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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절강성 소흥여행] 서예의 성인 왕희지의 자취를 찾아(난정)

by 유경재 2013. 9. 29.

추근고거에서 택시를 타고 난정을 가자니 택시기사가 잠시 망설이다 간다.

왜 그럴까.

택시는 제법 한참을 시외로 달린다.

아~시내로 되돌아갈 때 손님이 없을 경우가 있어 그래서 망설였구나.

 

 

난정은 정자 이름이다.

일찍이 회계군, 즉 소흥의 내사(內史) 벼슬에 있을 때 문우들과 함께 음력 3월 봄날을 맞아 회계산 자락의 난정에서 봄맞이 행사를 가졌었고, 그 자리에서 술도 마시고 시를 지었는데, 지은 시를 엮어서 난정집이란 시집을 만들었으며, 그 서문을 연장자였던 왕희지가 썼으니, 그 글이 바로 만고에 인구에 회자되어오는 <난정집서>이다.

때문에 중국문학, 한문학, 서예를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은 이곳에 와보고 싶게 마련인데,

나 역시 이번 소흥여행의 목적 중에 하나였을 정도이다.

 

택시비가 대략 40원 정도 나왔었을 무렵에 도착한 난정 입구.

 

 

난정의 유래.

 

여기도 입구에는 대나무숲이다.

 

난정이 또하나 유명한 것은

난정집서에 의하자면 우리 신라시대의 포석정 같은 이른바 "유상곡수"(물가에 앉아 술잔을 흐르는 물에 띄워 순서대로 술을 마시던 것)가 있다.

시간을 정해놓고 그것을 연출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난정집서에 나오는 구절, 후대의 사람들이 지금 사람을 보는 것이 지금 사람들이 옛사람들 보는 것과 같으리라. 세월유수, 인생무상, 그래서 술을 아니 마시고 무엇하리. 아~ 덧없는 우리네 인생.

 

설마 여기가 유상곡수의 자리는 아니겠지.

 

 

아지비정.

왕희지가 특별히 거위를 좋아했다고 한다.

거위가 노니는 연못에 대한 비석의 정자.

비석에 "아지" 두 자가 새겨져 있는데, 소문에 의하면 왕희지와 그의 아들이 각각 한 글자씩 합작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글자가 살찌고 야윈 차이가 있다나...

 

위의 글자가 야위었고, 아래 글자는 살이 쪄 있다.

각각 누구의 글자?

 

 

 

왕희지가 거위를 특별히 좋아했던 것은 거위의 모습에서 서법의 도를 터득했기 때문이라나.

 

왕희지 사당.

 

 

묵화정.

 

 

난정집서.

영화9년, 세재계축, 모춘지초...

이때부터 중국의 산문은 상당히 형식적, 유미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마치 시처럼 철저히 대구를 강구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글자수도 제한되어 있었는데,

대체로 허사를 빼면 4자, 6자 위주였기 때문에 "사륙문"이라고도 하고, 두 마리 말이 나란히 달리듯, 한 쌍의 부부 같이 대구를 강구했다는 뜻으로, "변려문"(변문)이라고도 한다.

 

 

 

여기가 바로 유상곡수를 재현해놓은 장소.

난정 자체가 본래의 자리가 아니니, 이 역시 후대에, 그것도 아주 후대에 관광객들을 위해 재현해놓은 곳이다.

 

유속은 느리지만 물이 조금씩 흐르긴 흐른다.

 

 

 

 

 

1980년에 중건한 것.

 

곡수유상하던 곳이란 안내 글씨.

 

저랬을 것 같다는 그림.

 

 

유상곡수의 풍속은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까지, 삼국이 모두 있었다고 한다.

어디가 원조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의 것은 보지 못해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난정의 유상곡수 장소와 포석정만을 두고 비교해본다면 포석정이 규모는 작지만 훨씬 섬세하고 사실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포석정은 옛날 바로 그 자리 그대로이기 때문에 사실적일 수밖에...

그래서 가치 또한 훨씬 높다고 할 것이다.

 

 

겨우내 옷을 두껍게 껴입고 집안에만 틀어박혀지내다가 봄을 맞아 따뜻한 햇볕을 찾아 물가로 나와 봄맞이를 했던 풍속이 바로 난정의 풍속이었다.

 

술잔 "상"자에 대하여.

 

역시 <난정집서>

 

어비각.

청나라 강희제가 쓴 난정집서와 손자인 건륭제가 쓴 난정집서가 각각 양각, 음각으로 합각되어 있는 보기 드문 비석이다. 

 

 

어비각이니만큼 어전에 오르는 계단처럼 꾸몄다.

 

강희제의 글씨.

 

왕희지가 제자들에게 글씨를 가르치던 곳을 재현해놓은 곳.

 

왕희지의 글씨인 "태"자.

서예는 관점에 따라 균형미를 최고로 칠 수도 있는데, 이 얼마나 균형미가 넘쳐나는가.

좌 삐침과 점이 우 삐침과 균형을 이루면서 어려운 균형을  잘 잡고 있다.

 

글씨를 쓰던 곳.

지금도 각 책상마다 붓이 마련되어 있어 옆의 물을 찍어 이렇게 써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난정? 실재로 난정이란 정자는 어디에 있는가?

혹시나 싶어 어비각 뒤로 계속 더 들어가 본다.

조금 가니 제방이 나오고 이렇게 시내가 흐르고 있다.

 

그리고 제방 안쪽으로는 연못이 크게 하나 자리잡고 있다.

 

 

 

연못을 한바퀴 휙 돌아나온다.

 

출구쪽에 포진한 기념품 가게들.

 

아무리 유명한 유적지라고 하더라도 더운 날씨, 평일이라 그런지 관광버스 두어 대가 전부다.

관광버스가 떠나고 나니 인적이 뚝 끊긴다.

자, 어떻게 다시 시내로 돌아가나.

난정 바깥 큰 도로에 나가니 이따금씩 장거리 시외버스들과 화물차, 개인차들이 다닐 뿐 택시나 버스는 없다.

마침 햇빛 차양도 안되는 버스 정류장이 하나 있고, 두어 명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길래 나 역시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길 대략 30분, 그새 사람들은 조금씩 늘어 대략 10명 가까이 되었는데, 버스는 올 기미도 없다.

그런데 어디선가 봉고차 같은 개인차가 하나 정류장에 대더니만 시내까지 일인당 10원에 가자고 한다. 나는 좋아라 하고 타는데 비싸다고 아무도 타려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혼자 80원씩 내고 가기도 그렇고. 안타까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기사는 기사대로 그들을 설득하여 드디어 6명을 태우고 시내로 갈 수 있었다.

시내로 가는 오르기 전 난정 도로 건너 앞에 대학이 하나 보인다.

소흥에는 대학이 유일하게 소흥문리학원이란 대학뿐인데, 그 대학의 한 단과대학인 난정서법예술대학.

출처 : 한국교통대학교 중국어과 수업자료실
글쓴이 : 유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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