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공의 도움으로 맺은 안휘성 아가씨와 함께 택시를 타고 소요각에 오르기 위해 소요진공원으로 향했다.
알고보니 소요진 공원은 어젯밤과 오늘 오전에 갔었던 보행가의 끝자락과 연결되어 있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공원 앞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일단 점심 때가 조금 지난 시간이라 함께 식사할 작정으로 보행가쪽으로 조금 들어가 자기가 한 번 가 본 적이 있다는 물고기를 뚝배기에 잡채, 콩나물, 두부 등과 함께 넣어 맵게 찌듯이 고운 요리와 두어 가지를 더 시켜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날 무렵에 어느새 그녀가 계산대로 가서 계산을 해버렸다.
식사 후 지하도를 통해 큰길을 건너 소요진공원으로 들어가는데, 내가 내려고 작정하고 있던 입장료가 없다. 무료란다. 그것 참...
호수를 한쪽에 낀 하나의 공원이었다. 이곳은 옛날 삼국시대 위나라와 오나라가 장장 30년 간을 쟁탈하던 옛 전쟁터였다고 한다. 특히 합비의 장군 张辽와 관련된 장료의 무덤, 장료의 정자 등 유적이 많다. 입구에 들어서니 마치 서호의 백제의 다리처럼 아치형으로 된 다리와 높은 누각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여행 마지막날까지 여행의 주제이자 제목처럼 누각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 아가씨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 때문에 뭔가 자기가 이곳을 소개해야 될 책임을 지고 있다는 듯 구경은 하지 않고 끊임없이 핸드폰으로 검색한다. 그리곤 어렵게 검색한 결과를 가지고 내게 설명을 해준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어쨌거나 공원을 한 바퀴 돌아서 누각에 갈 생각으로, 오른쪽으로 길을 잡았는데, 곳곳에 놀이기구이고, 놀이기구마다에서 나오는 스피크의 굉음 때문에 공원이 너무 시끄럽다. 합비란 전체적인 느낌을 시끌벅적한 도시란 느낌을 받게 한다. 합(合) 모든 소리와 모양 들이 합해진다는 뜻? 비(肥) 소리든 모양이든 사람이든 모든 게 가득하다는 뜻? 내맘대로 풀어본 이름이다.
식사를 마치고 소요진공원으로 가는데, 보행가 끝자락에 명교사(明敎寺)란 절이 하나 있다. 시간 관계상 패스.
소요진공원은 무료 입장이지만 공원 내의 소요각에 들어가는 데는 10원의 입장료가 필요하다.
고소요진이란 편액.
삼국시대 합비 출신의 장수인 장료의 기마상.
이 공원의 주인공이 바로 이 사람이다.
놀이공원인가 싶을 정도로 여러 가지 놀이기구에서 나오는 소음이 귓청을 괴롭힌다.
일종의 섬에 지어진 소요각의 모습.
호수 오른편으로 한바퀴 돌아서 소요각에 가고자 호반을 따라 걸어간다.
호수를 따라 걷다보니, 소요각은 시야에서 멀어지다가 가까와지다가 하면서 전체 모습을 다 보여 준다.
산책하기 좋게 길이 만들어져 있다.
코스프레? 게임용 화보 촬영? 모르겠지만 만화 같은 분장이 재미있다.
휴일을 즐기는 합비 시민들이 여유로와 보인다.
호수 3분의 1정도를 돌아가니 바깥 도로와 경계를 이룬 좁은 오솔길이 호수를 둘러져 있다. 곳곳에 낚시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분명 한 바퀴 돌 수 있을 줄 알았던 길이 중간에 막혀버리고 길이 없다.
할 수 없이 다시 되돌아와 누각을 찾으니, 이 누각이 바로 소요각(逍遙閣). 바깥에서 보기에는 3층이나 실제로는 5층인 이 누각은 소요호에 의해 삼면으로 둘러싸인 곳에 지어져 있다. 누각에 오르는 것은 10원의 입장료가 필요하다. 점심값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내가 내겠다니 아가씨[周欣怡]는 안오르겠다고 한다. 억지로 함께 올라가니 삼국시대의 전쟁에 관한 그림과 유물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마치 무석의 삼국성에서 보던 것처럼. 물론 규모는 비교가 안되지만.
차주전자의 모양이 특이하다.
장료?
삼국시대의 위나라와 오나라의 전쟁을 묘사한 대형 조형물+벽화.
상당히 생동적이며 자세하다.
많이 생략한 게 이 정도이니 전시실 삼면으로 채워진 그 규모가 대단하다.
소요각에서 바라본 호수 전경.
삼국시대이니 위나라의 조조의 아들 조식이 언급되는 것도 전혀 엉뚱한 것은 아닐 터.
조조의 사랑을 유난히 받았던 조식, 그의 형 조비에게는 탐탁치가 못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조 사후 조비가 한나라 헌제에게 나라를 물려받아 위나라의 임금이 되고, 곧바로 동생 조식에게 품었던 그동안의 반감을 풀기 시작한다. 실재 역사에는 이후 조식은 계속 지방관을 전전하면서 수심 속에 살았었고, 그래서 그의 시호에는 시름겨워하다는 뜻의 "思"자가 쓰이어 "陳思王"이라고 한다. 조식은 5언시의 대가로서, 조조 생전에는 시에 생기가 넘쳐났는데, 조조 사후부터는 시에 시름이 묻어난다.
여기에서 잠시 조식이 썼다고 하는 <七步诗>를 감상하기로 한다. 煮豆持作羹(자두지작갱)콩을 삶아서 콩죽을 쑤는데 漉豉以为汁(록시이위즙)삶은 콩을 걸러서 즙을 만든다 萁在釜下燃(기재부하연)콩깍지는 솥 아래에서 타고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콩은 솥 안에서 운다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본래 한 뿌리에서 났건만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들볶는 게 어찌 이다지도 심한가
중국의 정형시 형성 초기의 5언고시의 대가로 손꼽히는 조식, 그의 형 또한 최초의 완정된 칠언시인 <燕歌行>의 작자이자, 중국 최초의 평론서인 <전론논문>의 저자일 정도로 문학에 뛰어나다.
그뿐인가 그의 아버지 조조, 비록 나관중은 그를 간웅이라 폄하했지만 민간악부를 솔선하여 모방하여 문인시가로 격상시킨 주인공이다. 그의 창도 아래, 그의 두 아들, 그리고 그의 아끼던 7인의 시인(建安七子) 등이 거대한 문단을 형성하며, 중국 문인시가 시대를 화려하게 열었던 것이다. 무에만 능했던 게 아니라 문학에도 뛰어났던 그, 특히 인재를 소중히 여기며 아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림 속의 글씨는 조조의 유명한 시 <短歌行>(단가행)의 일부이다.
이제 서서히 기차시간이 걱정이 된다. 내가 역까지 가는 버스를 검색하려니 자기가 검색해놓았다고 하지 말아라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충분하다고 한다. 그런데 길치다. 방향감각이 전혀없다. 핸드폰상의 지도를 들고 열심히 나를 안내하는데 따라가다 보면 길이 아니다. 길을 찾아 공원을 빠져 나오는 동안에 본 공원내의 시상반나 공작원.
장료의 묘도 있다고 한다.
삼국역사문화관.
장료의 무덤.
무덤 뒷쪽에 있는 장료각이란 정자.
물어물어 공원을 빠져나와 알려준 버스를 타고 그녀와 헤어져 역으로 갔다. 네 정류장만에 역이 나왔다. 여유있게 역에 도착, 기다렸다가 상해행 기차를 타고 대략 세 시간 여를 달려 홍챠오역에 도착, 지하철을 타고 열 시가 거의 다되어 집에 도착했다.
합비역.
마지막으로 인증샷 한 방.
상해로 돌아와 다시 복잡한 지하철을 한 시간 이상 선 채로 타고서 집에 도착하면서 일주일 간의 긴 여정을 모두 끝냈다.
잠시 빌려 사는 집이건만 그래도 내 흔적이 있는 곳이라 편안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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