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상하이폭스트로트★

[상해 일기] 단수와 목욕탕(대통령의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 대국민 담화)

by 유경재 2014. 5. 19.

어제 자기 전에 아침잠이라도 푹 자기 위해 알람을 꺼두었었다. 그런데도 밤새 잠자리 전체가 썩 편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비몽사몽 이리뒤척저리뒤척 눈을 뜨니 과연 8시가 넘었다. 일어나 어제 먹다 남은 김밥을 아침으로 먹고 양치질을 하려는데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다. ~? , 며칠 전부터 아파트 현관 출입문에 붙어있던 공지문이 생각난다. 19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물탱크소독으로 인해 단수가 된다는 공지, 그런데 나는 그게 화요일인 내일인 줄 알고 있었는데, 오늘이 벌써 19일이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니 이렇게 날짜 감각마저도 둔해져버렸다. 어쨌거나 학교에 가려면 이틀 동안 세수도 않은 엉망인 몰골로는 어려울 것 같고, 그렇다고 종일 물 안나오는 집에만 있을 수도 없어 궁리 끝에 학교 갈 준비를 해서 아파트 앞의 목욕탕에 가서 씻고 학교로 바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찾은 목욕탕도 현관 유리문에 큼직하게 낮 12시부터 새벽 2시까지 영업한다고 되어 있다. 어쩌나, 잠시 망설이다가 일단 들어가 보니 문이 열린다. 이층으로 올라가니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마침 내려오고 있기에 물어보니 본래는 아직 문 열 시간은 아니지만 일단 왔으니 목욕하라고 한다. 그리고는 따라 들어와서 옷장도 안내해주고, 탕에도 불을 켜 준다. 오늘 첫손님인 셈이다. 장사가 어떠냐고 하니 잘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부근 상가들이 모두 입주하면 나아질 거라고 위로해주고, 목욕하는 김에 오랜만에 때까지 밀었다. 나올 때 계산하려고 보니 합해서 40원이다. 많이 세일하는 모양이다. 원래 가격표에는 목욕 29, 때밀기 29원이라고 되어 있는 걸로 보아서. 어쨌거나 여관업을 겸업하는 이 목욕탕이 장사가 잘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집에 수돗물이 안 나오는 위기를 때까지 미는 기회로 변환시킨 날이다.

 

도서관에 와서 자리를 잡고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에 접속하니 중국뉴스에 한국의 박대통령이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고, 해경을 해체한다는 제목이 보였다. 그래서 한국 사이트로 들어가 자세히 보니 이번 사고로 인한 최종책임자로서의 사과와 함께,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에 초동대처 및 이후 구조작업에 많은 허점과 문제점을 보인 해경을 해체하고, 새로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며, 공무원의 비리를 막기 위해 김영란법 등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한다. 끝없는 추락감 속에 그나마 이 정도의 사후대책 의지가 어느 정도 위로가 되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정말 아쉬운 점은 사회전반이 불안전한 근본적인 원인인 황금만능의 물질주의,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무한경쟁, 재화생산만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 있는 우리사회의 구조에 대한 성찰과 언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기회에 종교인, 학자, 각계 원로와 지성들이 대통령 귀에까지 들어갈 정도로 강력하게 우리 사회의 기초부터 새로 다질 수 있는 충언, 고언을 쏟아내었으면 좋겠다. 지금이 바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민족적 슬기를 발휘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