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천카이거(陈凯歌)
주연:王学圻 葛优 张丰毅 侯勇 海清
제작연도:2010
장르:드라마
줄거리:
춘추(春秋)시기,진(晋)나라 영공(靈公)은 권신 도안고(屠岸贾)(王学圻분)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싫어하여,승상 조순(赵盾)(鲍国安분)이 권력을 잡고 있었다. 조순의 아들 조삭(赵朔)(赵文卓분)은
두 가지 경사가 한꺼번에 찾아오게 되니,자신은 전공이 탁월했을 뿐만 아니라 아내 장희(庄姬)
(范冰冰분) 또한 임신하게 되었다.
도안고는 그들을 큰 우환으로 생각하고, 조정에서 독살하기로 계획하였으며, 영공으로 하여금 조씨의
족을 멸하도록 부추켰다.장희는 의사인 정영(程婴)(葛优분)이 진맥할 때, 남편 조삭이 죽은 것을 목도
하고, 비통함 속에서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였다.
이 때, 도안고의 수하인 한궐(韩厥)(黄晓明분)이 찾아와 우환의 씨를 없애려고 했다.
위급한 순간 장희는 갓난아이를 정영에게 부탁하여 그로 하여금 아이를 공손저구(公孙杵臼)
(张丰毅분)에게 전해주도록 한 후 자신은 칼로 자결하였다.
한궐은 일 처리를 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도안고에게 칼에 베어
상처를 입은 후, 성문을 봉쇄토록 명령한 뒤에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갓난아이를 수색하였다.
사태가 위급해지자 정영의 아내(海清분)는 조씨고아를 제 아이와 바꿔치키 하였다.
정영은 이에 조씨고아를 자신이 데리고 있었으며,
그의 아내는 바뀐 제 아이를 데리고 공손저구에게로 갔다.
성문이 폐쇄되었기 때문에 정영의 아내는 아이와 함께 성문 내의 담장 안에 숨어 있었다.
도안고는 고육지계를 써서 정영이 아이의 행방을 말하게 하여,
공손저구와 정영의 처와 아이를 모두 죽였다.
정영은 비통함을 억지로 가누면서 혼자 조씨고아를 길렀다.
한궐이 의사를 찾아왔을 때 그 사정의 실상을 이해하고서 마침내
정영과 생사를 같이하기로 하는 결의를 맺었다.
정영은 조씨고아를 데리고 도안고에게로 갔으며,
도안고로 하여금 조씨고아를 양아들로 삼도록 권했다.
이로부터 장장 15년이란 긴 복수의 계획이 펼쳐지게 되는데...
[이해를 돕기 위한 보충 자료]
비극(悲劇tragedy)은 희극보다 감동의 강도가 훨씬 강하다.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하는 효과를 준다.
비극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보통의 관객들보다 신분이 높다는 특징을 갖고 있기도 하다.
서양의 세잌스피어의 비극들이 비극의 대명사이다.
그 중에서 <햄릿>은 복수와 관련된 비극인데, 이와 비견되는 중국의 비극이
바로 원대의 <조씨고아>(趙氏孤兒)이다. 청대의 저명 학자 왕국유(王國維)는
<송원희곡고>(宋元戱曲考)에서 관한경(關漢卿)의 <두아원>(竇娥寃)
과 함께 이 <조씨고아>를 “세계의 유명한 비극과 비교하더라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 평했다.
현대의 우리나라의 드라마 추세와 결부시켜 볼 때 거의 모든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출생의 비밀’이
일찌감치 이 작품의 흥미유발 요소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사에 있어서 원(元)나라는 징기스칸의 몽고족이 한족의 송을 멸하고 세운 나라다.
이에 원대는 한족들의 시와 산문 등 정통문학은 거의 명맥이 끊겼으며,
이에 대체하여 흥기한 장르가 바로 공연예술의 하나인 희곡, 즉 잡극(雜劇)이다.
원대를 대표하는 문학인 잡극, <조씨고아> 역시 원대의 대표적인 잡극의 하나로
작가는 기군상((紀君祥)인데, 기천상(紀天祥)이라고도 하며 대도(大都·북경) 사람이었다.
<조씨고아>는 춘추시대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역사가 <좌전>, <사기·조세가>(趙世家), 유향(劉向)의 <신서>(新序)와
<설원>(說苑) 등에 실려 있다.
춘추시대 진(晋)나라의 대신 조순(趙盾)은 양공(襄公)을 보좌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이끌었다.
양공이 죽자 아들 영공(靈公)이 뒤를 이었는데, 아버지와 달리 정사를 뒤로 하고 향락을 일삼았다.
조순은 여러 차례 간언을 하였지만 소용이 없자 조정을 떠난다.
후에 조순의 형제 조천(趙穿)이 반란을 일으켜 영공을 살해하고
영공의 동생인 성공(成公)을 권좌에 앉힌다.
조순도 다시 부름을 받아 조정에 복귀한다.
이때 조순의 아들 조삭(趙朔)은 성공의 누이와 결혼한다. 성공이 죽자 아들 경공(景公)이 즉위한다.
당시 대부였던 도안고(屠岸賈)는 한때 영공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로
영공 시해사건으로 인해 조씨 가문에 대해 깊은 원한을 갖고 있었다.
경공이 즉위하자 도안고는 경공에게 영공 시해사건을 언급하며 그 주모자가 조순이라고 음해,
왕족을 능멸한 죄로 조씨 가문의 멸족을 간청하였다.
당시 조순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라 경공은 그 아들 조삭 등 조씨 일가 300여명을 멸족시켰다.
그러나 단 한 명 조삭의 부인만은 살려두었다. 그녀가 성공의 누이라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대신에 도안고는 임신 중이던 그녀를 가두어 놓고 아이가 나오는 즉시 화근을 없애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났을 때 조삭의 친구이자 민간 의원이던 정영(程嬰)이 죽음을 무릅쓰고
도안고의 집에 뛰어들어 그 고아를 약상자에 숨겨 사라진다.
악독한 도안고는 아이가 사라진 것을 알고
사흘 안에 고아를 찾지 못하면 전국의 갓난아이를 모두 없애버리겠노라며 호통을 쳤다.
당시 정영에게도 갓낳은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는 조삭의 문객으로 조삭에게 깊은 호의를 입었던 공손저구(公孫杵臼)라는 인물과 상의하여
아이를 바꿔치기하기로 입을 맞추었다.
즉 정영이 자신의 아이를 공손저구의 집으로 보낸
다음 도안고에게 공손저구가 조씨의 고아를 숨기고 있다고 밀고하기로 한 것이다.
조씨의 고아를 살리기 위해 정영은 자신의 아들을 내놓고,
공손저구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대단한 결정이었다.
이렇게 목숨을 건진 조씨의 고아 조무(趙武)는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정영의 아들로 자라났다.
심지어 조금의 의심도 받지 않고 도안고의 양아들이 되었다.
도안고는 조씨의 마지막 씨앗인 조무를 제거했다고 여기고, 이 일에 공이 큰 정영을 우대하였으며,
그의 아들을 자신의 양아들로 삼아 자신의 곁에 두고 그를 키웠다.
20여 년이 지난 뒤 조무는 청년이 되었고, 어느 날 정영으로부터 사건의 진상을 듣게 되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고아는 복수의 의지를 불태웠다.
후에 도공(悼公)이 즉위하자 조씨의 고아는 대신 위강(魏絳)의 도움으로 도안고를 죽이고
마침내 조씨 집안의 원한을 갚을 수 있었다.
이러한 복수 모티브의 <조씨고아>는 극의 이야기 전개와 극적 갈등이 뛰어나고
인물의 형상 또한 감동적이기에 이후 다양한 장르에 영향을 주어,
소설과 연극, 영화 등으로 재창조되었다.
도안고의 악랄한 복수, 갓난아이의 숨 막히는 구출 작전, 정영과 공손저구의 희생적인 충성과 의리,
도안고가 그렇게 죽이고자 했던 조씨의 고아를 자신의 손으로 키운다는 극적 설정,
성인이 되어 진상을 알게 된 조씨고아 조무의 고뇌와 복수 등,
최고의 문화콘텐츠를 지닌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동주 열국지>와 남희(南戱) <조씨고아원보원>(寃報寃),
명대 희곡인 전기(傳奇) <팔의기>(八義記),
경극의 수많은 작품 등이 모두 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중국의 여류작가 인리촨(尹麗川)이 동명의 현대극으로 각색하였고,
2003년에는 진하이수(金海曙)가 동명의 소설을 출판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중국내에서뿐만 아니라 18세기부터 이미 외국에도 소개되어 영어와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으로 번역, 공연되기까지 할 정도로 세계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연극계에서도 이 작품의 비극성을 높이 평가하여 자주 무대에 올리고 있다.
극단 미추는 창단 20주년 기념작으로 선정하여 2006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기도 하였다.
한동안 한국 배우 송혜교의 출연에 관한 진위 여부, 세트장의 붕괴 사고,
연이은 배우들의 탈퇴와 배역 교체 등으로 힘든 과정을 겪기도 했다.
‘패왕별희’, ‘인생(活着)’에서 개성 넘치는 연기를 펼쳤던 연기파 거여우(葛優)가 정영 역을 맡았고,
역시 ‘패왕별희’에서 패왕 역을 연기했던 장펑이(張豊毅)가 공손저구 역을 맡게 되었으며,
악역인 도안고 역에는 왕쉐치(王學圻)가, 조순 역에는 바오궈안(鮑國安),
조순의 아들 조삭 역에는 자오원줘(赵文卓), 대장군 한궐 역에는 황샤오밍(黃曉明),
장희공주 역에 송혜교 대신 판빙빙(范冰冰)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우현(盂縣)의 장산(藏山, 본명은 盂山)은
정영이 조씨고아 조무를 숨겨 15년 동안 은거한 곳으로 알려지면서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장산’이란 이름도 조무가 ‘숨어살던 곳’이란 뜻으로 붙여졌다.
그곳에 가면 조무를 기리는 ‘문자사(文子祠)’를 비롯하여
정영과 공손저구를 기리는 사당이 세워져 있다.
최근에는 ‘문자사’ 근처에 춘추전국시대의 역사를 보여주는 ‘춘추전국성’을 지어
보다 많은 관광객 유치에 힘쓰고 있다.
중국인들은 역사와 전설을 작품화하여 여러 문화상품으로 확대 재생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경제대국을 넘어 문화대국을 지향하는 중국의 이런 행보는 자못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보충 내용 중 후반부는 “주간조선 [송철규 교수의 중국 고전문학 이야기]”를 근간으로 하여
생략, 보충, 수정한 것임.
★감상하기★