 소흥 시내 풍경.
왕희지고거는 서성고거라고 되어있다.
왕희지고거 앞, 즉 계주사 앞의 묵지.
지금도 물빛이 새카맣다.
여기도 제대로 보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
느닷없이 버스 안 사진은 무엇인가?
버스안내양이 신기해서 찍은 듯.
연 파는 아줌마.
소흥주 양조장 한 곳을 찾았다.
역시 서성고리 안에 있다.
사진이 제멋대로다.
왕희지고거인 계주사 안, 대웅보전.
여기는 여느 중국의 다른 절과 달리 사진 촬영 금지다.
뒷편에서 몰래 찍은 관음보살상.
실재로 대웅보전에는 스님들과 일반인들이 모여서 함께 소리높여 독경하고 있었다.
채원배고거도 바로 곁에 있다.
채원배. 역시 소흥이 고향인 그는 일찍부터 교육에 뜻을 두어 손문의 혁명정부 시절 초대교육부 총장을 역임했고, 1917년에는 북경대 총장이 되어 주작인, 호적, 심윤묵 등 문학혁명의 기수들의 요람으로서의 든든한 후원자 겸 동지 역할을 하였다.
채원배기념관 있다. 들어가 보자.
소흥주 양조장.
곡식을 멧돌에 잘 갈아서.
이렇게 찐 후 누룩과 함께
단지에 담아 발효시킨 후에
걸러서 이런 단지에 다시 담아 완전히 밀봉시켜 다시 몇 년 동안 숙성시킨다.
그 햇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현재 일반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황주, 소흥주는 대략 3-10년 사이 것.
수십 년 되는 것은 엄청 비싸다.
왕희지고거였던 계주사 입장권.
여기는 소흥관광 통표가 적용되지 않는다.
왕희지에 대해서는 대문간에 잠시 언급이 있을 뿐, 즉 왕희지가 평소 구슬과 거위를 좋아했었는데, 마침 한 중에 집에 들렀었고, 구슬이 떨어진 줄 몰랐었는데, 그 떨어진 구슬을 곁에 있던 거위가 삼켜버렸으며, 왕희지는 없어진 구슬이 중이 훔쳐간 줄 알고 중을 의심했다고 한다. 억울한 의심을 받은 중은 끝내 억울함 때문에 죽게 되었는데, 나중에야 거위가 삼킨 것을 안 왕희지는 크게 후회하고, 거기에서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절을 세웠으니, 구슬에 대한 경계라는 이름의 계주사가 된 것이라고 한다나...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우리나라에도 옛날 있지 않나 싶다. 독경소리가 나는 불당으로 들어가니 석가모니상, 관음보살상 등이 있고, 중앙에 중들 몇 명이 큰 소리로 독경하고 좌우의 의자에는 신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불경책을 들고 열심히 따라 읽고 있었다. 중국의 절이 그냥 관광객에게 보여주는 절만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실재로 종교활동을 하는 곳도 있다는 걸 처음 보았다.
계주사 구경을 끝으로 소흥여행을 마감하고 호텔로 돌아가 짐을 정리해 체크아웃하고, 택시를 타고 다시 소흥북역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소흥북역까지는 꽤 먼 거리였다. 대략 40분 정도 소요되었고, 택시비도 50원 정도가 나왔었다.
넓은 소흥역사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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