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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가니 추위가 오네

[24절기] 입춘(立春): 24절기 중 첫번째 절기, 봄을 알리다

by 유경재 2023. 2. 3.

 

유난히 긴 겨울이다. 설 연휴를 지나고 다시 찾아온 한파이지만 이제 낮 기온은 영상이라 설 전의 추위와는 사뭇 다르다. 그러고 보니 춥다 춥다 하던 중에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어느새 내일(2.4)이 입춘이다. 이제 겨울의 시대는 바야흐로 종말을 고하는가 보다. 그래, 겨울아, 봄바람에 얼마나 버틸지 어디 한 번 버텨보아라.

그런데 날짜를 보니 겨울, 추위가 지나감을 마냥 좋아할 만 할 것도 아닌 것 같다. 1월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2월도 벌써 3일째다. 새해에 많은 계획을 세우고, 특히나 2월에 많은 일을 하리라 계획한 사람들은 2월이 짧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설 연휴에다 28일까지밖에 없으니 아마도 순식간에 지나가버릴 2월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짧은 달에 맞게 욕심을 버리고 적당한 계획을 세우는 게 기분좋게 3월을 맞을 수 있는 한 방법이 되리라.

입춘(立春)24절기 중의 첫 번째 절기로서, 한자로는 正月節(정월절), 歲節(세절), 改歲(개세), 歲旦(세단) 등으로도 불린다. 시작의 의미며, 은 따뜻함과 생장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이 시작되는[들어서는] 날이라는 뜻으로, 음력 1, 양력 24일경이며, 태양의 황경이 315°에 와 있을 때이다.

봄으로 접어드는 절후로 음력으로는 섣달에 들기도 하고 정월에 들기도 하며, 정월과 섣달에 거듭 들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재봉춘(再逢春)이라 한다. 정월은 새해에 첫번째 드는 달이고, 입춘은 대체로 정월에 첫번째로 드는 절기이다. 간지(干支)로 표현하면 인월(寅月)을 춘정(春正)으로 삼으며, 입춘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는데, 입춘은 곧 만물이 시작되며, 모든 게 다시 소생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전통적으로 입춘은 길상(吉祥)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래서 거듭 드는 입춘(雙立春쌍입춘)”의 해를 가장 좋은 해로 여긴다. 반면에 입춘이 없는 해도 있는데, 이는 음력의 길이가 한 해가 돌아오는 것보다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하기 때문인데, 2016년 원숭이해에는 입춘이 없었던 해, 무춘년(無春年)”이었다.

 

24절기는 상고시기 농경문화의 산물로서, 진한(秦汉) 이전에는 남북 각지의 풍속과 문화가 달라, 일부 지방에서는 연초가 음력 11일이 아니었으며, 바로 24절기상의 입춘이기도 했다. 입춘은 입하(立夏), 입추(立秋), 입동(立冬)과 마찬가지로 계절의 교체를 의미한다. 입춘은 바로 양기가 막 생겨나는 때로 만물은 이때 점차 소생하게 된다.

입춘부터 우수까지 15일간의 기후나 그에 따른 자연현상을 표현하는 말로 "立春三候"(입춘삼후)라는 말이 있는데, 입춘날부터 첫 5일간인 초후에는 “東風解凍”(동풍해동)이라 하여 동풍에 얼음이 녹기 시작하고, 그 다음 5일간인 중후에는 “蟄蟲始振”(칩충시진)이라 하여 잠자던 벌레들이 활동을 시작하며, 우수 전인 마지막 5일 동안인 말후에는 “魚陟負冰”(어척부빙)이라 하여 물고기가 올라와 얼음을 등에 진다고 했다. 말후의 풍경인 이 말은 녹은 얼음이 수면에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마치 물고기가 얼음을 등에 지고 헤엄치는 것 같다는 말이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로서, 이날 여러가지 민속적인 행사가 행해진다. 그중 하나가 입춘첩(立春帖)을 써 붙이는 일이다. 이것을 춘축(春祝) · 입춘축(立春祝)이라고도 하며, 각 가정에서 대문 기둥이나 대들보 · 천장 등에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붙이는 것을 말한다. 입춘날의 아침에는 대문이나 기둥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등의 입춘첩(立春帖)을 붙였다. "입춘대길""입춘을 맞아 큰 복이 있을 것이다"라는 뜻이고, "건양다경""양의 기운이 일어나서 경사스러운 일이 많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입춘첩은 궁중에서 설날에 문신들이 지어 올린 새해를 축하하는 시문 가운데 뛰어난 것을 뽑아 대궐의 기둥에 붙였던 데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입춘첩의 내용은 집안마다 다른 내용이 전해지기도 했고, 새로 지어 써붙이기도 했다. 입춘날 입춘시에 입춘축을 붙이면 "굿 한 번 하는 것보다 낫다"라고 하며, 전라북도에서는 입춘축 붙이면 "봉사들이 독경하는 것보다 낫다"라고 하여 입춘에는 꼭 하는 세시풍속이었다.

입춘축에 주로 쓰이는 글귀는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과 함께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의 수여산(壽如山) 부여해(富如海)”,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온갖 복이 들어오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의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개문백복래(開門百福來)” 같은 것들도 있다. 또한 한지를 마름모꼴로 세워 '()'자와 '()'자를 크게 써서 대문에 붙이기도 한다. 한편, 옛날 대궐에서는 설날에 내전 기둥과 난간에다 문신들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중에서 좋은 것을 뽑아 써 붙였는데, 이것을 춘첩자(春帖子)라고 불렀다.

제주도에서는 입춘일에 큰굿을 하는데, ‘입춘굿이라고 한다. 입춘굿은 무당조직의 우두머리였던 수심방(首神房: 큰무당)이 맡아서 하며, 많은 사람들이 굿을 구경하였다. 이때에 농악대를 앞세우고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걸립(乞粒)을 하고, 상주(上主) · 옥황상제 · 토신 · 오방신(五方神)을 제사하는 의식이 있었다.

입춘 세시풍속 가운데는 또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이 있다. ‘적선공덕행이란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을 꼭 해야 한 해 동안 액()을 면한다고 믿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밤중에 몰래 냇물에 징검다리를 놓거나, 거친 길을 곱게 다듬거나, 다리 밑 거지 움막 앞에 밥 한 솥 지어 갖다 놓는 것들을 말한다. 그것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몰래 해야만 한다. 사람이 죽어서 상여 나갈 때 부르는 상엿소리에 "입춘날 절기 좋은 철에 헐벗은 이 옷을 주어 구난공덕(救難功德) 하였는가?"라고 묻는데, 적선공덕행을 하지 않으면 그해의 액은 고사하고 염라대왕에게 심판을 받는다고까지 생각했던 것입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24절기의 첫 번째 날 입춘은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담겨 있는 날이기도 하다.

입춘일은 농사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첫번째 절기이기 때문에 보리 뿌리를 뽑아보고 농사의 흉풍을 가려보는 농사점을 행한다. 또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서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된다고 여기기도 했다.

[입춘 관련 우리나라 속담]

1, 입춘 추위에 김칫독 얼어 터진다[2월에 물독 터진다]: 비로소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이지만 그 무렵의 추위가 매서워 장독(오줌독)이 얼어서 깨질 만큼 추위가 강하다는 뜻이다.

2, 입춘을 거꾸로 붙였나: 입춘(立春)이 지났는데도 날씨가 몹시 추워진다는 속담. 절기상으로는 봄이지만 날씨가 춥다는 것을 의미한다.

3,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 입춘이지만 날씨가 춥다는 의미로 반드시 입춘 무렵에는 추위가 찾아온다는 뜻이다.

4, 가게 기둥에 입춘이랴: 추하고 보잘것없는 가게집 기둥에 입춘대길(立春大吉)을 써 붙인다는 뜻으로 제격에 맞지 아니하고 지나치다는 뜻의 속담이다.

5, 입춘 날 입춘 시에 입춘 축()을 붙이면 굿 한 번 하는 것보다 낫다.

 

[입춘 관련 중국 속담]

立春一年端, 種地早盤算.(입춘일년단, 종지조반산): 입춘은 한 해의 시작, 일찌감치 농사 계획 세울 때.

一日之計在于晨, 一年之計在于春, 一生之計在于勤.(일일지계재우신, 일년지계재우춘, 일생지계재우근): 하루 계획은 새벽에 세우고, 한 해 계획은 봄에 세우고, 한평생 계획은 부지런함을 기본으로 세워야 한다.

立春雨水到, 早起晚睡覺.(입춘우수도, 족만수각): 입춘 우수가 되면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든다.(밤이 길던 겨울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고 늦게 일어나던 습관에서 봄이 되면 벗어남)

人勤地不懶, 秋後糧倉滿.(인근지불라, 추후량창만): 사람이 부지런하면 땅도 게으르지 않아, 가을 뒤에 곡식 창고가 가득 찬다.(봄에 부지런히 농사를 시작하면 가을 수확도 많다)

[입춘 관련 시]

京中正月七日立春(경중정월칠일입춘) 장안에서 정월 7일 입춘날에

, 羅隱(라은833-910)

 

一二三四五六七(일이삼사오륙칠), 새해를 맞은 지도 벌써 칠일째

萬木生芽是今日(만목생아시금일). 모든 나무들 움이 트는 오늘

遠天歸雁拂雲飛(원천귀안불운비), 먼 하늘엔 기러기 구름을 치며 북으로 날아가고

近水游魚迸冰出(근수유어병빙출). 가까이 물에는 헤엄치는 물고기 얼음 밖으로 나오네

 

첫구[起句]가 묘한 시다. 칠언절구이며, 입성(入聲)’()운으로 압운했다. 전체적 내용은 입춘 절기의 자연현상을 노래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구는 "立春三候"(입춘삼후) 중의 말후인 魚陟負冰”(어척부빙)의 현상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겨울에는 수면이 얼어있지만 얼음 아래 물속은 비교적 따뜻하여 물고기들이 그곳에서 조용히 겨울을 나는데, 봄이 되어 수면의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고기들도 즉시에 그 변화를 느끼고 다투듯 수면 가까이로 올라온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녹지 않은 얼음이 있기 때문에 얼음 조각 사이로 헤엄치게 되는데, 시의 마지막 구는 바로 이것을 묘사한 것이다.

작가 羅隱(라은833910)은 원명이 羅橫(라횡), 昭谏(소간)이며, 杭州(항주)(지금의 浙江省 杭州市) 사람으로, 당대 문학가이다. 大中(대중) 13(859) , 장안에 와서 10여 차례 과거에 응시했으나 모두 낙방하고 고향에 돌아왔다. 사서에는 十上不第”(열 번 응시했으나 급제하지 못함)라고 했다. 羅隱(라은)이라 개명하고 九華山(구화산)에 은거했다. 光啓(광계) 3(887)吳越王(오월왕) 錢镠(전류)에게 귀의하여, 錢塘令(전당령)司勳郎中(사훈랑중)給事中(급사중) 등의 벼슬을 역임했으며, 사람들은 羅給事(라급사)라고 불렀다. 저서로는 讒書(참서)兩同書(양동서) 등이 있고, 시집으로는 甲乙集이 있는데, 현실 풍자의 작품이 많으며, 구어를 많이 썼으며, 민간에 널리 유행했다.

 

입춘 / 유승희

 

봄 앞에서 선 날

좋은 날만 있어라

행복한 날만 있어라

건강한 날만 있어라

딱히,

꼭은 아니더라도

많이는 아니더라도

크게

욕심부리지 않을지니

 

새 봄에

우리 모두에게

그런 날들로 시작되는

날들이었으면 싶어라

 

매서운 추위 걷히고

밝은 햇살 가득 드리운

따스함으로

 

뾰족이 얼굴 내미는

새순처럼

삶의 희망이 꿈틀거리는

그런 날들이었으면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