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랫만에 벼르고 별렀었던 일이다.
중고등 동기 둘과 현역 장교 한 명 그렇게 네 명의 라운딩 약속이
벌써 열흘도 전에 이루어졌었다.
옛날 친구들과의 첫 라운딩에 대한 설레임, 그리고 공사 안 필드에서의 첫 라운딩이란 설레임 등으로
대략 2주간의 설레임 속에 맞은 D-day였었다.
바쁜 일상 때문에,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6월에 나간 이후 처음이라는 기대도 컸고,
무엇보다도 새로 장만한 파이널리스트, 그 중에서도 우드와 유틸리티에 대한 기대 때문에
유난히도 기다려졌던 라운딩이었다.
그런데 라운딩 며칠 전 주중부터 일기예보는 주말 오전(우리의 티 업 시간이 7:48)에
가장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고 하면서 모처럼의 설레는 기분에 찬물을 끼얹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하루 전인 금요일 오전까지도 비소식이 없자, 은근히 일기예보의 오류를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저녁이 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그 비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강도는 미약했다.
5시에 기상, 주섬주섬 준비물을 챙겨서 청주로 달려가는데,
음성 쯤을 지날 때인가 약하던 비는 갑자기 폭우로 변하여 윈도우브러쉬의 기능조차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아~이렇게 라운딩이 무산되는구나,ㅜㅜ
그러나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과 식사도 하고 스크린이나 한 판 할 요량으로 목적지인 공사 체력단련장으로 달려갔다.
그 새 빗줄기는 조금 수그러들었고, 두 친구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골프장 측에서도 말하기를, 취소한 사람이 많아 준비되는대로 바로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정도 비쯤이야 괜찮겠다고 판단하고 좀 후에 나타난 현역 한 분과 첫 홀 티 박스로 향한다.
그런데 그때부터 다시 굵어지기 시작하는 빗줄기.
이러다가 그치겠지, 억지로 첫 홀을 끝내고 더 높은 고지의 두번째 홀로 이동할 쯤에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양동이로 물을 퍼붓듯
비의 기세가 절정에 달한다.
그래, 그래도 천둥 번개만 치지 않으면 괜찮지 않나. 계속하지 뭐.
페어웨이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린에서의 퍼팅은 도저히 경기를 지속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예 공이 구를 생각을 않는다.
세번째 홀을 마치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네번째 홀로 들어서는 순간,
거센 빗줄기와 함께 눈앞에 번쩍거리는 번개와 이어 바로 옆에서 울리는 고막을 찢는 듯한 천둥소리,
번~쩍, 우르릉쾅쾅, 계속되는 번개와 천둥소리,
페이웨이에 들어선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낮춘다.
마치 포화가 빗발치는 전쟁터에 서 있는 느낌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 부근 골프장에선 낙뇌로 사람이 죽은 경우가 두번이나 있었으며,
지난 주말에는 북한산 정자에서 비를 피하며 쉬던 등산객들이 낙뇌로 부상을 입어 병원에 실려갔다는 뉴스를 접했으니,
그 공포감이 어떠했을까.
내리막 페어웨이 중간에는 아예 크다란 물도랑이 형성되어 골프공이 아래로 떠내려가고, 폐어웨이 가장자리로 공을 보낸 친구 한 명은
공을 치기 위해 아이언 두 개를 들고 공을 찾아갔는데,
천둥벼락 소리에 캐디마저 사색이 되어 친구를 보고 골프채를 손에서 버려라고 고함고함 지른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모두 게임을 포기한 채 그늘집을 향해 걸음아 날 살려란 모양으로 뛰어들었다.
그늘집 안에는 이미 우리처럼 두 팀이 비를 피하고 있었다.
조금 후 골프장 측에서 금일 골프 전면 중단이 하달되었고, 우린 비 맞은 생쥐꼴을 한 채
해장국으로 추위와 공포를 달랜 후 클럽하우스로 내려왔다.
클럽하우스는 낙뇌로 인한 정전으로 모든 업무가 마비된 상태,
샤워장조차 가동이 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훗날을 기약하며 학교를 벗어나 시내 목욕탕으로 향했다.
사우나를 마치고 충주로 귀가하는 내내 비는 그치지 않았고,
설렘 많고 기대 많던 공사의 라운딩이 그렇게 끝이나고 있었다.
비에 젖은 클럽들을 꺼내어 물기를 닦고 방바닥에 늘어서 말리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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