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리는 강소성 오강시에 예속되며 태호부근과 경항대운하 주변에 자리잡고 있고 시정부소재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상해,소주,항주 등 중국남방 3대 유명한 도시와 린접하여 있고 강소,절강,상해 두개 성과 한개 시가 교회한 금삼각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국 연해와 장강삼각주가 대외개방하는 중심구역이다.
소주와 태호 서안 사이라고 보면 된다.
마을 입구에는 이렇게 인력거꾼들이 대기하고 있다. 많이 추워 보인다.
보통 두 사람이 타는데, 우리가 탄 인력거는 조그마한 오르막에도 못가서 우리가 내렸다가 탔다가를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괜히 탔었다는 기억도...
관광객에게 가마우지 고기잡이법을 시범하기 위해 있는 할아버지.
마을 안길이 이렇게 수로로 이루어져 있다.
상해 부근에도, 소흥에도, 강남지방에는 이런 물의 도시가 더러 있다.
물과 집 사이에 좁은 길이 있어 자전거나 사람들이 다닐 수 있다.
이러한 아치형 다리도 있는데,
실용성보다는 심미성을 더 강구하였다.
점심으로 한국 관광객을 배려해 한식을 준다.
왜곡된 맛 때문에 차라리 제대로 된 중국음식이 더 나을 것 같다.
한국 가면 정통 한국 음식 실컷 먹으니, 여기서는 중국음식 주세효ㅜㅜ
소주에서 유명한 한산사란 절에 들렀다.
조그마한 사찰이지만 당나라 시인 장계의 <한산사>란 시로 실재와는 달리 유명세를 타고 있다.
〈楓橋夜泊〉(풍교에서 묵으며) .... 張繼(唐代시인)
月落烏啼霜滿天, 달 지고 까마귀 울며 서리는 하늘에 가득한데
江楓漁火對愁眠. 강변의 단풍과 고깃배의 등불을 보며 근심으로 잠 못드네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 밖의 한산사
夜半鐘聲到客船. 한밤중의 종소리 나그네 잠든 배에까지 들리네
1) 楓橋: 江蘇省 蘇州의 서쪽 교외에 있는 楓江의 다리. 그 주변에 특히 단풍나무가 많음. 2) 愁眠: 근심 때문에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함. 3) 姑蘇城: 蘇州의 다른 이름. 4) 寒山寺: 南朝 梁나라 때 [妙利普明塔院]이란 이름으로 세워진 절로서, 初唐 詩僧 寒山이 이 절에 살았다해서 [寒山寺]라는 이름이 생겼다. 오늘날의 종은 淸 光緖 33년(1907)에 새로 주조한 것임.
○ 참고: 한산사에는 오래 전부터 이 시를 석각해 두었는데, 지금은 宋刻(송각)은 없어지고 명대 文徵明의 석각이 있긴 하나 글자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泯滅(민멸)되었다.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청대의 巨儒(거유) 兪 (유월)의 필체를 석각한 것인데,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이 탁본을 얻는 것을 큰 선물로 삼고 있다.
아래 안내도를 보면 거의 모든 게 이 시의 내용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인 한 사람, 아니 7언절구 28글자로 인해 수많은 후손들이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을 그 덕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문화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새삼 실감하게 된다.
작가 장계가 배를 정박시키고 하룻밤을 묵었던 그 풍교가 도대체 어디일까.
한산사 앞의 조그마한 물줄기.
설마 여기에서?
한산사의 출입문.
절은 규모가 작다.
경내에 온통 향을 피우는 연기가 자욱하다.
무신론인 맑스레닌주의의 사회주의 국가에 지극히 유심적인 기복신앙이 도처에 만연하고 있다는 사실.
우리 도량의 그것과는 사뭇 차이가 있어 색다름을 느낀다.
한산사 안의 높은 건물에서 바라본 소주 시가지 풍경.
뿌연 지평선과 거의 키가 같은 지붕의 윤곽들이 이채롭다.
석가모니가 연꽃을 들고 제자 가섭에게 도를 전수했다는 이야기.
염화시중의 미소를 암시하고 있는가.
바로 이 작품이다.
한산사를 유명하게 만든 장계의 <풍교야박>.
1921년에 창당된 중국공산당 초기의 주요 인물이자 문학가인 이대교의 글씨라고 되어 있다.
달랑 28글자의 한자의 힘이 대단하다.
한산사의 법당.
화려한 단청이 아니라 수수한 회칠이 되어 있어 현판만 아니면 여염집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한산사에서 나와 근처의 호구탑으로 향한다.
보이는 저 탑이 호구탑.
평야지대에 저 정도의 높이는 대단한 것이다.
그래서 이 지역을 산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전설에 의하면 春秋시대 오(吳)나라 왕 부차(夫差)가 부친인 합려(閤閭)를 이곳에 묻었는데, 3일 후 흰호랑이(白虎)가 무덤 위에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에 후구산[虎丘(山)]이라고 했다 한다. 높이는 36미터.
오나라 왕이 칼을 시험했던 바위.
우리 나라에는 경주의 단석산 위에 김유신 장군이 칼로 자른 바위가 있고...
호구탑 가는 길.
칼을 갈았던[씻었던] 못이 있다.
가까이서 보니 탑의 규모가 상당히 크다.
그리고 피사의 사탑처럼 약간 기울어져 있다.
호구탑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차는 또 하나의 쇼핑 센터를 찾는다.
소주는 옛날부터 비단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비단 가공공장을 견학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70년대 말까지 양잠이 성하였고, 그래서 대학에서조차 잠사학과란 게 있었는데
어느 땐가부터 저가의 수입품 때문에 양잠업이 거의 멸종되다 시피 하게 되었다.
봄누에, 가을누에...
네 번의 잠을 자고 나면 드디어 실을 뽑아서 고치를 짓고, 그 안에서 번데기로 있다가 때가 되면 고치를 뚫고 나비로 변태하여 날아가는 누에.
번데기가 잠을 자고 있는 고치를 저렇게 기계를 이용해 실을 뽑아낸다.
저 실로 짠 베가 바로 실크. 비단.
워낙 탄성도 좋고 질기다.
결국은 판매가 주 목적이다.
벽에는 이렇게 사이즈별로 표준 가격을 책정해 두었다.
구경도 구경이지만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하고 또 어떤 음식이 상에 오를까 기대가 된다.
여기는 졸정원.
소주, 양주 등 강남지방은 정원이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정원이 바로 소주에 있는 이 졸정원이다.
拙政園
明代 1509년 어사(御史)였던 왕헌신(王獻臣)이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唐代 육구몽(陸龜蒙)의 택지와 元代 대홍사(大弘寺) 절터를 확장하여 지은 것. 이름의 의미는 서툰 것은 정치하는 일[拙者之爲政]이란 뜻이다. 왕헌신 사후 아들이 도박으로 徐씨에게 넘어갔고, 그 자손 또한 쇠락하여, 1631년 왕심일(王心一)이란 사람에게 귀속되었다고 한다.
같은 풍경이건만 이렇게 원형 창을 통해 보면 더 멋있어 보이는 이유는 뭘까.
바깥은 춥지만 그래도 정원 안에는 햇볕이 모여 따뜻하다.
소주를 다 보았으니 숙박은 상해로 가서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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