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표적 난세기, 동란기인 위진남북 조시대, 남조인 동진에서 송에 걸쳐 살았던 중국의 대표적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
그는 29세부터 벼슬길에 나가 출사와 귀은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41세 때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명문장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으며 시골 집으로 돌아와 이후 죽을 때까지 농사를 지으며 소박한 삶을 살아갔었다.
<귀거래사>의 첫 구절이 바로 본 포스트의 제목인 "전원장무호불귀"다
시골집이 우거져가고 있으니 어찌 돌아가지 않으랴?
그렇게 애지중지 가꾸던 유경재가 1년 세월 방치해놓았으니, 그꼴이 어떻겠는가?
비록 5월 달에 잠시 귀국했을 때 조금 손을 보긴 했으나 그 새 가족들에게 들은 얘기로는 텃밭에 잡초가
사람 키만큼 자라 마치 폐가를 방불케 할 정도라고 했으니
나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귀국하는 날은 비행기가 연착하는 바람에 거의 새벽에서야 집에 왔었기에, 내가 없는 사이
집 주변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창 밖 내다본다.
여전하다.
다만 옛 케이티 자리에 새로이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고 있다는 게 큰 변화다.
아침식사 후 대강 준비를 해서 서둘러 달려온 유경재.
창 밖을 보니 잔디밭 부분만 조금 말끔한 듯 하고 나머지는 개망초 등 온갖 풀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현관 앞, 그리고 그 좌우의 화단도 그야말로 우거져있다.
낫과 톱, 호미, 예초기 등을 준비해 천천히 손을 보기 시작한다.
한창 키를 높이고 있는 화단의 가죽나무도 미련없이 중간에 싹뚝 잘라내고.
여기는 아예 진입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다.
유경재가 그동안 많이 외롭고 괴로웠으리라.
주인에게 버림받은 것처럼.
예초기를 가동한다.
워낙 풀이 무성하다 보니 예초기 날조차 돌아가는 게 힘에 겹다.
달맞이꽃, 남겨둘까 말까?
너무 범위가 넓고 풀의 세력이 크다보니 처음엔 엄두가 나질 않더니
만만디 정신으로 조금씩 베어들어가니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긴다.
심은 지 꽤나 되는데 그 사이 열매를 맺지 않아
불임대추나무라고 놀렸던 두 그루 대추나무도 올해는 오지게도 열렸다.
오후에는 비가 내렸다.
그래서 반쯤 하다말고 연장을 챙겨넣은 후 방으로 들어와 1년여 만의 유경재 삼겹살파티를 가졌다.
밤 막걸리도 한 병 마시고.
다만 작년과 달라진 것은 쌈채가 모두 슈퍼에서 사온 것이라는 점.
다음날이다.
날씨가 청명하다.
다시 제초작업을 계속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끝이 보인다.
벤 풀은 그 자리에 둔다.
그 자리에서 거름이 되라고.
그리고 하는 김에 잔디밭도 시원하고 말끔하게 이발을 해 준다.
수돗간의 풀들도 손을 보고.
이제 어제와는 완전 다른 유경재로 변신했다.
유경재의 기분 좋아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애프터 제초작업의 모습.
좋아하는 국수도 한 번 먹어보고.
지난 1년, 파란 하늘이 그렇게도 그립고 반가왔었는데...
다시 찾은 유경재, 이제 만만디 정신으로 조급하지 않게 조금씩조금씩 다시 가꿔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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