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기사는 <주간조선> 5월 16일자 커버스토리 내용입니다. 평소 나 역시 생각해오고 있었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체계적으로 잘 정리한 기사인 것 같아 공유하기 위해 이렇게 허락없이 전재한 것입니다.
지금의 교육부의 교육정책, 특히 고등교육 정책은 철저히 지원자금을 미끼로 대학을 좌지우지, 제멋대로 짓주무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대학은 학생들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교육부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맛을 들인 교육부는 망동의 한계를 모르고 내달리고 있습니다. 당초 이 정부가 대학정책은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려고 했으나 갖은 인맥을 동원한 로비를 통해 대학을 자기들 관리 산하에 넣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던 것입니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은 빨리 이 사실을 직시하고 교육종사자인 학교 편에 서서 교육정책을 펼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퇴직하면 더 상종가 부실대학 방패 역할 감사하던 대학 교수·총장으로
안석배 조선일보 사회정책부 차장
올해 초 대학 감사를 담당하던 교육부의 한 공무원이 퇴직한 바로 다음 날 전문대학 교수로 취직한 일이 화제가 됐다. 교육부 사학감사담당관실에 근무하던 K 사무관은 지난 2월 28일 서기관으로 특별승진하면서 명예퇴직했다. 그리고 퇴직 다음 날인 3월 1일 그는 경기도의 한 전문대 교수로 임용됐다. K씨는 교육부 근무 당시 사학감사담당관실 이외에도 전문대정책과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누가 보더라도 본인의 업무와 관련이 매우 많은 대학에 교수로 취업한 것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감사 부서 사무관이 피감사기관 대학교수로 임용된 것은 전형적인 전관예우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최근 전관예우를 없앤다는 취지로 최근 ‘2급 이상 공무원은 퇴직 후 2년간 사립대 총장으로 재취업할 수 없다’는 내용의 ‘교육부 공무원 행동강령’을 개정했다. 하지만 모든 교육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았다. 또 공무원윤리법에는 ‘감사부서 7급 이상 공직자는 퇴직 전 5년간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기업 등에 취업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대학은 사기업이 아니라서 이 규정으로 제한할 수도 없다는 것이 교육부 설명이다. 하지만 대학 관계자들은 “속이 뻔히 보이는데도 제지하지 못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교육부 직원의 대학 취업은 업무 관련성이 크므로 폭넓게 해석해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K씨의 사례는 교육부 공무원들이 일선 교육기관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퇴직 후 어떻게 전관예우를 받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K씨의 전문대 취업 사례는 세월호가 침몰한 날인 지난 4월 16일 처음 공개돼 크게 이슈화되지는 않았다.
통계를 보면 교육관료들, 특히 고위 관료의 경우 퇴직 후 대학에 얼마나 많이 취업하는지를 알 수 있다.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퇴직한 4급 이상 교육부 공무원은 총 39명(4월 10일 기준)이며 이 중 28명(71.7%)이 대학에 교수 등으로 취업했다. 28명의 교수 중에는 6명의 사립대 총장이 포함돼 있다. 대학에 근무하지 않은 퇴직 관료들도 전문대 법인협의회, 사학연금공단 등 교육 유관기관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교육부 관료들이 퇴직 후 옮기는 대학이 소위 ‘부실(不實)대학’ ‘비리(非理)대학’이 많다는 것이다. 부실대학 입장에서는 정부 감사 등에 대한 방패막이로 전 교육부 관료를 이용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실제로 교육부 차관 출신이 총장으로 지방의 A전문대와 또 다른 교육부 차관 출신이 총장으로 있는 B대학은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지정된 적이 있다.
대학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일부 교육부 관료는 퇴직 후가 더 상종가다. 김영삼 정부 이후 교육부 차관 13명 중 11명이 대학(전문대 포함) 총장을 역임했거나 현재 총장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교육부 차관 출신인 인천재능대 이기우 총장의 경우 현 정부에서 전문대총장협의회장도 겸임하고 있다. 전문대총장협의회는 정부로부터 전문대 입시를 위임받아 총괄하는 역할을 한다.
수도권의 한 대학 총장은 “교육부 관료들이 퇴직 후 낙하산처럼 대학에 들어가니 대학 개혁이 제대로 될 리가 있냐”며 “정부가 추진하는 대학 구조조정도 퇴직 교육부 공무원 때문에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박근혜 정부의 교육정책 이슈 중 하나가 대학 구조조정이다. 학령(學齡)인구가 급격히 줄기 때문에 부실한 대학은 시장에서 퇴출시키고 대학 정원을 적정한 수준으로 줄이는 게 시급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23년까지 대학 입학정원 16만명을 줄이는 대학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다. 전국의 대학(전문대 포함)을 평가한 후 5단계 등급(최우수-우수-보통-미흡-매우미흡)으로 나누고 단계별로 학교 정원을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우수 등급은 정원감축을 대학 자율에 맡기고, 우수 등급은 일부 감축, 보통은 평균 수준 감축, 미흡과 매우미흡은 평균 이상으로 대폭 감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부실대학의 정원은 많이 줄이고 퇴출시키겠다는 게 정부의 초기 구조조정 방안이었다.
하지만 교육부는 최근 이 방안은 법이 통과되지 않아 당장 추진할 수 없다고 하면서 모든 대학의 정원을 줄이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예컨대 교육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특성화 사업’ 대학을 선정하면서 평가요소로 ‘정원 감축 계획’을 넣은 것이다. 학생을 많이 줄이겠다고 교육부에 신고하면 정부 지원의 특성화 사업에 선정되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특성화 사업 등 정부지원 사업을 신청하는 대학은 비교적 견실한 대학들이 많다. 반면 부실대학은 정부지원 사업에 신청하지 않는다. 이러니 지금 대학가에서는 “멀쩡한 대학은 정원을 줄이고, 부실대학은 정원을 그대로 유지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게 말이 되는 정책이냐”는 불만이 쏟아진다. 일각에서는 “이런 정책이 나온 것은 교육부 관료들이 퇴직 후 부실대학에 많이 가 있고, 전·현직 교육부 관료가 서로 이해가 맞아 정책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교육부 관료의 대학 낙하산 논란에서는 서남수 현 교육부 장관도 자유롭지 않다. 교육부 차관 출신인 그는 위덕대 총장으로 근무했다. 위덕대는 2012년 정부의 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지정됐었다. 그러던 중 2013년 교육부 장관에 임명됐다. 서 장관 취임으로 공석이 된 위덕대의 후임 총장 자리는 서 장관의 고시 동기이며 교육부 차관보 출신인 김정기씨가 맡고 있다.
그렇다면 퇴직 관료를 방패막이로 쓸 정도로 대학들이 교육부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학교들에 대한 정부의 ‘행·재정적 제재’ 때문이다. 이는 교육부가 규제를 할 때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사용한다. 예컨대 새 입시제도를 강요하고 대학 구조조정안을 발표할 때마다 교육부는 “행·재정적 제재와 연계하겠다”고 밝힌다. ‘행·재정적 제재’의 의미는 “교육부 말대로 안 하면 학교에 지원되는 예산이 줄고, 정부 인허가 사업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라는 것이다. 한 대학 보직교수는 “정부 정책에 불만이 많지만, 교육부에 찍히면 예산도 못 받고 입학정원도 줄여야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 그러니 교육 관료 앞에서는 불만을 제대로 표시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소위 ‘교피아(교육부 마피아)’의 교육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전국 1만1000개 초·중·고교와 340여개 대학(전문대 포함), 전국의 모든 학원이 교육부 공무원의 지침과 판단에 따라 조직을 운영한다. 교육부 공무원이 굴릴 수 있는 예산도 많다. 교육에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만큼 교육 예산은 매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올해 교육부 예산이 52조2481억원으로 2001년(20조344억원)의 2.6배다. 예산이 늘어날수록 일선 학교로 내려보내 집행되는 돈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교육 관료들의 영향력은 더 커지는 것이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육부 관료의 기득권이 과거 정부에서도 도마에 올랐고 이들의 권한을 축소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는 “교육부 정원을 반으로 줄이고 국립대학과 지방교육청으로 보내는 순환보직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발표했었지만 결국 흐지부지됐다. 한 대학 총장은 “이번 기회에 ‘교피아’ 권한을 줄이는 대대적인 개혁을 해야 우리 사회에 진정한 교육 혁신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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