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坡(소식의 호) 소식(蘇軾)이 왕안석(王安石) 등의 신법파에 의해 한 때 호북성 黃州로 좌천된 적이 있었는데, 한가롭게 글을 쓰거나 술을 마시면서 지냈다. 그는 드문 미식가이면서 직접 요리를 하기도 하였다. 어느 날 소동파가 후원에서 술을 마시는데 안주할 만한 게 없었다. 그래서 심부름하는 아이 小文을 불러 물었다. “전에 내가 돼지고기 사오라고 하지 않았니? 그런데 나는 요며칠 고기냄새를 못 맡았잖아.” 소문이 대답했다. “나리님께 여쭙니다. 저는 이미 하녀 王 아줌마에게 사오라고 했습니다. 잠시 기다리시면 사왔는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소문은 후원에서 나와 앞 마당으로 가서 왕 아줌마를 찾아 고기를 사왔는지 물었다. 이에 왕 아줌마는 벌써 사 와서 주방에 두었다고 하면서, 마침 집에 일이 있어 가봐야 된다고 대신 여쭈어 달라고 부탁했다. 소문이 후원에 돌아와 이런 사실을 보고하니, 소동파가 직접 주방에 가서 요리하겠다고 했다.
소동파가 주방에 들어가서 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솥 안에 넣고 양념을 한 뒤 불을 지펴 고기를 삶기 시작했다. 이 때 소문이 들어와 보고하기를 “마님, 蔡 秀才께서 오셔서 바둑 두자고 마님을 찾습니다.”라고 했다. 채 수재의 집은 소동파의 집과 멀지 않은데, 평소 거문고나 바둑, 서화 등에 조예가 있어서 소동파와 의기투합하여 잘 어울려 지냈다. 두 사람은 바둑에 있어서는 서로 막상막하로 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어떤 때는 얼굴이 뻘게질 정도로 언쟁하다가도 며칠 지나면 다시 만나 바둑을 두었다. 이에 소동파는 솥에 고기를 넣어 삶는 중에 솥뚜껑을 닫고 후원으로 갔다.
소동파는 바둑판을 펴면서 채 수재에게 내기를 제안했다. 내기 내용은 채 수재에게 맡기니, 그는 소동파가 지면 시를 한 수 짓고, 자기가 지면 시 짓는 재주가 없으니 대신 소동파가 지은 시를 외우기로 하였다. 첫 판은 소동파가 졌다. 벌칙으로 소동파는 다음과 같은 시를 한 수 지었다. “물빛은 반짝반짝 맑을 때도 좋고, 산색은 안개에 자욱 비 올 때도 신기하네. 서호 모습이 월나라 미인 서시 같으니, 옅은 화장이든 짙은 분칠이든 모두가 똑 같네.”(水光滟潋晴方好, 山色空朦雨亦奇. 欲把西湖比西子, 淡妆浓抹总相宜.)
두 번째 판은 채 수재가 졌다. 그래서 그는 소동파의 시 〈題西林壁〉을 외웠다. “가로로 보면 고개요 세로로 보면 봉우리, 원근고저에 따라 모습이 제각각.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는 까닭은, 단지 이 몸이 산 속에 있기 때문이지.”(橫看成嶺側成峰, 遠近高低各不同. 不識廬山眞面目, 只綠身在此山中)
소동파는 신이 나서 결승전으로 한 판 더 두자고 하면서 솥에 넣어 삶던 고기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세 번째 판 역시 채 수재가 졌는데, 소동파가 지은 시를 외우는 것이 없다고 하면서 대신에 그의 〈赤壁賦〉를 외웠다. 채 수재가 외우기를 끝낸 후 갑자기 말했다. “무슨 요리를 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는군요.” 그제사 소동파는 솥 안에 삶던 고기를 떠올리며 바둑판을 거두고 주방으로 달려갔다. 소동파가 주방에 들어갔을 때는 아궁이의 불은 이미 꺼진 상태였으며, 황급히 솥뚜껑을 열어보니 솥안의 고기들이 국물이 졸아든 채 붉은 빛을 띤 채 향기가 코를 찔렀다. 소동파는 한 점을 뜯어 먹어보니 매우 맛이 좋았다. 이 때 채 수재도 따라 주방에 들어와 고기를 맛보고 난 후 “맛있다”를 연발하였다. 소동파는 웃으면서 채 수재 때문에 오히려 이런 맛있는 고기를 먹게 되었다고 했다.
채 수재가 떠난 뒤 소동파는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이 음식의 요리법을 기록해두기로 했다. 그리하여 순서대로 하나하나 기록하여 마침내 “고기 고는 13비법”(炖肉十三訣)을 완성하였다.
후에 소동파는 다시 杭州刺史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항주의 西湖의 가운데 긴 제방을 쌓아서 백성들이 다니기 쉽도록 했다. 백성들은 그 제방을 “蘇堤”라고 불렀다. 그 해 설날, 백성들은 자사 소동파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그가 좋아한다는 돼지고기를 드렸다. 백성들이 가져온 돼지고기가 소동파의 마당에 가득하였는데, 소문이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자, 소동파는 그에게 가져온 백성들에게 다시 돌려주라고 했다. 그러나 가져온 백성들은 이미 떠난 뒤였고, 누가 가져왔는지 이름도 적어두지 않았기 때문에 돌려줄 방법이 없었다.
이에 소동파는 생각 끝에 소문에게 10여 명의 요리사를 불러들이도록 하여, 그들에게 옛날 황주에서 개발했던 “돈육13결”에 따라 요리를 하게 하였다. 요리를 다 만든 후 관청의 이방들에게 그 요리를 큰 광주리에 담아 백성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나눠주도록 하였다. 항주의 백성들은 맛있는 그 요리를 먹은 후 요리 이름을 “동파육”이라고 하였으며, 요리는 순식간에 민간으로 퍼져나가, 훗날 중국의 유명 요리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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