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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재와 태리 이야기

[2010년10월23일]고구마 캐던 날

by 유경재 2010. 10. 27.

요즘 우리 가족들은 정말 바쁘게 살고 있는 듯 하다.

1주일, 열흘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그렇게 원했던 전원생활이었건만 요즘 들어서는 유경재에 갈 시간이 나질 않는다.

그러던 모처럼 아이들이 귀가하는 쉴토에 맞추어 유경재를 찾았다.

 

그렇게 짙푸르고 무성하던 텃밭의 풍경이 황량함을 느낄 정도로

우리가 없는 사이 유경재엔 벌써 가을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유경재는 생명의 원천이라고 생각된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작년 경주 시골에서 가져온 호박씨 여나무 개가 막상 올봄에 심으려고 보니

갈라지고 말라비틀어져서 안되겠다 싶어 텃밭 한 쪽에 쭉 일렬로 묻어서

자랄 테면 자라보라고 거의 포기하고 나서

모종상에 가서 싱싱한 모종 몇 개를 사서 집 뒤꼍에다 구덩이를 파고 거름을 주고 잘 심었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모종을 사서 정성을 쏟은 호박은 비실거리면서 포기당 겨우 하나의 애호박 수확에 거쳤었는데(지금은 거의 고사 직전),

버리다시피한 녀석들은 여름내내 텃밭의 한쪽을 거의 다 차지할 듯한 기세로

사방팔방 넝쿨을 뻗어나가 1주일이 멀다 하고 탐스런 호박을 생산해내었으니

도대체 생명의 신비란 게 우리 인간들이 감지하기에는 너무도 신비스럽다고 하겠다.

 

이제 그렇게 싱싱하게 넝쿨을 뻗치던 그 녀석들도 기세가 많이 꺾이어 시들어가는데

그 사이에도 여기 저기 마치 그동안 결실하지 못한 것을 만회라도 하듯

한꺼번에 열매를 맺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래 사진 같은 크기의 애호박을 6개 정도 수확하였고,

또 3-4개는 다음에 수확할 정도의 크기로 결실을 준비하고 있었다.

 

못났다고 꼭 버릴 게 아니고,

정성을 쏟는다고 꼭 잘된다는 법칙은 없다는 걸 깨닫게 해준 호박이었다.

 

생명의 신비를 느낀 두번째 대상은 바로 가지다.

모종 3-4개를 사와 오이를 심은 망 옆에 심었는데,

여름 내내 활기를 잃고 열매를 잘 맺지 못했다.

기껏 맺은 열매도 중간이 말라 비틀어져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아, 글쎄 이놈들이 올 가지 농사는 거의 포기하고 있던 차에

조금씩 생기를 찾더니만

다른 작물이 시들어갈 시기인 가을이 되자 왕성하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신기하기만 하다.

10월 하순인 이 가을에 아직도 피어 있는 꽃이 보이니

된서리가 내릴 때까지 생명을 노래할 모양이다.

대견하고도 고맙다.

 

그뿐인가.

육묘상에서 청양고추 반판(36주)을 삼아 야심차게 심었는데,

비록 죽은 놈은 하나도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고추에 비해 영 왜소하고 힘이 나약해보여 안타까왔었다.

게다가 한창 붉은 고추를 수확하기 시작할 무렵에는

한쪽 끝자락에서 퍼지기 시작하던 고추벌레가 고추 전체에 퍼저 아예 수확을 포기할 정도에까지 이르렀었다.

그래서 살충제를 사용할까를 무척이도 고민하게 만들었었는데,

우리가 먹을 양은 이미 다 먹었다고 생각하고, 이제 끝물에 무슨 농약을 쓰랴라고 생각을 굳혔었다.

그리도 다시 찾은 유경재의 고추들,

신기하게도 그 많던 고추벌레들은 다 사라지고,

고추들은 다시 꽃을 피우고 푸른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아니 신기한 일인가.

벌레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떠났다는 말인지.

생명의 신기함, 유경재의 생명력을 한껏 느끼게 하는 녀석들이다.

 

남들에 비해 한참 늦게 무학시장 끝의 천변 난전에서 시들어가는 순 몇 개를 사서 반신반의하며 심었던 고구마.

남들의 것에 비해 잎이나 넝쿨이 왜소하기만 하여 여름 내내 우리를 안타깝게 하던 것들.

그래서 수확일도 최대한 늦추어 드디어 오늘로 잡았다.

 

더군다나 밭 제일 안쪽 그늘진 곳에 심었었기에

수확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었으며,

감자만한 거라도 몇 개 건져 맛을 볼 정도면 만족하리라 생각했었는데,

결과는 대단한 수확은 아니지만 그래도 처음 치고는 훌륭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고구마 역시 대견하고 고맙고, 그런 고구마를 키워 낸 유경재의 흙들이 신비롭고 고맙다.

 

땅에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으니,

이렇게 굼벵이도 심심찮게 보인다.

 

또 하나 대견하고도 신비로운 것은 고구마 순 살 때 서비스로 얻은 5포기 치커리 모종이다.

역시 처음에는 비실대다가 가뭄에 거의 형체가 없어질 정도로 말랐었는데,

어느 순간, 아마도 다른 작물들이 시들기 시작할 때부터

생기를 띠더니만 유경재의 삼채로는 유일하게 지금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진에서 보듯이 자신의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듯 하다.

잎줄기의 보라색이 연두색 잎과 어울려 그야말로 신비로운 형상을 띠고 있다.

저녁 반찬으로 먹기 위해 몇 잎을 딴다. 

 

 

 

고구마 수확을 끝내고,

뒤꼍 연못가에 자리잡고 있는 산수유나무 세 그루를 찾았다.

작년에는 따는 시기를 놓쳐 수확이 거의 좋지 않았는데,

지금 나무를 보니 온통 새빨간 산수유로 치장을 하고 있다.

나무 아래 자리를 깔고 장대로 산수유를 털었는데,

한 나무의 한쪽 가지만 따도 벌써 양이 많았기에 나머지는 훗날로 미루고 산수유 수확을 끝냈다.

 

산수유를 따는 동안 주변에는 온갖 곤충들이 마지막 생을 구가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흰거미에다,

 

이건 또 무슨 곤충인지 산수유 열매 크기만 하다.

 

잠자리도 조용히 생을 끝을 대비하고 있는 듯.

 

사마귀도 용감하고 무서운 형상에서 조금은 귀여운 이미지로 변해가고 있다.

 

집 뒤 언덕에서 마을을 내려다 본다.

고즈늑한 시골 가을 풍경이 너무나 정겹다.

 

집에 돌아와 도서관에 공부하러 간 아이를 싣고 돌아오는 길,

체육관에 무슨 일이 있는감?

 

사과축제가 열리는 날이라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이미 대부분의 행사가 파한 끝무렵이었다.

충주하면 사과, 사과하면 충주라는 말을 언제까지 쓸 수 있을지,

지구 온난화가 가속되면 사과 재배선이 계속 북상할 게 뻔한데...

 

집에 돌아와 수확한 것을 전시했다.

방울토마토의 생명력은 정말로 대단하다.

초여름부터 열리기 시작하여 아직도 이렇게 맛볼 수 있을 정도라니...

 

오늘 수확한 산수유.

무얼 할까 고민이다.

가장 좋기로는 그냥 통째로 술을 담그는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