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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재와 태리 이야기

2010년 9월 4일 유경재에선...

by 유경재 2010. 9. 12.

올해 여름, 정말 지독히도 끈질기다.

벌써 9월이건만 더위는 도무지 기세가 꺾일 생각이 없는 듯하다.

 

바쁜 일로 모처럼 찾은 유경재,

예년 같으면 풀 색들이 바래질 때도 되었건만 며칠 전에 뽑았는가 싶은 자리에

그때보다 더 큰 풀들이 나를 조롱하듯 자라고 있다.

 

현관 앞의 잡초들,

갈 때마다 뽑은 듯 한데도

마치 폐가인 양 제 세상처럼 자라고 있다.

 

가장 먼저 자리를 잡았던 터줏대감, 머위들.

올해도 역시 기세를 잃지 않고 있다.

믿음직스럽기까지 하다.

 

올봄에 인근 주봉산에 가서 몇 포기 캐와 조성한 취나물 구역.

처음 시들시들하던 모습과는 달리

이제는 완연히 자리를 잡은 듯 하다.

그래서 대견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서슬 퍼렇던 잡초들이

지난 번에 왔을 때 더위를 무릅쓰고 대강을 뽑아더니

오늘 누군가 제초재를 뿌린 듯 누렇게 말라있다.

 

저들 잡초도 서로를 의지삼아 자라고 있었던 모양이다.

마치 잔디가 퍼져나간 잔디밭에 잡초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듯 말이다.

 

저들 세력이 꺾이니 각자의 기세도 저렇게 힘을 못하는 모양이다.

 

 왼쪽 멀리 늦게 심은 고구마가 이제사 제대로 힘을 얻은 듯하고,

오른쪽의 지줏대 고추는 한창때를 넘기며 벌레들의 공습에도 아직 굳건하게 견디고 있으며,

바로 앞으로 보이는 참외는 올 농사 작물 중 가장 성공한 작물답게

아직도 제 빛을 잃지 않고 있다.

 

세 포기 정도 심은 것 같은데

벌써 얼마나 따 먹었는지 기억조차 없을 정도로 마디마디 알차게 결실한  참외.

옆 이랑의 고추와, 심지어 그 건너편의 방울토마토에까지 넝쿨이 뻗어나가는 왕성한 생명력이 그저 감탄스럽기만 하다.

 

파란 저 열매도 다음 주에 올 때면 노랗게 변해 있겠지...

그래서 자연이 늘 고마운 것이다.

 

두 포기 정도 심었던 수박,

초여름에 작은 풍선만한 커기를 따 먹은 이래,

별로 기대를 않고 버려두었었는데,

느지막히 지각생 열매가 맺혔다.

제대로 익으려나 저으기 걱정이 된다.

 

남들에 비해 한참이나 늦게 무학시장 천변 난전에서 구입해 처음으로 심어본 고구마.

처음에는 가뭄으로 비쩍 말라가기에 아예 기대도 않았었는데,

둔덕 아래로까지 뻗어나가는 그 기세가 가상할 따름이다.

역시 생명의 힘은 놀랍다. 기적이다.

 

참외는 땅 표면을 따라 뻗어가는 넝쿨식물인 줄 알고 있는데,

우리집 이놈들은 어찌 된 셈인지 고추 지주대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제가 마치 오이인 양 생각되는 모양이다.

 

집 뒷편 연못쪽 둔덕에 뒤늦게 심은 호박이 열매는 잘 맺지 못하면서 꾸준하게 꽃은 피운다.

 

올해 호박농사,

세 포기 모종을 집 뒷쪽에 심었었는데, 결과는 영 실패로 보인다.

지금껏 한 포기에 한두 개 정도 수확했을 정도.

그런데

집 마당쪽에 작년에 잡초를 베어 모아둔 무더기에 시골에서 가져온 호박씨 여나무 개를

마치 버리듯이 뿌려놓은 곳에 정말이지 너무나도 싱싱한 호박줄기가 올 여름 내내

마당과 밭과 심지어는 도로에까지 뻗어나가면서 열매를 맺고 있다.

신경을 쓰지 않고 버려둔 놈이 잘 자라고

정성을 다해 관리한 놈은 비실거리니 이게 세상 이치인가 싶기도 하다.

 

무성하게 자라는 호박이나 그렇지 않은 호박이나

올해 호박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들러면 한두개 열매를 맺어

마치 우리가 소화할 양만 생산하겠다는 듯 그렇게 정말 적당히 열매를 맺고 있다.

신기할 따름이다.

 

호박꽃,

미운 여자를 일컬어 호박꽃도 꽃이냐고 하는데,

호박꼭은 자세히 보면 정말 예쁘다. 순수하다.

꽃 핀 마디마다 열매가 맺히면 얼마나 좋으련만

꽃은 열 개 스무 개 피었으되 막상 결실은 한 두 개.

그러나 아침 나절 활짝 핀 꽃을 보노라면 열 개면 열 개, 스무 개면 스무 개의 꽃마다

정말 희한하게도 벌들이 찾아들고 있다.

자연의 오묘한 모습인 것 같아 다시 한 번 숙연해짐을 느낀다.

 

텃밭 끝쪽에 다섯 포기 들깻잎은 우리 가족 여름 내내 삼채의 중심 역할을 맡고 있다.

가만 보면 잎마다 벌레가 먹어서 성한 게 거의 없지만 그래도 대견하기 그지 없다.

아직 열매는 맺힐 기미도 없으니 앞으로도 한참이나 더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할 듯 하다.

 

집 가까운 쪽 딸기를 심어 놓은 옆쪽에

처음으로 반신반의하면서 뿌린 부추씨가

그렇게도 애를 태우더니 마침내 이 정도로나마 자라 주었다. 그렇다. 우리를 위해 자라 주었다.

내년에는 좀더 영역을 넓혀 줘야겠단 생각이 간절하게 든다.

 

다시 일주일 후에 찾았다.

자세한 사진은 다음 기회에 올리기로 하고,

따온 호박잎을 다듬은 모습.

한 달에 몇 번이나마 유경재에서 보내는 날들,

살아가는 의미를 되새기게 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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