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하자마자 동시에
광풍처럼 휘몰아친 나를 중심으로 한 집안의 우환 때문에
그야말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었는데,
"회오리바람도 아침 내내 불 수 없고, 폭우도 하루 종일 내리지 않는다"라는 노자의 <도덕경>(제23장)의 말이 사실인 듯,
올해 들어서는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하여 한시름을 놓게 되었다.
마치 겨울이 가니 봄이 오는 자연의 순리처럼...
흔히 인간을 자연과 대립된 개념으로 보는데, 자연을 우주 만물이라고 본다면
인간도 그 속의 극히 일부분일 수밖에 없다.
그런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자연의 순리를 어길 수는 없는 법,
그래서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고 했던 것이리라.
이처럼,
자연의 섭리에 순응해서 살아가면 편한 삶이 될 것이다.
이제 봄이 완연하다.
예년에 비해 일찍 개화된 각종 봄꽃들은 요며칠 잦은 비바람에 화려한 자태와 향기를 오래 뽐내지도 못하고 땅으로 떨어졌건만,
시야에 가까운 산에는 마치
가난한 시절, 어린 아이들 머리에 희끗희끗 번진 백선 버짐처럼
산꽃들이 여기저기 허연 색을 칠하고 있다.
지난 1년 반 동안 많이 소홀했던 유경재는
봄이 시작되면서부터 부지런히 찾았다.
도연명이 <귀거래사>에서 "농부가 나에게 봄이 왔음을 알리니, 이제 서쪽 밭이랑에 할 일이 생겼네."라고 노래했듯,
나 역시 올해엔 부지런히 유경재 텃밭을 가꾸어, 그간의 유경재에 대한 소홀했음을 보상해 주리라 작정했었다.
우선 겨울이 끝나갈 무렵, 바람 잔잔한 날을 골라 텃밭을 가득 덮고 있던 마른 풀들을 태웠고,
그리고 3월 하순에는 밭이랑을 만들었다.
우선 지난 몇 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밭이랑 만들 때 적합한 도구가 있어야 할 것 같아,
농협의 농자재 판매하는 곳에 가서 쇠스랑 같은 것과 넓은 보습이 있는 괭이 형태의 삽 하나를 사서 유경재로 향했다.
이제 밭에는 초록생명들이 조금씩 번져나가고 있다.
농기구를 총동원한다.
그리고 밭이랑을 일구어 나간다.
이랑 사이를 가능한 넓게...
짝짓기 끝난 두꺼비 한 마리가 어슬렁 거리며 내게 다가온다.
겁도 없이 나의 장화 위를 기어오른다.
오랫만에 하는 일이라 힘이 든다.
두어 고랑 하고는 쉬고... 그렇게 하여 이랑 만들기가 거의 끝이 난다.
올해는 마당쪽으로 좀 더 이랑을 내었다.
여기는 해마다 토끼풀 때문에 애를 먹었던 곳이기에, 토끼풀 세력을 조금이라도 꺾어놓기 위해서
이랑 영역을 확장했다.
연못은 작은 강산이다.
이제 이랑 만들기를 끝냈다. 어휴~~ 힘들다.
팔다리, 허리까지 아프다.
지난 번에 짝짓기 하던 그 많던 두꺼비들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부화를 기다리는 두꺼비알들만 마치 검은 털실 타래를 풀어놓은 듯 남아있다.
또 얼마나 많은 올챙이들이 부화될까.
그리고 그 중에 또 얼마나 많은 올챙이들이 불고기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큰두꺼비로 자랄 수 있을까?
이제 농협에서 사온 퇴비[포당 가격이 4천원에 육박한다]를 이랑 위로 뿌리고.
쇠스랑 같은 농기구로 이랑에 다시 흙을 덮는다.
그리고 다시 농협에서 사온 비닐로 이랑을 덮어나간다.
아~ 힘들다.
좀 쉬었다 하자.
뒤꼍의 산수유나무는 노랗고 여린 꽃을 한창 피우고 있다.
다시 밭으로 돌아와 비닐 씌우기 작업을 계속, 드디어 끝이다.♬
다 끝내고 나니 제법 그럴 듯 하다.
이제 귀농해도 되겠다는 ㅋㅋ
여기에다 올해는 무얼 심을까???
이제 날씨가 따뜻해지길 기다렸다가,
시장에 모종이 나오면 다양하게 조금씩 심어나가야지.
집 주변, 현관 앞 화단에는 쑥이 제법 파랗다.
그리고 몇 주 후,
모종을 사서 심기 위해
4월 11일(토)인가에 세아와 함께 부녀가 오붓하게 시장 구경을 갔다.
그런데 아직은 철이 아닌 모양이다.
파는 곳이 조금 있긴 있어도 아직은 날씨가 차서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도 시장에 간 김에 씨앗 두 종류를 사서 유경재로 갔다.
내가 좋아하는 겨자, 세아가 좋아하는 양상추를 가장 안쪽 이랑에 심기로 했다.
나무 막대기를 주워서 그걸로 한 사람을 구멍을 뚫고 한 사람은 그 구멍에다 씨앗을 열 개 정도씩 넣는다.
파종인 셈이다.
그런데 두 씨앗 모두 크기가 너무 작고 가볍기 그지없다.
봉투에는 발아율 70%라고 되어 있다.
이제 비도 내리고, 기온이 올라가면 저 여리고 작은 씨앗도 신비로운 생명의 싹을 틔우겠지.
전에 비해 확연히 많아진 화단에 자리잡은 쑥.
여기에도 초록색이 한결 짙어져 있다.
어디서 날아온 씨앗인지 달래가 텃밭 가장자리에 생명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정말이지 오래 전에 경주 시골집에서 가져온 부추씨가 5년은 족히 잘 먹었었는데,
그대로 방치한 1년 후에도 잡초 속에서 이렇게 죽지 않고 다시 자라나고 있다.
고맙고, 그 생명력에 놀람을 금치 못한다.
잔디밭 가장자리 쪽에 밭이랑을 만드는 바람에 빼앗긴 터전에 대한 복수인가?
아예 잔디밭 중앙으로 자리를 크게 잡고 있는 토끼풀.
정말이지 감당 못할 풀이다.
강인한 생명력의 잔디밭을 침범하여 저렇게 왕성하게 제 영역을 넓혀가는 토끼풀,
혹시 약재로 쓰면 사람에게 좋지 않을까?ㅠㅠ
영양을 따로 공급받지 못해 몇 해 째 심을 때 그 키 그대로인 앵두나무,
그 가녀린 가지에 마치 팝콘 터지 듯 조롱조롱 곱고 예쁜 꽃이 달려있다.
이 나무는 더 약하다.
그래서 꽃 피울 힘도 더 약한 듯.
작년에 처음으로 열매를 맺었던 매화나무도 예쁜 꽃을 피우며 자태를 뽐내고 있다.
향기가 무척이도 그윽하다.
이랑을 덮고 있는 비닐의 검은색으로 인해 하얀 매화가 더욱 부각된다.
자두나무도 초록움을 부풀리면서 개화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바닥에도 민들레니 각종 이름 모를 풀들이 한창 약동하는 생명을 구가하고 있다.
이게 무얼까요.
마치 공처럼 둥근 꽃을 피우고 있는 바위 아래 저 풀이?
정답은 취나물을 닮은 머위[머우].
토끼풀이 잔디밭을 다 점령해 있는 듯.ㅠㅠ
그렇게 뿌린 씨앗은 계속 낮은 기온 때문인지 열흘이 다 되어가는데도 싹이 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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