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으로 들어가서 경포대로 방향을 잡는다.
반쯤 얼음으로 덮여있는 경포호.
철지난 경포대해수욕장의 송림.
마차 한 대가 손님을 태운 채 지나가고 있다.
겨울철, 금요일 오후이건만 백사장엔 우리처럼 바다가 그리운 사람들로 영 외롭지만은 않다.
커다란 쇠구슬에 사람 그림자 모양의 구멍이 뚫려 있다.
아무리 따뜻하다고 해도 겨울은 겨울, 바닷바람이 제법 차다.
점심을 건넜더니 배가 고프다.
금강산도 식후경, 빨리 주문진으로 가자.
주문진 어시장의 활기찬 풍경.
뭘 먹을까.
회도 먹고 싶고, 제철 맞은 게도 먹고 싶고...
우선 점심으로 게를 먹자.
여기는 울진과는 달리 게를 파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좌판 한 곳에서 작은 대게 6마리를 3만 원에 사서, 먹자골목의 한 식당으로 가져가니 쪄서 그곳에서 먹도록 해 준다.
게 찌는 데 5천 원, 자리세팅비 5천원.
이곳 주문진 시장의 특징은 회 사는 곳 따로, 회 썰어주는 곳 따로, 먹는 곳 따로라는 점이다.
좀 번거롭게 생각된다.
싱싱하고 먹음직스러운 게가 상위에 가득하다.
1인당 두 마리, 모자라진 않겠지?
처참하게 살과 분리된 게 껍질.
내 생각엔 사진으로 찍었을 때 가장 추하게 보이는 게 음식 찌꺼기가 아닐까 싶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벌써 달이 둥그렇게 하늘에 떠올라 있다.
수산시장 주변을 산책하는데, 마침 출항 직전에 손질한 그물을 배에 싣고 있는 오징어배가 보였다.
한 폭의 유화 같은 주문진수산시장 앞 부두 풍경.
이것도 마찬가지.
시커먼 바다에 유독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만이 눈에 들어온다.
파도와 달.
파도.
이제 회를 먹으러 가자.
방파제에 늘어서 있는 횟집 중에 창가쪽에 손님 없는 한 집을 골라 들어간다.
이곳 횟집의 특징은 상호가 숫자와 함께 지명을 쓰고 있는데,
충주와 제천 등 충북의 도시들이 유난히 많은 게 특이하다.
아마도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바다와 먼 도시에서 온 손님을 겨냥한 듯...
전에 갔을 때는 자리를 잡기 전에 미리 고기를 흥정하였었는데,
이번에는 일단 들어가서 메뉴판을 보고 고르라고 한다.
그래서 약간 항변?을 하다가 주인이 권하는대로 양식 광어우럭(중) 7만 원짜리를 시켰다.
나중에 보니 여기는 매운탕은 별도로 돈을 내야 된다고 했다.
메인디쉬 전에 먼저 상에 오른 오징어무침회.
세 사람이 먹기에는 간질맛나게 하는 멍게와 게불.
찹쌀 경단.
기본 부식이 너무 단촐하다.
그렇다면 메인디쉬에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별다른 특징 없는 미역국.
오징어를 야채와 함께 무친 모습.
메인디쉬인 광어와 우럭. 오른쪽 귀퉁이에는 도루묵 새꼬시를 서비스로 주었다고 한다.
도루묵이니 당연히 자연산.
우리의 불만어린 표정을 눈치챈 것인지 얼마 후 통오징어찜 작은 것 두 마리가 나왔다.
싱싱한 오징어라 그런지 살이 부드럽다.
그리고 통채로 쪄서 그런지 맛이 구수하다.
서비스 치고는 괜찮다.
횟집 창 너머로 하늘엔 둥글고 흰 달이 떠 있고,
달 아래로는 시커먼 먼바다에서 밀려와 횟집 벽을 때리며 부서지는 파도가 끊임없다.
회 한 점 입에 넣고 달 한 번 쳐다 보고,
소주 한 잔 입에 붓고 파도 한 번 내려다 보고...
바로 이 맛을 느끼기 위해 2-3시간을 멀다 않고 달려왔던 것 아닌가.
맛에 취하고, 풍경에 취하고, 그렇게 흑룡의 해 2012 임진년 1월 초의 밤은 깊어간다.
회를 먹은 후 주변 바닷가를 산책한다.
멀리 아들바위쪽으로 난 길가에 횟집들의 불빛이 휘황하다.
파도는 여전히 부서지고.
달도 여전히 희고 둥글게 하늘에 있다.
수산시장 쪽 풍경.
방파제회센터 풍경.
숙소로 가는 길 옆의 건어물 가게 앞에 걸려있는 말린 가오리.
어째 꼭 사람 같다.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방파제회센터 부근에는 e모텔, 발리모텔 등이 있는데,[둘 다 괜찮다]
우리는 여기에 묵었다.
찜질방처럼 뜨끈한 온돌방, 한실에서 밤새 우리 내외와 큰 아이가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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