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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본능

[중국여행][남경여행]부자묘, 진회하, 과거시험장

by 유경재 2012. 7. 5.

갑작스럽게 중국대학 방문이 이루어졌다.

지난 6월 17일, 인천공항에서 중국남경으로 날아갔다.

도착한 날이 일요일이라 공식적인 행사는 다음날인 월요일로 미루고

우선 상대 대학에서 나온 안내자를 따라 오후  몇 시간 동안 남경시내를 관광하였다. 

남경은 일찍이 2002년 여름인가 3-4일 여행한 적이 있다.

기억하건대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현무호, 연자기, 대도살기념관, 중산릉, 명효릉, 진회화 등지를 힘겼게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알다시피 남경은 중국의 4대 화로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덥기로 유명하다.

남경은 또한 서진이 오호에 의해 남쪽으로 쫓겨나 사마예가 이곳을 도읍지로 정하고 왕조를 이어갔으며,

이때부터 북방 황하유역의 중원은 이민족의 오호십육국의 왕조가 자리를 잡았고,

남방 장강 유역의 남경은 한족의 왕조가 교체되며 자리를 잡아 남북으로 대치하는 형국의 이른바 남북조시대를 맞게 된다.

그래서 남경은 삼국시대 오나라의 수도였으며, 이후 남조의 동진, 송, 제, 양, 진의 수도였었다.

후일 원나라 때 한족의 주원장이 기병하여 몽고족의 원나라를 치고 이곳에 수도를 정하고 새로이 한족의 나라, 명나라를 건국하였다.

명 성조 때 비록 북경으로 천도를 하였지만, 현대에 오면 홍수전이란 인물이 이곳을 수도로 정하고 태평천국이란 나라를 세우기도 했었다.

이로 본다면 남경은 북경과 함께 우리의 경주와 같은 유서가 깊은 고도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침략기에는 일본이 남경에 진군하여 남경시민 30만 명을 무차별 학살하였던 비극의 도시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알아본 남경의 날씨는 34-5도를 오르내릴 정도였으나,

막상 도착한 날부터는 흐린 날씨에 기온도 30도가 채 안되는 견딜만한 날씨였다.

 

특히 이번 남경방문은 윗사람을 수행하고 통역까지 겸하다 보니 사진을 찍을 여유가 거의 없어 소개할 사진이 별로 없다.ㅠㅠ

우선 부자묘[부자묘]로 향했다.

부자란 공자를 가리키는 말이며, 묘라는 것은 사당이란 뜻이니, 공자를 기리는 사당이란 뜻이 되겠다.

부자묘 주위의 고색이 짙은 거리 풍경.

 

령성문.

 

부자묘 앞의 거리 풍경.

일요일 오후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건너편 황금색 용조각 벽과 앞의 패방 사이에는 강이 흐른다.

이름하여 "秦淮河"(진회하).

남경 시내를 관통하여 흘러간다.

 

부자묘 안에 들어갓다.

공자의 입상이 사람들을 반긴다.

 

대성전.

 

앞에서 말했던 秦淮河(진회하)란 강 줄기.

많은 유람선이 대기 중이다.

이곳은 특히 밤에 더 아름답다.

어두워진 후 찾아오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만당 시기 대시인, 두보와 병칭되기도 하는 杜牧(두목)이란 시인이 진회하에 묵으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은 적이 있다.

 

<夜泊秦淮>(야박진회)[밤중에 진회하에 묵는데]

烟籠寒水月籠沙(연롱한수월롱사), 밤안개는 차가운 강물을 감싸고, 달빛은 모래 위에 어리는데.

夜泊秦淮近酒家(야박진회근주가). 한밤중에 진회하에 정박하니 주막들이 가까이에 있다네. 

商女不知亡國恨(상녀부지망국한), 기생들은 나라 망하는 슬픔도 모른 채

隔江猶唱後庭花(격강유창후정화). 강을 사이에 두고 망국의 노래인 후정화 노래를 부르고 있네.

 

당나라가 망할 무렵인 그 시기 작가가 여행길에 우연히 이곳에서 배를 대고 하룻밤 묵게 되는데,

지금처럼 강가에는 주막들이 가득하였고,

주막마다엔 돈을 벌기 위한 기생들이 손님들을 위해 부르는 노랫소리가 끝없이 흘러나왔으니,

그 노래를 듣는 지식인으로서의 작가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금릉이란 말은 남경의 한때 옛날 이름이다.

그러면 "금릉춘"이란 말은 남경의 봄이란 뜻이겠다.

 

부자묘를 나와 진회하 다리를 건너면 옛날 삼국시대 오나라 손권의 검은옷 입은 군인들이 살던 지역인 오의항이 나온다. 여기서 "항"이란 골목이란 뜻이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옛날 동진의 명사인 사안과 왕도 등이 살았던 저택을 볼 수 있다.

 

 

이어서 부자묘 부근에 있는 옛날 과거시험장인 "공원"을 구경하였다.

 

공원 입구에 늘어선 상가들.

 

"명경취사, 위국구현." 경전의 뜻을 밝히는 시험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고, 나라를 위해 어진 사람을 찾는다.

 

재현해 놓은 과거시험장.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이렇게 독립된 칸막이 안에서 과거를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시험 시간이 길었던 모양인지 도시락도 비치되어 있다.

컨닝 페이퍼 같은 것도 있었던 모양이다.

 

저녁 때가 되어 식사를 하기 위해 한 식당에 들어갔다.

푸짐한 식사와 환담[내게는 머리에 쥐가 날 정도의 스트레스]이 끝나고 나니 어두어졌다.

진회하의 배 한 척에 올라 진회하를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데,

강 좌우의 건물에는 모두 화려한 조명이 켜졌으며,

군데 군데 마련되어 있는 무대에는 옛날 복식을 한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며 뱃놀이에 흥을 더해 준다. 

 

유람선을 타고 하류로 내려와 배에서 내려

이번에는 명나라 때의 성문인 중화문을 관람하였다.

몇몇 겹으로 이루어진 성문과 성벽.

그 사이마다 장병동[장병동]을 두어 병사들이 숨어 있다가 성안으로 들어온 적군들을 포위하고 섬멸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첫날의 그런 얼떨떨한 남경 관광이 끝나고

잠자리에 드니 도무지 다음날 있을 공식 행사에서의 통역이 신경이 쓰여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런 가운데 남경에서의 하루는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