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와 2011년 이후 한국의 트렌드
올해 우리나라에 신설된 TV프로그램 중 시청자들에게 가장 영향력이 큰 프로그램을 들라면 단연 MBC의 “나는 가수다”(나가수)가 아닐까 한다. 초창기 생소한 포맷으로 인해 말도 많더니만 최근 임재범의 등장으로 갑작스레 대한민국 전체 국민의 관심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임재범, 솔직히 나 자신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고해>라는 노래를 부른 적이 있는 호소력 짙은 나이 든 가수라는 것밖에 없으며, 특히 얼굴조차도 생소하다.
1963년생, 발라드와 알앤비, 록을 넘나드는 가수로서, 1986년 시나위 1집에 참여하면서 대중음악계에 대뷔한 이래, 굵고 허스키한 남성적인 음성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유명한 가수였다. 대표곡으로는 <고해>를 비롯해, <사랑보다 깊은 상처>, <너를 위해> 등이 있으며, 2010년 KBS 드라마 <추노>의 타이틀 곡 <낙인>으로 다시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2011년에는 SBS 드라마 스페셜 <싸인>의 타이틀 곡인 <독종>을 부르기도 했다.
이러한 임재범이란 가수가 80년대 초에 미니스커트 윤복희가 불러서 감동을 주었던 <여러분>이란 노래를 새삼스럽게 불러서 수많은 시청자들을, 아니 온국민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본래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가수의 본색인 노래를 누가 가장 잘하는가를 가름하기 위한 것인데, 여기에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져 있던 나이든 가수 하나가 정말 노래를 잘하는 최고의 가수라는 찬사를 들으며 국민들 앞에 바람처럼 훌쩍 나타났다.
그렇다. 이제까지 우리 가요계는 그 본색인 가창력이 아닌, 외모와 댄스, 무대기교, 연기력, 소속사의 기획력 등에 의해 지배당하여, 정작 가창력은 마치 금상첨화 중의 꽃에나 비유될 정도로 후순위로 밀려나 있었다. 즉 정통적인, 클래식한 것보다 신선하고, 자극적인 것들이 더 환영을 받는 것으로, 이런 현상이 90년대 이후 지금까지 20년 이상의 대한민국의 트렌드를 대표하거나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 말은 곧 대한민국의 모든 분야가 본색과 외연이 뒤바뀐 채 위태롭게 그 존재를 유지해오고 있었다는 말이다. 음악과 함께 예술의 범주에 드는 문학의 경우, 글을 잘 쓰는 사람이 환영 받는 게 아니라, 글이야 어떻게 쓰든 관계없이 비틀고 해체하고 낯설게 하여 독자들에게 얼마나 더 자극적으로 다가서느냐에 따라 글의 우열이 판가름 나고, 거기에 출판사의 책 디자인 능력이나 광고, 기획 능력 등에 의해 작품의 우열이 결정되어 오고 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미술도 그렇고, 스포츠도, 정치도 그렇고, 사회 모든 분야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그렇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겠다.
여기에서 잠시 본색이 중심이 되고 외연이 그것을 바쳐주는 것에 대해 말해보자. 이것이 어찌 지금의 말이겠는가. 이미 수천 년도 전에 성인들이 깨달은 진리였다. 《대학》의 경문에 “사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으며,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무엇을 우선으로 해야 할 지를 알면 그게 바로 진리인 것이다.”(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라고 했다. 지금까지의 대한민국_내가 보기에는 미국 중심의 이른바 자본주의 국가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본말이 전도된 위태로운 상태로 발전이란 미명을 쫓아가고 있는 중이다.
세상에 있어 영원한 것은 없다. 그 중에서 트렌드라는 것은 그 말 자체에 이미 일시적이라는 한시성을 내포하는 가장 비영원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20년 이상 지속되어 온 이러한 트렌드는 급변하는 현대사회의 제반 분야로 볼 때 매우 장기적인 독재를 유지했다고 할 수 있다. 임재범의 등장은 바로 본색보다 외연, 비본색이 지배하던 작금의 대한민국의 트렌드의 종말을 예고하고, 본색이 제자리를 찾는 새로운 시대의 트렌드의 도래를 우렁차게 알리는 함성과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임재범의 <여러분>을 계기로, 이제 대한민국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 근본과 지엽이 제 자리를 찾기 위해 몹시도 소란스럽고 분주할 것이다. 수십 년 간 도치되었던 자리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많은 아픔과 혼란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본래의 자리이기에 결국은 누구나 수긍하며 흔쾌히 따르게 될 것이다. 분야뿐만 아니라 신분으로서도 각기 무엇이 근본이 되는 지를 알아가게 될 것이다. 학생은 선생님을 통해 덕성을 닦고, 진리를 전수받을 것이며,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행동을 통해 덕성을 가르치고 진리를 전수하게 될 것이며, 정치인은 재물보다 국민들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예술가도 진정한 예술 본연에 열중하며, 예술수용자들도 누구의 작품이 근본에 더 충실했는지를 가지고 작품을 평가할 것이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 예외가 없을 것이며, 그래서 근본에 충실한 사람이 우대를 받게 될 날이 도래하게 될 것이다.
정말 잘 부르는 노래 한 곡으로 온국민이 감동하는 대한민국에는 희망의 푸른 빛이 서리고 있다. 정말이지 이게 나 하나의 치기어린 환상에 지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해본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새롭게 튼튼한 자리를 잡게 되고, 대한민국이 중심이 되어 나아가 전 세계가 사람 살기 좋은 이상적인 지구촌으로 바뀌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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