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2022년) 가을의 첫 절기인 입추는 8월 7일(일)이다.
덥다 덥다 하는 사이에 벌써 가을이라니. 올해 더위의 끝도 얼마 남지 않았나 보다. 그건 그렇고 24절기에 관심을 가진 후로는 대략 15일만에 찾아오는 절기 따라 잡기에도 버겁게 느껴진다.
입추는 24절기 중 열세 번째 날로 대서(大暑)와 처서(處暑) 사이에 있는 절기이다. 북두칠성의 자루부분이 서남쪽을 가리키며, 태양은 황경135°에 이르는 때로서, 대개 양력 8월 7~8일 무렵이다. 입추는 가을의 첫 절기에 해당하며, 가을은 입추에서 시작해서 입동에 이르러 끝이 난다. 이처럼 '입추'라는 말은 '가을이 들어선다'라는 뜻으로, 봄을 알리는 '입춘(立春)', 여름을 알리는 '입하(立夏)', 겨울을 알리는 '입동'과 같이 계절이 바뀜을 알려주는 절기이다. 음양의 기운으로 말하자면 입추는 양기(陽氣)가 점차 줄어들고 음기(陰氣)가 차츰 늘어나는 시기로서, 양기의 극성기가 음기의 극성기로 바뀌는 전환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비, 기온 등이 감소되면서 자연계의 생물들도 무성하게 성장하던 시기에서 차츰 성숙의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管子》(관자)에 이르기를, “가을은 음기가 처음으로 내리는 때로, 그래서 만물은 (확산, 성장이 아니라) 거두어들이는 때이다.”(秋者陰氣始下, 故萬物收.)라고 했다. 음양의 기운이 바뀌면서 양기는 점차 쇠퇴해가고 음기는 차츰 생겨나니 이에 따라 만물도 점차 쇠락하게 되는 것이다.
날씨로만 본다면 입추라고 해서 결코 무더위가 끝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입추 이후 얼마 동안은 날씨가 여전히 매우 더운데, “秋後一伏熱死人”(입추 후의 하나의 복날이 사람을 더워 죽게 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입추 후에도 최소한 말복의 무더위가 남아 있다. 삼복(三伏) 날짜는 절기에 따른 시기와 간지에 따른 시기를 배합하여 결정되는데, 입추는 종종 중복과 말복 사이에 있게 된다. 그래서 혹서가 아직 끝나지 않은 때이며 실제로 시원한 날씨는 백로(白露)가 된 후에야 나타난다. 따라서 입추는 결코 무더위와 시원한 날씨의 분수령은 아니다.
기록에 의하면 立秋 기간의 날씨를 삼분하여 ‘立秋三候’(입추삼후)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즉 5일 단위로 3후(候)로 구분하여, “1후(처음 5일간)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2후(5-10일)에는 이슬이 생기고, 3후(10-15일)에는 쓰르라미가 운다.”(一候涼風至, 二候白露生, 三候寒蟬鳴.)(일후량풍지, 이후백로생, 삼후한선명.)라고 했다.
[입추 관련 풍속]
- 입추 날씨로 점 치기.
- 영제: 장마철과 같이 오랫동안 비가 내릴 때 성문에서 거행하였던 기청제.
- 영성제 : 입추 후 진일(辰日)에 영성(靈星)에게 한 해의 농사가 잘된 것을 감사하며 지내는 제사.
이 밖에도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丁學游)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중 '칠월령(음력이므로 대체로 양력 8월 무렵에 해당)'에 입추, 처서 절기에 대한 당시 농촌 풍습이 다음과 같이 전한다.
칠월이라 맹추 되니 입추 처서 절기로다
화성은 서류하고 미성은 중천이라
늦더위 있다 한들 절서야 속일소냐
비밑도 가비업고 바람끝도 다르도다
가지 위의 저 매아미 무엇으로 배를 불려
공중에 맑은 소리 다투어 자랑는고
칠석에 견우 직녀 이별루가 비가 되어
섞인 비 지나가고 오동잎 떨어질 제
아미 같은 초승달은 서천에 걸리거다
슬프다 농부들아 우리 일 거의로다
마음을 놓지 마소 아직도 멀고 멀다
골 거두어 김매기 벼포기에 피고르기
낫 벼러 두렁깎기 선산에 벌초하기
거름풀 많이 베어 더미 지어 모아 놓고
자채논에 새보기와 오조밭에 정의아비
밥가에 길도 닦고 복사도 쳐 올리소
살지고 연한 밭에 거름하고 익게 갈아
김장할 무우 배추 남먼저 심어 놓고
가시울 진작 막아 서실함이 없게 하소
부년들도 헴이 있어 앞일을 생각하소
베짱이 우는 소리 자네를 위함이라
저 소리 깨쳐 듣고 놀라쳐 다스리소
장마를 겪었으니 집안을 돌아보아
곡식도 거풍하고 의복도 포쇄하소
명주 오리 어서 몽져 생량 전 짜아 내소
장마를 겪었으니 집안을 돌아보아
곡식도 바람 쐬고 옷가지 말리시오
명주실 어서 뭉쳐 춥기 전에 짜아 내고
늙으신네 기쇠하매 환절 때를 조심하여
추량이 가까우니 의복을 유의하소
빨래하여 바래이고 풀 먹여 다듬을 제
월하의 방추 소리 소리마다 바쁜 마음
실가의 골몰함이 일변은 재미로다
가을이 가까우니 입는 옷 살피시오
빨래하여 바래고 풀 먹여 다듬을 때
달빛 다듬이 소리소리마다 바쁜 마음
부녀자 힘들지만 한편으론 재미있다.
소채 과실 흔할 적에 저축을 생각하여
박 호박 고지 켜고 외 가지 짜게 절여
겨울에 먹어 보소 귀물이 아니될가
면화밭 자로 살펴 올다래 피었는가
가꾸기도 하려니와 거두기에 달렸느니
박 호박 얇게 썰어 말리고 오이 가지 짜게 절여
겨울에 먹어 보소 귀한 반찬 또 있을까
면화밭 자주 살펴 일찍 익은 목화 피었는가
가꾸기도 하려니와 거두기도 달렸느니
중국에서도 우리와 비슷하게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농작물을 햇볕에 말리는 일을 했다. 이 시기에 나는 신맛의 과일과 야채를 많이 먹고, 위와 폐를 잘 보살펴 곧 서늘해지는 가을 날씨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고기나 생선을 먹어 여름 더위에 지친 몸의 원기를 북돋거나 수박을 먹어 더위를 식히곤 했다.
[입추 관련 속담]
우리나라 속담으로 ‘입추 때는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벼가 한창 자라는 시기라는 뜻이다. 그 밖에 중국 속담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立了秋,便把扇子丟。(입료추,변파선자주): 가을 되자 부채를 버리네.
立秋十八天,寸草皆結頂。(입추십팔천,촌초개결정): 입추 기간 18일 동안 작은 풀조차도 모두 씨를 맺는다)
立秋無雨一半收,處暑有雨也難留。(입추무우일반수,처서유우야난류): 입추에 비가 안 오면 수확이 절반이요, 처서에 비가 오면 풍성한 수확하기 어렵다.
立秋下雨人歡喜,處暑下雨萬人愁。(입추하우인환희,처서하우만인수): 입추에 비가 오면 사람들이 기뻐하고 처서에 비가 오면 수만 사람들 근심한다.
立秋摘花椒,白露打核桃。霜降摘柿子,立冬打軟棗。(입추적화초,백로타핵도。상강적시자,입동타연조): 입추에는 고추를 따고, 백로에는 호두를 털고, 상강에는 감을 따고, 입동에는 대추를 턴다.
《立秋前一日覽鏡》(입추전일일람경) 입추 하루 전에 거울을 보다
당(唐), 이익(李益)
萬事銷身外,(만사소신외) 만사 내 몸 밖에서 사라져버렸지만
●●○○●
生涯在鏡中.(생애재경중) 나의 지나온 삶은 오롯이 거울 속에 있네
○○●●◎
惟將兩鬢雪,(유장량빈설) 오직 눈처럼 하얀 두 귀밑머리만이
○○⊙●●
明日對秋風.(명일대추풍) 내일 가을바람을 마주하게 되리라
⊙●●○◎
[격률]
오언절구(五言絶句)
○平聲 ●仄聲 ⊙平仄모두 가능 ◎平聲韻 압운
[주석]
- 覽鏡(람경): 거울에 비춰보다.
- 銷(소): ‘消’(소)와 같다. 없어지다. 사라지다.
- 生涯(생애): 일생 동안 겪은 일, 특히 벼슬길의 험난함을 가리킨다.
- 兩鬢雪(량빈설): 눈처럼 하얗게 된 두 귀밑머리.
[감상]
중노년에 이르러 세월의 무상함을 절감하는 비애가 묻어나는 시다. 이제껏 겪었던 산전수전, 희노애락의 온갖 풍상들은 이제 다 지난 일, 하지만 거울을 보니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한 치의 오차 없이 내 얼굴에 남아 거울 속에 그대로 비춰 보인다. 이제 내일이면 또 가을로 들어서는 입추이다. 한 해는 또 이렇게 서서히 저물고 말 터이니 남은 내 생애를 생각하자 슬픔이 북바친다.
[작가]
李益(이익748-829): 당대(唐代) 시인. 자(字)는 군우(君虞). 농서(隴西) 고장(姑臧: 지금의 감숙 무위甘肅武威) 사람으로 집안은 정주(鄭州: 지금의 하남성河南省)에 살았다. 769년에 진사에 급제하였고, 783년에 사판발췌과(書判拔萃科)에 올랐다. 그러나 벼슬길에 실의하여 연조(燕趙: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일대) 지방을 떠돌아다녔다. 797년 유주절도사(幽州節度使) 유제(劉濟)의 막부에서 벼슬하였다. 800년 다시 양주(揚州) 등지를 여행하였으며, 이 때 강남의 풍광을 묘사한 훌륭한 작품들을 썼다. 820년 이후 다시 조정에 들어가 비서소감(秘書少監)、집현학사(集賢學士)、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 등의 직책을 맡았다. 827년 예부상서(禮部尚書)로 퇴직하였다. 그는 중당(中唐) 변새시(邊塞詩)의 대표 작가이다. 그의 변새시는 비록 웅장한 어휘들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감상에 치우쳐 있으며, 주로 변방 병사들이 오랜 군역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과 원망의 심정을 묘사하여, 성당(盛唐) 변새시의 호방하고 낙관적인 기상은 부족하다. 그는 절구(絕句), 특히 칠절(七絕)에 뛰어났다. 율시도 명작들이 적지 않다. 현재 《李益集》(이익집) 두 권 및 《李君虞詩集》(이군우시집) 두 권이 전해온다.
대서와 처서 사이/서윤덕
가장 무더운 여름 대서와
가을 신선한 바람 불어오는 처서
그 둘 한가운데에 자리한 그대는 입추
한쪽무릎엔 여름을
한쪽무릎엔 가을을 앉히고서
애써 가을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구나
일년세월이 기울어감을 일깨우며
미뤄둔 일들을
다시 챙겨보게 하는 그대는 입추
'더위가 가니 추위가 오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절기】백로(白露): 풀잎에 맺히는 이슬 깊어가는 가을 (1) | 2022.09.07 |
---|---|
[24절기] 처서(處暑): 여름이여 안녕, 가을철 두번째 절기 (0) | 2022.08.22 |
[24절기] 대서(大暑): 무더위의 절정, 여름의 마지막 절기 (0) | 2022.07.22 |
[24절기] 소서(小暑): 장마까지 겹친 본격적인 무더위의 시작 (0) | 2022.07.06 |
[24절기] 하지(夏至): 낮 시간이 가장 긴 날 본격적인 더위의 시작 (0) | 2022.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