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비익루에서 내려선다.
이정표들이 나를 유혹한다.
잠깐, 좀 전에 비익루 위에서 보았던 누각은 비취루가 아니라 봉래각이다.
저기까지는 좀 멀고, 일단 내려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본다.
비익루 뒷편으로 옛날 시인들이 바위에 글을 새겨놓은 곳이 있다.
당나라 때의 유명인사들이 글을 새겨 놓은 곳.
동정낙수? 때로 동적으로 또 때론 정적으로 그렇게 삶을 누린다.
희미하지만 분명히 글씨가 새겨져 있다.
다시 올라와 비익루를 대칭점으로 봉래각의 반대편에 있는 작은 누각에 가 본다.
자취고정.
이제 시간에 조금씩 쫓기기 시작한다.
오늘은 상해로 돌아가는 날이니까.
그래서 곧바로 월왕전에 가기 위해 내려간다.
내려가다 월왕전 오른편의 혁명열사기념비도 잠깐 구경하고.
월왕전 정문이 아니라 쪽문으로 들어간다.
소흥숭겸사관.
월왕전이 아니라 월왕대였군.
특별한 유물이 있는 게 아니라, 소흥과 관련된 역사인물의 전기를 전시해놓았다.
하나하나 읽을 시간이 없다.
신도를 따라 멀리 보이는 게 바로 월왕전이다.
고사목 하나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고사목 앞에 가니 설명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남송 조구가 직접 심은 측백나무로, 이름하여 용두고백.
월왕전 계단 아래 오른편에 있는 건물, 무얼까?
바로 유명한 청백당.
남송의 문학가이자 개혁가, 청백리 정치인 범중엄과 관련된 곳이다.
범중엄에 대한 이야기가 쭈욱 전시되어 있다.
그 맞은편.
화신묘희대.
천정을 보니 어지럽다.
부근 양쪽의 화석.
그중의 하나.
자세히 볼 여유가 없다. 이미.
월왕전을 지키고 있는 양편의 짐승.
범중엄의 청백당과 관련한 고사가 깃들어 있는 곳.
이 샘이 바로 청백천.
이 샘의 물이 맑은 것에서 자신도 청렴한 관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는 범중엄.
범중엄의 산문 <청백당기>에 그 사연이 나온다.
청백당기 전문: 会稽府署,据卧龙山之南足,北上有蓬莱阁,阁之西有凉堂,堂之西有岩焉。岩之下有地方数丈,密蔓深丛,莽然就荒。一日命役徒芟而辟之,中获废井。即呼工出其泥滓,观其好恶,曰嘉泉也。择高年吏问废之由,曰不知也。乃扃而澄之。
三日而后,汲视其泉,清而白色,味之甚甘。渊然丈余,引不可竭。当大暑时,饮之若饵白雪,咀轻冰,凛如也;当严冬时,若遇爱日,得阳春,温如也。其或雨作云蒸,醇醇而浑;盖山泽通气,应于名源矣。又召嘉宾,以建溪、日铸、卧龙、云门之苕试之,则甘液华滋,说人襟灵。
观夫大易之象,初则井道未通,泥而不食,弗治也;终则井道大成,收而勿幕,有功也。其斯之谓乎?又曰井德之地,盖言所守不迁矣;井以辨义,盖言所施不私矣。圣人画井之象,以明君子之道焉。予爱其清白而有德义,可为官师之规,因署其堂曰清白堂,又构亭于其侧,曰清白亭。庶几居斯堂,登斯亭,而无忝其名哉!时康定元年三月二十日。
드디어 월왕전에 오른다.
월왕전 한 켠의 무늬.
아~월나라의 강과 산이여!
옛날 전국시대 소흥을 중심으로 한 월나라와 소주를 중심으로 한 오나라가 서로 치열한 전쟁을 치루었다.
먼저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 왕 합려를 쳐서 이겼는데, 합려는 아들 부차에게 반드시 아비의 원수를 갚아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이에 부차는 제후로서, 일국의 왕으로서의 산해진미를 마다하고 매일 같이 쓴 쓸개를 맛보며 복수를 잊지 않고 드디어 월나라와 싸워 회계산에서 승리하였다. 그리하여 구천은 아들 같은 부차에게 수모를 당하고 항복한 후 절치부심 복수의 칼을 갈았다. 이에 일국의 왕으로서의 금침을 마다하고 날마다 땔나무 위에서 잠을 자면서 복수를 잊지 않았으며, 천재일우의 두 신하인 문종과 범려의 도움을 받아, 여색을 좋아하는 부차에게 서시라는 미인을 선발해서 미인계를 써서 마침내 전쟁에 부차를 이기게 된다.
와신상담의 고사가 서린 곳.
역시 특별한 유물은 없고, 대신에 그림으로 그 당시 상황을 표현해주고 있다.
구천의 신하 문종.
문종의 사당은 비익루 뒷편으로 조금 내려가면 있다.
범려.
그다지 볼 것은 없다.
이내 빠져 나온다.
월왕대는 월왕전으로 들어가는 대문격이다.
월왕전을 빠져나와 다시 올 때의 역순으로 돌아가는데, 약간 길이 다른지 시장과 쇼핑센터 등으로 조금은 번화한 거리를 만난다. 이것저것 여기저기 구경하고 막 빠져나오려는데, 문득 앞에서 한 미모의 아가씨가 말을 걸어온다. 부근에 쇼핑할 만한 데가 있느냐고. 내가 어찌 알리, 나 역시 이방인이고, 더군다나 외국인인데...
그렇거나 말거나 자기도 혼자이니 오후 일정을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한다. 어찌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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