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경재와 태리 이야기

5/22해바라기를 심다

by 유경재 2011. 5. 22.

오늘 문득 신립 장군이 생각난다.

그 당시 조선과 일본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결과야 모두 같았겠지만

그래도 어째 그 천혜의 요새인 새재를 포기하고 허허벌판 탄금대에서 사수할 생각을 했을까 싶다.

물론 중과부적의 병력을 감안한다면 배수진의 각오가 필요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런 후회 아닌 후회를 내가 또 할 줄이야.

엊그제 금요일, 갑작스레 공격해 오는 대학 동기들의 공세에

그만 새재를 방어할 틈도 갖지 못한 채 수안보에서 대접전을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었다.

 

적들은 선발 정예병 11인, 오랜 기간 준비와 작정을 하고 어스름 황혼을 틈타

남쪽에서 북상하는 주력부대와 거의 동일한 병력의 북쪽 병사들의 남하에

소수이긴 하지만 도무지 그 화력을 예측할 수 없는 동서의 병력들이 일제히 공격해 오는 데는

수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국토의 중앙인 충주만은 사수해야 하겠다는 결의로 임전하여 다음날 날이 밝을 때까지 사투했었지만

어차피 예견된 패배로 수안보는 그렇게 비참하게 피로 얼룩진 패배를 가져왔었다.

 

그렇게 예나 지금이나 문경 새재는 지켜내기 어려운 곳인 것을 확인한 걸로 만족하면서

씁쓸하게 퇴페하며 어제 하루, 아니 오늘 아침까지도 쓰라린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작전을 복기하면서 보내었었다.

 

그리고 맞은 계절의 여왕 5월, 하순의 휴일에

어제의 패배를 말끔히 잊기로 다짐하고 서둘러 유경재로 떠났다.

 

좁은 공간에 조금 남은 곳에 몇 포기의 생명이나마 더 심어보겠다고, 그것보다는 하루하루 변해가는 유경재 텃밭의 풍경이 너무도 궁금했기 때문에...

 

유경재로 가기 전 새로운 모종이 있으면 사기 위해 우선 시장에 들렀다.

마침 해바라기 모종이 있어서 여섯 포기를 사서, 텃밭 길가쪽으로 나란히 심었다.

땅이 마냥 돌밭 같아서 잘 자랄 지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을에 키 큰 해바라기가 텃밭을 호위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이 놈은 엄나무(음나무, 응개나무)인데, 내가 심은 것이 아니니 어쩌면 자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깻잎을 좀 더 수확하기 위해 시장에서 들깨 모종을 천 원에 9포기를 샀다.

그런데 막상 심으려고 하니 그 중에 두 개는 죽어 있거나 비어 있었다.

 

앞쪽의 들깨는 지난 번에 심은 것이고 뒷쪽의 것은 오늘 심은 것이다.

 

오늘 시장에 들렀을 때 처음 보는 모종이 있어 물어보니 "유주"라고 하는 것으로,

노란 멍게 같은 열매가 열리는 것으로, 다 익으면 벌어지며서 빨간 속을 보인다고 한다.

옛날에는 과일로 잘 먹었었는데, 지금 과일이 흔하게 되어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고 해서

그 열매가 궁금하기도 하고 맛이 어떨까 싶어 세 포기(1000원)를 사와서 심었다.

 

구멍마다 빼곡히 자라고 있는 것은 열무인데, 씨를 뿌릴 때 귀찮고 바쁘기도 해서 대충 뿌렷더니 이렇게 한 구멍에서

아우성들을 치고 있다.

 

모종으로 사서 심은 청상추. 이제 먹으도 될 만하게 자랐다.

 

청상추와 같은 날 심은 적상추. 역시 먹을 때가 되었다.

 

치커리?

 

 

 

 

샐러리.

 

청경채.

 

강낭콩.

 

케일.

 

겨자채.

 

쑥갓.

 

집 주위에 유난히 많은 애기똥풀. 줄기를 끊으면 아기똥 같은 노란 진액이 나온다.

그런데 독초라고 한다.

 

현관 앞의 뱀딸기가 유혹적이다.

맛은 없지만 옛날 어릴 적에 시골에서 가끔 따 먹던 기억이 새롭다.

 

심지는 않았는데 모양으로 보아 꼭 유용한 채소인 것 같다.

 

아무렇게나 뿌려놓았던 호박씨가 이렇게 튼튼하게 싹을 틔우며 자라고 있다. 대견하다.

 

여기에도 호박 싹이 자라고 있다. 역시 대충 씨를 뿌렸던 곳이다.

 

너무 작고 가벼운 씨앗인 상추씨를 심을 때,

이게 어떻게 싹을 틔울까 하면서 한 곳에 집중적으로 심었다가

너무 빽빽하게 나는 게 안돼 보여서 오늘 일일이 화분 분갈이 하듯 옮겨 심어주었다.

한 줄뿐이던 것이 이제 서너 줄이 되었다.

심으면서도 이게 과연 다시 잘 자랄까 싶은 걱정이 떠나질 않는다.

 

올 해 심은 매화나무도 잎사귀가 제법 무성하게 달렸다.

 

자두나무는 잎이 더 무성하다.

 

도무지 잎이 피어날 것 같지 않았던 대추나무도 때가 되니 이렇게 푸른 잎이 맺힌다. 거저 생명의 신비에 감탄할 따름이다.

  

 현관 앞 영산홍은 "화무십일홍"이란 말을 실감시키는 듯 벌써 시들어가고 있다.

 

올해 심은 씨앗과 모종이 벌써 이렇게 수확을 하게 될 정도가 되었다.

이제 가을 서리가 내릴 때까지는 또 부지런히 이렇게 수확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으리라.

중앙 오른쪽으로부터 고스톱 방향으로 열무싹, 부추, 청경채, 적상추, 쑥갓, 안은상추, 청상추, 치커리?, 겨자채, 케일, 가죽나무잎...

 

막걸리가 어찌 생각나지 않으리. 서울장수막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